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2. 《세기와 더불어》의 세계화 담론


  
주체사상과 《은하》의 비밀 

 

시작하는 글

 

《주체사상》없는 북을 생각할수는 없다. 그런데 남《한》일각의 주체사상에 대한 편견과 그 리해의 부족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상대방이 가지고있는 정신세계의 진수도 파악하지 못하고있는 남《한》보수우익들이 당장이라도 주체탑은 무너지고 자기들 세상이 곧 올것이라 망둥이들같이 날뛰고있는 모습을 보고 철학을 공부한 한몫으로 이들을 교양학습시키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였다. 어디까지나 필자가 리해한 한계내에서 주체사상의 내용을 검토해보는것이기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과 자유로운 토론을 환영한다.

최근 우리의 최대화두는 《은하/광명성》이다. 여러 시각에서 주체사상을 리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 관심의 표적이 되는 쟁점으로부터 시작하는 리유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감대의 폭을 넓게 하려는 의도때문이다.

쉽게 말하여 로케트/미싸일의 생명력은 사정거리에 있고 사정거리는 무게와 속도에 달려있다는 이 간단한 공식에서 이 무게(m)와 속도(v)를 조절하는 제3의 요소를 발견하는 비밀이 그 나라의 과학기술과 국력에 달려있다는것이며 무게와 속도만을 생각하는 과학을 2수분화적 그리고 여기에 조절자를 첨가하여 생각하는것을 3수분화적이라고 한다.

주체사상의 핵은 바로 3수분화적인데 있다는것이며 이런 3수분화적인 사고방식과 문화는 우리 민족 고유한것이라는것, 그래서 주체사상은 우리 민족공유의 3수분화의 문화적뿌리에 근거해 발전한 사상이라는것이 아래 글의 요약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의 뿌리는 김일성주석의 가문에 전승된것이라고 본다.

 

로케트의 역설

 

아직 빛보다 빠른것은 없다. 빛이 가장 빠른 리유는 빛은 자기자체의 질량 혹은 무게를 전혀 가지고있지 않기때문이다. 그러면 자연히 생기는 의문은 자기 무게가 없는것이 어떻게 움직일수 있느냐이다. 그런데 빛만은 그렇게 할수 있다. 질량없이 움직이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귀신이나 도깨비일것이다. 우리는 빛을 통해 속도는 질량과 관계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달리기에서 뚱보가 뒤지는 리유도 이와 통하는 말이다. 질량이 큰 뚱보로케트는 빨리, 멀리 날수 없다.

여기서 질량과 속도의 관계가 과학자들의 최대관심사가 될수밖에 없으며 량자간의 관계는 반비례적이다. 다시말해서 어느 실체가 무거울수록 속도가 늦어질수밖에 없다. 만약에 골프공을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치면 어떻게 될가? 이런 실험을 할수만 있다면 속도가 점점 줄어진다고 할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골프공의 질량은? 질량이 커지면 속도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남겨두고 로케트의 무게와 속도의 관계를 알아보는것을 통해 이 문제를 주체사상을 리해하는 지름길로 삼아보기로 하자.

우리가 차에 넣는 가솔린(혹은 《기름》, 《에네르기》라고도 함)가운데 막상 차가 달리는데 소모되는것은 겨우 0. 02%밖에 안된다. 나머지 대부분은 차를 달리게 하는데 소모된다. 즉 차의 몸무게가 대부분의 에네르기를 다 사용한다는것이다. 여기에 자동식창문여닫이 등에도 가솔린이 소모된다고 생각하면 이 말이 리해될수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에네르기절약을 위해서는 차의 몸무게를 줄여야 할것은 당연한 리치이다. 경차가 나오는 리유이다.

1970년대 중반 에네르기파동때 미국은 《베가(Vega)》나 《핀토(Pinto)》라는 소형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말았다. 당시 가난한 《한국》류학생들이 이 소형차를 샀다가 모두 손해를 보고말았다. 물론 필자도 례외는 아니였다. 실패한 리유는 무게를 너무 적게 하려 차체를 알루미늄으로 한 결과 엔진의 틈새에서 기름류출이 너무 심했기때문이고 접촉사고시 운전자의 피해가 컸기때문이다.

로케트나 미싸일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이번 북에서 발사한 《은하2호》는 무게 79t, 길이 35. 8m, 지름 2. 2m. 그런데 《광명성2호》의 무게는 비공개이다. 그 리유는 《광명성2호》의 무게(질량)는 로케트의 속도를 말하는것과 같기때문이다. 만약에 타자가 속도와 발사시점 그리고 장소만 안다면 요격은 쉬워질것이기때문이다.

