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2. 《세기와 더불어》의 세계화 담론

 

 《은하》, 《광명성》은 지구촌의 묵시록

  

《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

 

4 12일은 전세계그리스도교인들의 최고절기인 부활절이다.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이 온 사방에 퍼지자 가장 당황한자들은 그를 죽이는데 공모했던 무리들이다. 로마제국은 말할것도 없고 빌라도와 헤롯당들 그리고 가야바와 산헤드린에 속한 바리새인들과 세리사두개인들이 그들이였다.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기뻐 어쩔줄을 몰랐다.

2009 4 5일 오전 11 20분 《은하/광명성2호》가 하늘우로 치솟아올랐다. 북의 로케트발사에 놀라하는자는 누구이고 기뻐하는자는 누구인가? 예수의 부활에 놀라 기절초풍한 인간군상들의 무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것이 없어보인다. 당시 지중해연안 온 천하는 로마제국우산아래에서 평화를 누렸다고 하여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한다. 로마제국은 예수가 군중들을 선동하여 권력을 잡을것이라는 두려움때문에 예수를 잡아 처형했다. 그래서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문은 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헤롯당들은 이런 로마제국의 앞잡이노릇을 하며 팔레스티나 유다지방을 통치하던 분봉왕 헤롯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사대주의자들이며 자기들의 배와 자기들의 기득권지키기에 급급한 매국노집단이였다. 헤롯당들이 정치적야욕때문에 동족을 배반했다면 사두개인들은 경제적인 리익때문에 로마제국의 앞잡이노릇 하며 세금을 갈취하던자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유태교라는 종교적인 제국이 예수때문에 위협받고 무너질것이 두려워 예수를 처형하는데 가장 앞장섰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의 지형변화는 거의 달라진것이 없는것 같다. 로마제국은 미국제국주의이고 그래서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구축해놓고 전세계를 지배하고있고 헤롯당들은 이런 미제국주의앞잡이 사대매국노국가와 정권들이고 사두개인들은 신자유주의덕분에 미국을 등에 업고 돈벌이하는 재벌들이고 바리새인들은 한기총-뉴라이트무리들이다. 이렇게 상호 대차대조 표를 만들어 이 《한》(조선)반도에 옮겨놓으면 2000년이 지난 지금 그 세력판도는 하나 달라진것이 없어보인다.

 

헤롯당들의 일란성쌍둥이 사대매국노들

 

북의 로케트가 발사되자 이들 신판권력자들이 보이는 반응마저 같다. 그동안 숨겨져 나타나있지 않던 이들 무리들의 속셈들이 적라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은 이번 로케트발사로 위기의 조기진단을 받는 소득을 얻었다. 로마제국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입을 틀어막고 사정없이 박해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은 미국이 북의 로케트발사를 두려워하는 리유와 한치의 차이도 없이 같아보이는 점이다.

북의 로케트가 하늘로 올라갔건 바다에 추락했건 사정거리가 이 정도라면 백악관은 긴 탄식을 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까지 누려오던 제국의 꿈은 앞으로 물거품이 되고도 남음이 있기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미국으로서는 소름이 끼칠만 한 일이다. 온 지구주위에는 404개의 위성이 돌고있지만 북이 이번 쏘아올린 《광명성2호》는 미제국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놓고있다는 점에서 예수가 부활해 하늘우로 올랐다는것과 진배 다를것이 없어보이는 효과를 내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은 1931 9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효과를 이번에도 얻어보려고 발광수준이였다. 가해자가 피해자인양 둔갑하여 《위장기발(false flag)》을 한번 흔들어대보았다. 일본은 여러번 이런 위장기발흔들기에 성공하여 제국주의의 기초를 닦은 재미를 붙인자들이다.

이러한 미일의 전략과 전술앞에 헤롯당같은 이 땅의 지도자들이 이번에 보여준 태도는 여기서 할 말을 잃게 한다. 우왕좌왕, 부화뢰동, 오락가락, 거기다 정보전시대에 어느 하나도 자기스스로 파악한 정보도 없이 미일이 발표하는대로 따라움직이는 모습은 차라리 측은하다 할 정도였다. 미일의 야욕이 우와 같거늘 어찌 이들이 주는 정보에 의존해 수족같이 움직일수 있단 말인가?

북의 로케트발사가 그렇게도 중요하다고 추호라도 생각했었다면, 하물며 저들은 성상납이나 받으며 밤새는줄도 모르고 주지육림속에서 헤매고있지는 않았을것이다. 헤롯당들과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다. 이런 말에 미움을 사 예수는 처형당했고 이런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문은 이들을 사시나무떨듯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사대주의는 길러지는것이다

 

지금은 작고한 장공 김재준목사가 미국 인디안보호지역의 학교를 방문했을 당시의 회고담은 늘 머리속에 남는 일화가운데 하나이다. 미국백인선생들이 백인들과 인디안추장들이 싸우는 영화장면을 보여주자 인디안아이들이 모두 백인을 응원하는것을 본 장공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하고있다. 자기들의 추장들이 백인들의 총칼에 맞아 쓰러질 때마다 손벽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더라는것이다. 그 리유를 알고보니 백인선생들의 종교와 교육덕분이였다는것이다.

