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2. 《세기와 더불어》의 세계화 담론

 

 미, 일에 부화뢰동, 손원금은 통곡한다

 

북의 핵, 미싸일문제를 두고 《정부》여당과 《진보신당》이 한목소리를 내고있다. 언젠가는 합당을 할 징조라고밖에는 볼수 없다. 리명박《대통령》은 G20회의참가차 영국으로 떠나기 전 《어느 나라가 보호무역을 하는지 그 명단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북의 로케트발사에 대해서는 《군사적대응은 반대한다.》고 했다. 우리 국민들은 갈피를 못잡고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에서 무슨 말이 나올 때마다 말이 달라지고있어서 이런 경우를 두고 부화뢰동이라 하지 않는가 걱정스럽다.

한 나라 지도자가 중심을 잃고 이렇게 부화뢰동하면 온 국민들이 불안할것은 당연하다. 경제문제에 있어서 그렇게 큰소리 한번 하자면 그것이 정치군사문제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거늘 미국의 군사적패권주의에서 해방되지 않고 어떻게 경제적굴레에서 벗어날수 있단 말인가? 바로 북의 핵, 미싸일은 미국의 군사적패권주의를 단번에 무력화시키는것이거늘-이를 《섬멸적타격》이라 함-그렇다면 북의 핵과 미싸일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적주권을 세우고 지키는 지레대가 될것은 명약관화하지 않는가? 그렇게 북이 신호를 보내고있건만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부화뢰동하고있다니. 이번 려행을 하고 돌아올 때에는 중심을 한번 잡아서 오기 바란다.  

 

강도 일제 타도만이 이 민족의 지상명령이다

 

《한나라당》과 《진보신당》이 북의 핵과 미싸일문제에 대하여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극하면 반한다고 하더니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어쩌면 이렇게도 같아져버렸는지? 《한나라당》은 미, 일에 공조하며 UN안보리에 간다고 하다가 《세종》함까지 동해에 파견해 요격이나 할 자세이다. 한수 더 떠 《진보신당》은 북에 대해 모욕적인 말까지 대변인을 통해 서슴없이 발표하였다.

《종북(從北)주의》론난끝에 민주로동당과 갈라선 《진보신당》이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수천억이 들어가는 인공위성을 발사한다는것은 납득할수 없는 일》이라며 북의 미싸일발사움직임을 정면비판했다. 《진보신당》은 3 27일 북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광명성2호》발사가 림박한것과 관련, 《북은 자신들의 인공위성발사주장이 (국제사회에)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신당》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론평에서 《북의 경제상황이 매우 어려운것이 주지의 사실인데 수천억으로 추정되는 로케트발사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인공위성을 발사한다고 했을 때 이를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대변인은 또한 《이미 북이 핵무기보유를 공언한 상태에서 발사하는 로케트에 대하여 이것이 순수한 우주기술개발을 위한것이라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라가 몇이나 되겠느냐.》며 《우리는 이런 점에서 북의 강경립장은 합리적설득력을 잃고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정도라면 《한나라당》보다 더 강한 론평이고 미일보다 더한 시각이라 아니할수 없다. 더이상 진보라는 말도, 신당이란 말도 포기하고 조갑제를 차라리 당수로 맞아들이는것이 나을것이라 본다. 필자는 여기서 《진보신당》의 막 나가는 남북문제진단에 더이상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이지만 마지막까지 의도적이 아니라면 북의 무기개발은 1930년대 강도 일본놈들 때려잡기 위해 피눈물흘리는 고난의 과정속에서 오늘까지 왔다는것을 먼저 리해하기 바란다. 저 일본제국주의는 반드시 다시 부활하고 언젠가는 우리 남북민족이 강한 무기를 갖지 않으면 또 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진보신당》은 알아주기 바란다.

항일유격대가 만든 무기앞에 떼죽음을 당한 악몽이 있어서 일본이 저렇게 발광에 가깝게 광분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진보신당》이 저런 성명서는 발표하지 않았을것이다. 먼저 북의 핵미싸일은 1932년 마촌의 병기창에서 소리폭탄-고추폭탄-연길작탄-핵미싸일이라는 진화선상에서 탄생한 사실 하나만이라도 바로 리해하기 바란다.

여기서 연길작탄이 얼마나 간고한 고난끝에 만들어졌는지를 한번 보자. 유격대원들은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 잃고 드디여 20대 젊은 나이에 부모처자식 다 먼저 보내고 마지막에는 자기 몸까지 산화하면서 조국을 위해 희생한 피눈물의 씨앗이라는 사실앞에 옷깃을 모두 여미기를 바란다. 《진보신당》은 일루의 민족적량심으로 돌아오든지 진보의 기발을 내리든지 금명간 결단을 해야 할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울산에서 《한나라당》과 단일화를 하는것이 나을것이다. 북은 이보다 더 간고할 때도 일본놈 때려잡는 무기를 만들었고 그래서 이 나라를 찾았다. 가난하기때문에 무기를 만들수 없다는 아니, 해서는 안된다는 론리야말로 모든것을 자본주의론리로 보는 실로 진보답지 않은 목소리가 아닌가?

 

미국무성 불문률 《자기 조국을 배신하는 놈은 인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한나라당》보수들에게도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다. 《한사람의 철학은 그의 인생을 결정하지만 한 국가대통령의 통치철학은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 말은 《No라고 말할수 있는 한국》(1996)의 저자의 말이다. 저자는 미국방성산하 륙군성에서 20년간 근무한 UC버클리대 박사출신이다.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저자는 미국통으로 북에 대한 남《한》의 체제적우월성을 주장하는 학자인것 같다.

우의 인용구는 그의 책 첫 구절이다. 그는 이어 서슴없이 남《한》이 핵을 개발하지 못한 리유는 정통성없는 전두환《정권》이 미국으로부터 정통성윤허를 얻기 위해 그 대가로 핵과 미싸일을 포기했기때문이고 그것은 민족의 운명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고 한다.(21페지) 전두환《정권》은 미국의 눈치를 보는것을 넘어 알아서 기는 《정권》이였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13년이 지난 지금 MB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정통성》있는 《대통령》인데 왜 저렇게 눈치보고 기고있는지 리해할수가 없다.

《이렇게 미국과 북에 질질 끌려다니게 된 우리 외교의 맹점은 바로 핵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도 대북정책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쉽게 무시할수 없는 상대로 대할것이며 북도 <벼랑끝외교>, 소위 <막판외교>정책으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넘보지 못했을것이다. 실제로 북은 항공, 우주, 통신분야의 기술만은 <한국>을 릉가한다. 핵개발은 엄청난 최첨단과학기술발전을 부차적으로 낳기때문이다.

전두환《대통령》의 정통성없음이 결국 핵과 맞바꾸게 되였고 그 결과 미국의 엄청난 압력에 못이겨 약소국의 설음을 국민과 함께 억누르며 살게 되였다는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통치철학은 그래서 중요한것이다. 미국에 대해 대통령이 <NO>라고 말할수 없을 때 우리의 운명은 캄캄한 밤길을 걷는것과 마찬가지가 될것이다.(같은 책 23페지)

무슨 리유인지 최근 백락청교수는 현대사에 경륜을 가진 《대통령》은 박정희와 김대중 2인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박정희는 나름대로 핵을 개발하려 했기때문이고 김대중은 남북의 물고를 처음으로 텄기때문이라고 본다. 김대중은 핵개발은 하지 않았어도 6. 15정신속에 우리 민족끼리 해나가는 민족공조정신에 의한 낮은 단계의 련방제를 말함으로 북의 핵미싸일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 민족공유의 자산이 될수 있을것이란 점을 암시하고있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지금 북의 미싸일발사를 앞두고 리명박《정부》는 미일과 공조하여 UN안보리에 이 문제를 상정하려 하고있다. 앞의 글에 의하면 《핵이 없는 국가는 캄캄한 밤길을 걷는것과 같다. 이 말은 장님이 길안내자손을 잡지 않고는 대로를 걸을수 없는것과도 같다.》는것을 의미한다. 민족공조의 길을 걷지 않고 미일공조하는듯 한 《정부》여당의 태도는 한마디로 말해서 《부화뢰동(附和雷同)》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미정보기관에는 하나의 불문률이 있다.