백인교사들이 인디안아이들에게 너희 조상들은 모두 악마 사탄의 종교를 믿었고 백인들이 모두 잘해주려 했는데도 은혜를 배신한 너희 조상들이 이를 거부하고 백인들을 학살했기때문에 인디안들을 죽일수밖에 없었다는것이라고, 죽어 마땅하다고 교육했기때문이라는것이다. 소수의 너희 조상들의 이러한 악질적행동때문에 너희들도 지금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가르친 결과였다는것이다.

무엇 하나 다른가? 오늘날 《한국》그리스도교인들이 교회안에서 설교하고 교육하는것과 무엇 하나 다른가? 그리고 학교에선 교사, 교수들이 가르치고 강의하는것과 무엇 하나 다른가? 북 하나에 미일이 달라붙어 달려드는것을 보고 지금 《한국》의 그리스도교와 장로《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가? 김재준목사는 인디안학교방문에 평생 충격을 받고 살았던것 같다.

장공은 돌아가기 불과 6개월전 로령에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단군제단에 올랐고 말년에는 그의 신학이 《한국》중심적이 되여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수메르》이고 《수메르》는 《한국》에서 간 문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세운 교파가 《그리스도교 장로교회》이고 그가 세운 한신대학교에서 문익환목사와 같은분이 나온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이 나라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미국백인들에 세뇌된 인디안들과 하나 다른것이 없어보인다. 위성발사가 실패했다는 헛소문에 저렇게 박수갈채를 보내는것이나 세뇌된 인디안아이들이 하는짓이 무엇 하나 다른가? 지구촌의 수많은 나라들이 남《한》이 같은 동족인 북의 로케트발사에 미일과 같이 저렇게 한타령인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할것이다. 마치 김재준목사가 인디안아이들을 그렇게 생각했듯이. 이렇게 사대주의는 길러진것이다.

 

예수가 부활했는가? 은하가 은하수로 갔는가?

 

예수가 부활하던 장면을 목격했다는 루가라는 제자는 《구름이 그를 가리여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있는데 흰옷입은 두사람이 그들곁에 서서 이르시되》(사도행전 1 9)라고 기록하고있다.

이런 목격담이 소문이 되여 사방에 퍼져나가자 사실여부에 관한 시비가 일기 시작했다. 《예수부활은 거짓말이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로마제국은 사방에 방을 붙여놓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치 로케트발사이후에 성패여부에 시비가 생기듯이.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잉크자욱(INKBLOT)》이란 이런 시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벽에 잉크를 뿌려놓고 무엇같이 보이느냐 물으면 다 다르다.

우의 성경기록도 자세히 읽어보라. 예수가 부활했다는것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다. 구름이 가리여 보이지 않았다 해놓고는 제자들이 자세히 보니 흰옷입은 두사람이 그들곁에 서있었다고 한다. 서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초대그리스도교회가 예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오늘과 같은 그리스도교가 될수 없었을것이라는 점이다. 그럼 예수부활이 객관적사실이냐 아니냐, 이 질문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끝나지 않고 남겨지고말것이라는것을 의미한다. 남겨지기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생명력있는 종교로 되여갈(becoming Christianity)것 이다.

그래서 부활의 객관적사실여부는 영원히 확인할 길이 없다.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은 예수는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았고 예수는 자연사를 했으며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 어느것도 그리스도교의 종교성을 훼손할수는 없다. 주관의 개입이 없는 객관은 아무 소용이 없기때문이다. 《은하2호》의 성공여부는 그 객관적성공여부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예수의 부활과 같이 지금 성공하고있다. 우리는 지금 그 성공을 부활절을 맞아 말해야 한다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은하2호》의 성공여부를 증빙하려 할 필요가 없다. 할만 한 능력도 정보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하늘에 있는것이 아니라 땅에 있다. 다시말해서 미일제국주의적근성과 그밑에서 신음하는 이 지구상의 모든 민중들의 가슴속에 은하는 영원히 저 멀리 은하수깊숙이 날을것이라는 점이다.

예수의 부활이 력사가 끝나는 날까지 시비거리로 남아야 그리스도교의 생명력이 계속되듯이 《은하/광명성2호》 역시 그렇게 되는것 자체가 결코 실망스런것만은 아니다. 은하에 대한 관심자체가 사라지는것보다는 《한》미일 저들이 자꾸만 시비거리를 만드는것자체가 은하를 더욱 성공스럽게 만들것이다.