년전에 어느 《청와대》 수석이 조국을 배신하고 미국에 망명을 하려 했을 때에 미국이 NO라고 하면서 망명신청을 받아주지 않은적이 있다. 그 리유는 미국무성의 불문률 《자기 조국을 배신하는 놈은 인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리유때문이다. 이 불문률은 동양의 고전 《삼국지》에도 나오는것이다.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고 미일에 부화뢰동할 때에도 이 불문률이 여지없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같은 민족을 배신하고 부화뢰동할 때에 미국으로부터 점수를 딸것이라 생각하는것은 오산이다. 하루속히 인간답게, 지도자답게 대접받고싶으면 민족적량심과 자존심부터 찾아라.

 

최무선의 후예 손원금

 

앞의 글의 필자가 비록 민족공동체정신을 저버리고 북을 적대시하는 시각에서 글을 쓰기는 했지만 그가 북의 핵미싸일의 실체는 정확하게 인식하고있었으며 나아가 항공, 우주, 통신같은 최첨단산업에서 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한것은 놀랍다. 북은 2012년에는 《도약적비약》을 한다고 장담을 하고있다. 북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것을 립증하는것이다. 만약에 그가 북의 핵미싸일을 민족 공유의 자산으로만 리해했더라면 탓할것이 없고 하자도 없는 바른 진단이라 할수 있다. 그가 글을 쓴 때가 1996년이고보면 아직 그때에 6. 15도 없었을 때이다. 《진보신당》의 무지를 질타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 북핵미싸일에 대하여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자는 일본이다. 《이지스》함을 동해에 급파하고 요격 운운하며 나오고있다. 역설적으로 일본우익들이 동북아전쟁분위기를 조장하며 자기들내부의 결집의 수단으로 이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고 한다.

북이 핵미싸일을 개발하는것의 의미는 《섬멸적타격》과 《2012년 경제적대도약》에 있다고 했다. 섬멸적타격이란 핵이 공중에서 폭파하여 미일의 인공위성을 마비시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섬멸해버린다는것이다. 그래서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지 않고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여 평화를 지키겠다는것이고 대도약은 핵미싸일을 통해 최첨단기술을 개발한다는것이다.

 

북핵미싸일의 태생적비밀

 

우리는 북의 핵미싸일개발의 주역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자기 몸 하나 내던지고 이름도 빛도 없이 오직 《한》(조선)반도를 지키려는 과학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것은 이미 1932년에 소왕청 마촌밀림에 병기창을 만들어놓고 자체병기를 생산해낸 력사적유래때문이다. 북이 무기를 만들어낸 목적과 수단은 여기서 명백해졌다. 미국과 강대국들은 약한 나라를 협박해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정치적으로 지배하자는것이 목적이지만 북은 그 태생적비밀에 있어서도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국을 해방시키자는 그 일념 하나에서 무기생산을 자체적으로 하였을뿐이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모든 일들은 그 태생적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북핵미싸일의 태생적비밀은 《조국해방, 강도 일제타도》, 바로 그것이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것이 북의 지도자의 정치철학이고 인민들의 생활철학이다. 이 비밀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것이 일본이다. 이 민족의 진정한 지도자라면 이런 일본에 절대로 부화뢰동해선 안될것이다. 집안으로 쳐들어오려는 강도가 무기가 없으면 안들어오겠다는 말을 믿는 천치바보는 이 세상에 후쎄인 하나로 족하다. 1992년 나라안에 핵도 미싸일도 대량살상무기도 없다고 후쎄인이 자기 집무실까지 다 열어젖혀 보여준 결과는? 미일강도가 황야의 무법자같이 종횡무진하는 쟝글의 세계에서는 총대에서만 평화가 나올수밖에 없다.

 

손원금의 후예들

 

유격구에는 손원금이란 조선조 최무선에 버금가는 화약제조의 귀재가 있었다. 회고록에 의하면 김일사령관은 손원금을 직접 만나지는 못한것 같다. 그러나 최근 연변대학 리광인과 림선옥이 펴낸 《이 땅에 피뿌린 겨레장병들, 항일편》(2007) 《달라자유격대》장을 보면 손원금에 대한 얘기가 상론돼있다. 화룡현 달라자에는 김호철을 중심으로 달라자유격대가 조직되였는데 금곡의 손원금, 박영순을 협조하여 사수평아래 수리봉동굴에 가서 병기공장을 꾸리도록 하였다.

《양철운의 주요과업은 물자공급이다. 그는 집의 놋대야, 놋숟가락, 놋잔… 아무것이든 놋자 들어가는 그릇은 모두 가지고가 작탄 제조용으로 쓰게 하였다. 일제놈들을 혼쌀내준 연길작탄인 소리작탄, 고추가루작탄, 돌쪼박작탄, 쇠쪼박작탄 등은 이렇게 이들의 자그마한 병기공장에서 만들어졌다.(리광인, 2007, 2223)

이렇게 항일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주고받는 혼연일체가 되여 온갖 병기를 자체생산하였다. 자력갱생 말 그대로였다. 리광인교수의 현지답사조사보고서는 회고록과 일치를 한다.

《우리는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실험을 거듭하여 끝내 리상적인 배합비률을 얻어냈다.

그때 화약제조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잊을수 없다. 손원금이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원래 나는 손원금이와는 별로 인연도 없고 서로 만나서 통성을 한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원금의 경력이며 활동내용을 십년지기 못지 않게 잘 알고있었다.(3 271페지)

손원금을 김일성항일유격대에 소개한 사람이 박영순이다. 마촌에 와 박영순은 김일성사령관과 마을 사랑에서 숙식을 같이하면서 손원금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박영순의 보증하에 손원금은 유격대에 가입을 하게 된다.

여기서 김일성주석은 사람이 유명해질수 있는 3가지 비결을 《사람은 업적으로써도 유명해질수 있고 재능으로써도 유명해질수 있으며 사건으로써도 유명해질수 있다.(3 271페지)는 덕담을 회고록에서 남기고있다. 아마도 손원금은 이 3가지 모두를 다 갖춘 인물인것 같다.

손원금은 사건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1932년 손원금은 약장사로 가장하여 바이올린을 들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통신련락임무를 수행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가 온갖 고문을 당해 만신창이 된 몸을 이끌고 경찰서를 탈출한다. 구정물이 허리를 치는 하수도구멍으로 빠져나와 하루낮을 강물속에서 보내다 경비가 철통같은 적의 소굴을 탈출한 놀라운 사건으로 널리 유명해진 인물이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살점이 떨어져나간 몸으로 어떻게 하루해를 꼬박 물속에서 보냈는지 사람들은 원금의 강철같은 인내심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손원금은 재능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맨손, 맨주먹으로 저 유명한 연길작탄을 만드는데 참가하였다. 금곡촌의 신성덕 수리바위골 장대는 박영순이 책임진 화룡병기창이 자리잡고있던 곳이다. 리광인교수의 글 역시 회고록과 일치한다. 《달라자유격대는 산이 높고 수림이 무성한 알미대, 서리골, 사수평일대를 근거지로 삼고 그곳 병기공장에서 만들어낸 연길작탄은 그 위력이 대단하였다.(25페지)

이에 대하여 회고록은 《이 병기창 일군들이 처음으로 만든 작탄을 소리폭탄이라고 하였다. 소리폭탄은 그후 고추폭탄으로 발전하였다가 연길폭탄이라는 위력한 작탄으로 완성되였다.(3 272페지)고 기록하고있다.

폭탄이라는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다. 실험과정에서 오랜 시행착오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북의 핵미싸일도 우연스런것이 아님은 여기서 말하는 폭탄의 진화과정을 살피지 않고는 결코 오늘의 그것을 바로 리해할수 없을것이다.

 

연길작탄이란?

 

연길폭탄을 제작하는데 많은 자재가 들어갔다. 이 자재를 병기창에서 일하는 사람들자신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번은 소리폭탄을 만들다가 큰 난관에 봉착한 일이 있습니다. 장약함을 만들 종이와 천이 거덜났거든요. 모두가 방도를 찾느라고 머리를 썩였지요. 그런데 원금동무는 어느새 마을로 뛰여내려가 자기 집 문창호지와 하나밖에 없는 이불을 뜯어오지 않았겠습니까. 재밤중에 헐떡거리며 병기창으로 돌아온 그를 보니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겠지요.…》