과연 달속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있는가? 그렇다고 없는가? 우리 민족의 가슴속 깊은 곳의 잉크자욱은 이렇게 노래한다. 달속에 계수나무가 있건없건 이렇게 노래한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새 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이란 제자는 예수부활의 소문을 퍼뜨리다 체포되여 밧모라는 섬에 갇히게 되였다. 그는 환상속에서 글을 남겼는데 이를 《요한계시록(Revelation)》 혹은 《묵시록(默示錄)》이라고 한다. 성경속에 있는 묵시문학의 글들은 세상의 처음과 끝을 말하고있는 글들이다. 그중 요한묵시록은 백미를 장식한다.

그런데 지난 19701980년대 《한국》그리스도교인들이 민주화투쟁을 할 때에 가장 많이 읽힌 글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그 리유는 요한이 로마제국에 대해 저항하는 독설들을 모두 은유적인 표현을 빌려서 말하고있기때문이다. 례를 들어 네로황제를 수자 666이라 한것도 바로 이 묵시록에 나온다. 그래서 《묵시록》이란 책제명과는 달리 가장 정치적인 글이다.

이 글속에서 요한은 《만국이 그 빛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계시록 21 24)고 했다. 로마제국 하나만 있고 모든 나라들은 그밑에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때에 요한이 이런 글을 쓴다는것은 자기 목숨과 맞바꾸는것과 같았다. 모든 나라가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갈것이라는 말은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로마제국의 우산아래에 있는것이 아니고 자기나름대로 자주권을 가지고 살수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만 그러할것이라는 묵시이다.

보라. 지금 미국과 강대국만이 미싸일과 핵을 만들수 있고 미국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그렇게 할수 있다는것은 로마제국이 하던 소리짓과 무엇 하나 다른것이 있는가. 이런 판도에서 예수가 부활을 했다는 소식은 만국이 평등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하는 정치적선언이였다.

이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도 그 나라의 고유한 영광이 있는 법이다. 자기 나라의 말, 자기 나라의 언어, 자기 나라의 풍속, 자기 나라의 힘, 그 무엇이든 자기것을 가지고 자립, 자강, 자력으로 살수 있고 이것은 천부의 권리이다. 이런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것은 천부의 권리를 포기하는것이요, 신의 지상명령을 어기는것이다. 이런 자주권이 없는 나라는 나라자격이 없으며 자살이 죄인것처럼 이런 나라들도 죄를 저지르고있는것이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하늘과 처음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것이나 곡하는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계시록 21 14) 요한은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수 있는 조건을 갖춘 나라와 사람들은 반드시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나와야 한다고 한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란 말이 이를 증명한다. 과연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고난을 받은 백성은 누구일가?

이란이 같은 미싸일을 발사했을 때에 전세계가 이렇게 란리는 아니였다. 왜 이번 북의 미싸일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야단법석인가? 거기에는 리유가 있다. 그 리유는 《은하2/광명성2호》가 단순한 로케트가 아닌 그것을 초월한 이 지구상의 모든 한맺힌 민중들과 약소민족의 《한()》을 한몸에 담고 하늘높이 솟아올랐기때문이다. 이 마당에 은하의 성패를 론하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예수가 과연 부활해 하늘에 올라갔느냐 안 올라갔느냐가 그렇게 중요한것이 아니라는것이다. 고난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의 한의 잉크자욱은 분명히 예수가 흰옷을 입은채로 하늘구름속으로 올라간것으로 가슴속깊이 심어진것이다. 이 확신과 믿음은 물리적로케트보다 미싸일보다 더 강한것이다. 그래서 유엔결의를 천번만번 해도 이 지구촌 민중의 뇌리속에 심겨진 은하/광명성은 지워질수 없을것이다.

그래서 미일이 무서워할것은 이 억압받는 민중들의 한이다. 이 한이 광명성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무서워해야 할것이다. 로마제국이 아무리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사방에 퍼뜨리는 사람들을 잡아죽여도 결코 로마제국은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313년 꼰스딴찐황제는 그리스도교에 굴복하고말았다. 힘없던 민중들의 가슴속에 환히 비추이던 광명성을 결코 지울수는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더러운것은 아무것도 그 도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흉측한짓과 거짓을 일삼는자도 결코 들어가지 못할것이다.(계시록 21 27)

《불의를 행하는자는 불의를 행하도록 내버려두고 더러운자는 그냥 더러운채로 내버려두어라.(22 11)

여기서 불의한자들, 더러운자들이란 우에서 말한 로마제국, 헤롯당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저들은 앞으로 올 환란을 견디여내지 못하고 자멸하고말것이라는 환상을 보고 요한은 글을 끝맺고있다. 이것이 2009년 부활절 아침의 명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