손원금은 철사가 모자라 작탄제작이 중단상태에 빠졌을 때에 수십리밖에 있는 남양평에 가서 300m나 되는 전화선을 끊어왔다. 류황도 무쇠쪼각도 양철판도 손원금이 구해왔다.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치는 어느날 밤 양철판과 무쇠를 한짐 지고 병기창으로 돌아온 손원금의 뒤로는 주소도 이름도 알수 없는 생면부지의 할머니 한분이 무쇠가마를 이고 따라들어왔다. 이 할머니는 자기 집 솥가마를 머리에 이고와 병기창에 바친것이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만주벌 한겨울 밤에 나이많은 로인이 눈을 맞으며 솥가마를 머리에 이고 들어온것을 본 병기창사람들은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늙은이의 돌발적인 출현은 일군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 할머니는 원금이가 지어준 약을 먹고 며느리병이 나은 감격때문에 이런 돌출행동을 한것이다. 이렇게 인민들의 숨은 협조속에 렬악한 환경속에서도 당시 유격대가 사용하고 남을만큼의 연길작탄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낼수 있었다.

 

두눈을 잃은 손원금

 

손원금은 안타깝게도 폭탄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그만 두눈을 잃고말았다.

마촌작탄강습을 계기로 손원금은 전동만이 다 아는 인물로 유명해졌다. 화약을 제조하는 과정은 항상 위험을 동반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제일 위험한것은 작탄이나 총탄에 화약을 재우는 일이였다. 박두경, 박영순, 강위룡은 다같이 화약을 제조하다가 중상을 당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곤경을 겪으면서도 작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손원금이도 실명의 쓰라린 아픔속에서 락심하거나 비관에 잠기지 않고 《동지들, 슬퍼말라. 비록 두눈은 잃었지만 나에게는 심장이 남아있지 않는가. 두팔이 있고 두다리가 있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오히려 동지들을 위로하였다. 그리고는 손더듬으로 쇠줄을 자르고 작탄을 조립하면서 항상 코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한많은 세월의 바람받이에 아버지를 묻고 형을 묻고 누이를 묻고… 이제는 또 자신의 광명마저 잃은 손원금! 그는 아직 반생에 이르지도 못한 젊은 나이였다.

손원금은 유격구가 해산되자 전우들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부대를 떠나 금곡촌으로 내려갔다. 그의 귀에는 날마다 유격대를 헐뜯고 공산당을 헐뜯는 적의 념불소리가 들려왔다.(3 275페지)

원금이가 앞을 못 본다고 친일매국노들은 그를 의기저하시키려고 온갖 말을 늘어놓았다. 마치 오늘날 북의 핵미싸일을 험담하듯이 《유격대는 산에서 전멸되여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근거지사람들도 다 굶어죽었다. 처창즈에 가보라. 백골뿐이다.》라고.

그러나 손원금은 지팽이에 의지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오히려 열변을 토했다.

《아니다. 유격대는 살아있다. 살아서 더 넓은 지역으로 나갔다. 지금 남북만도처에서 적들을 치고있다. 몇십명으로 출발했던 유격대오가 지금은 대포와 기관총을 가진 수백수천명의 대오로 자라났다. 동포들, 형제들! 적들의 선전에 속지 말고 항일유격대를 더 잘 원호하자. 항일전쟁은 반드시 우리의 승리로 끝날것이다!

손원금의 발자국은 금곡촌의 범위를 벗어나 수백리밖에 있는 연길과 룡정에도 찍혀갔다. 이전날처럼 바이올린을 둘러메고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면서 더듬더듬 걸어가는 이 《소경걸인》을 군경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로상에서 보천보전투소식을 들은 그는 연길의 거리거리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목멘 목소리로 웨쳤다.

《조선동포 여러분, 6 4김일성장군이 부대를 거느리고 보천보를 습격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압록강을 건너 오매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진출하였다. 혁명군의 위력앞에 혼비백산한 적들은 지금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있다. 일제의 멸망은 확정적이다.

그의 불같은 연설에 연길시가는 죽가마처럼 들끓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손원금은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화형을 당하였다. 화형을 당하기 직전 손원금은 《여러분, 나에게는 눈이 없습니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산천이 환히 보입니다. 승리의 날까지 굳세게 싸워주십시오! 조선혁명 만세!》라고 웨쳤다. 이것은 그가 사형직전에 남긴 마지막말이였다. 당년 25살의 자력갱생의 선구자 손원금은 이렇게 한생을 마쳤다.

박영순은 손원금을 추억할 때마다 《원금이는 장가도 못가보고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라고 말했다. 만일 손원금이 지금까지도 살아있다면 후대들앞에서 자력갱생을 두고 좋은 말을 많이 할것이다. 그의 경력자체가 자력갱생의 산 교과서로 되고있을것이다.

남《한》의 《진보신당》사람들은 들어라. 진보의 기발을 내리든지 북 공부를 제대로 하든지 하기 바란다. 당신들의 머리속에는 진보의 유전자가 아예 없다. 먹을것이 없으니 미싸일도 만들수 없다는 그 정신이야말로 썩은 자본주의정신이 아닌가. 모든것이 돈 아니면 되는것이 없다는 그런 정신이야말로 딴나라당사람들의 소리이지 너희들이 차마 할 소리가 아니다. 자력갱생의 정신이란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먼것이다. 너희들은 진보할 자격 없다.

 

조선의 정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것이다

 

단군사상의 진수인 천부경의 첫 구절에서는 《무에서 하나가 나온다.(一始無始)고 했다. 밀림에서 무기생산은 자력갱생의 생활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자력갱생은 이처럼 우리 민족의 민족해방투쟁사에서 처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았다. 자력갱생은 투쟁과정에서 주체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방도의 하나였으며 자력갱생을 떠나서는 주체에 대해서 생각할수도 론할수도 없다. 주체사상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것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상이다. 먹을것이 없으니 미싸일도 만들지 못한다는 저 사대주의에 찌들린자들이 진보의 탈을 쓰고있다는 사실에 격분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자력갱생만이 우리 민족이 근대정신생활에서 큰 질곡으로 남아있던 사대주의를 궁극적으로 추방하고 자주, 자강, 자립의 리념밑에 민족재생의 활로를 성공적으로 개척해나갈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자력갱생은 주체가 선 인간과 주체가 서지 못한 인간을 가르는 시금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일전쟁을 개시하는 첫날부터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대중을 꾸준히 교양하였다. 남들이 도와주면 좋고 설사 도와주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나라를 찾아야 하며 또 찾을 수 있다는 사상, 우에서 해결해주면 좋고 해결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만사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사상은 대중을 쉽게 공감시키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힘을 믿지 않거나 과소평가하는 낡은 사상잔재를 그대로 가지고있었다.(3 283페지)

 

핵미싸일을 민족공유의 자산으로

 

이를 지레대로 평화와 통일로 단숨에 가야 한다. 리명박《대통령》이 북의 로케트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하자 《한국》의 보수언론과 단체들은 지금 벌집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핵미싸일을 민족공유의 자산으로 삼아 이를 토대로 최첨단기술을 개발하여 늘 말해온 선진화의 날을 앞당겨야 할것이다. 발사체는 북의것으로, 거기에 장착할 인공위성은 남의것으로 아니, 그 반대로도 하여 저 멀리 은하의 세계로 함께 날을 생각만 해도 가슴벅차다.

저 강도 일본놈들이 이렇게 발광인것은 이들이야말로 항일유격대원들이 자체생산한 무기가 얼마나 무서운줄을 1937 6 30일 간삼봉전투에서 체험을 했기때문이다. 이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머리가 하도 많아 마차에 시체를 실어나르다 창피하여 시체라 하지 않고 《호박》이라고 했다고 한다. 간삼봉전투에서 일본최정예라 자랑하던 74련대는 거의 전멸을 당해 죽은 시체를 가마니에 넣어 실어나르는데 동원된 한 농민이 달구지에 싣고가는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일본병사가 하는 말이 《가보쨔》(호박)라고 대답했다.

농민은 이를 놀리기 위해 《가보쨔농사가 대풍이군요. 좋은 국거리니 많이들 자시우.》라고 했다고 한다. 간삼봉전투이후 일본놈들을 두고 《호박대가리》라는 은어마저 생겨났다. 호시탐탐 재침략의 기회만을 노리고있는 일본이 지금 북의 핵미싸일앞에 저렇게 날뛰는것도 그 리유를 알만 하다. 이런 일본에 부화뢰동하는것은 매국노나 할짓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