다만 트럭 한대가 실을수 있는 짐의 무게가 4t정도이고보면 이번 로케트의 무게를 짐작할수 있다. 과연 이만 한 자기 무게를 가지고 초속 7. 3km의 속도로 어떻게 궤도에 진입할수 있을것인가? 진입에 성공하려면 아무리 적어도 250300t정도는 될것이라 짐작이 된다.

그래서 로케트의 사정거리를 늘이는 기술은 곧 로케트의 무게를 줄이는 기술이라 할수 있다. 물론 빛과 같이 빠르게 하자면 질량을 전혀 없게 해야 하지만 말이다. 은하의 질량을 아무리 적게 해도 《광명성2호》를 실을만큼의 질량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사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기때문이다. 은하는 수단 그리고 광명성은 목적, 그렇다면 질량과 속도의 관계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로 또 변한다. 이 정도면 벌써 로케트발사의 철학적인 문제가 등장한것이다.

 

자체권과 소유권의 문제

 

아무리 은하의 질량을 줄여도 광명성을 싣고갈 정도의 질량은 있어야 한다. 로케트의 무게를 좌우하는 결정적인것은 바로 로케트를 나르게 하는 연료자체이다. 여기서 미싸일전문가들은 무게가 적은 연료개발에 열을 올리지 않을수 없다. 이번에도 고체연료냐 액체연료냐 하는것도 바로 여기에 그 리유가 있다.

차도 마찬가지로 가솔린자체는 차를 달리게도 하지만 자기자체의 무게때문에 차를 달리지 못하게도 한다. 여기서 차가 달리는것을 《자체권(ownship)》이라고 한다면 달리는것자체는 질량을 소유해야 한다. 이를 《소유권(ownership)》이라고 하자.

하이데거는 전자를 《존재자체(Sein)》 그리고 후자를 개별《존재자(Seiendes)》라고 했다. 이제 철학의 본령인 존재론의 문제로 비화되였다. 있다고 존재하는것가운데 이 두가지 문제에 걸리지 않는것은 없다. 서양에서 《존재한다》를 existere라고 한다. ex》는 《밖》이란 뜻이고 《istere》는 《있다》라는 뜻이다. 밖에 있다는 의미가 존재한다는것의 의미이다. 무엇이 무엇의 밖에 있다는 뜻인가? 쉽게 말해서 존재권은 소유권밖에 있다는것이다. Sein(이데아 같은)은 개별존재자(Seiendes)밖에 있다는 뜻이다.

이를 순수와 불순으로 나누어 순수한 존재권으로 존재자체는 불순한 개별사물들을 소유하고있는 사물들의 밖에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이 말속에는 《있다》 혹은 《존재》한다는것은 오직 존재자체일뿐이다. 그리고 이런 존재자체는 우리의 관념속에 있다. 이를 두고 맑스는 관념론이라 하며 이런 존재자체가 밖에 있으면 객관적관념론이고 주관안에 있으면 주관적관념론이라고 한다.

여기서 자체권과 소유권의 량자를 심각하게 분리시키는 철학인 이원론적철학, 즉 플라톤철학이 등장하게 되고 이런 철학이 2 500여년간 서양사상계를 지배하였다. 자체권과 소유권을 매개하는 제3의것은 아예 없고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그 결과가 전자를 중요시하는 관념론과 그 반대인 유물론이 갈라지게 되였으며 그 분렬의 최대희생자가 바로 우리이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동시극복의 과제와 함께 현대철학자의 고민이 있다. 현대철학의 알랭 바디우는 《inexistere》라는 신조어를 만든다. 안에 그리고 밖에 동시에 있는 존재자란 뜻이다. 이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동시조화,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할수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저서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세계를 관념이나 정신의 세계로 보는 관념론자들은 더 말할것 없고 지난 시기 세계를 물질의 세계로 본 유물론자들도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에 대한 관점과 립장을 밝히지는 못하였던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는 당마크에 나타나있는바와 같은 다른 공산권에서 볼수 없는 낫과 마치가운데 붓대가 함께 있는것으로도 상징된다. 그리고 이는 바로 《상해림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관념론적철학과 동만일대에서 엠엘파 그리고 화요파와 같은 극좌맑스주의를 동시에 극복해나가는 투쟁과정에서 얻어진 행동적소산이라 할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에 주체사상의 기원은 1930년대 전후가 옳다고 본다. 북의 과학기술 역시 이런 주체사상적구조를 떠나 리해할수는 없다.

 

철학자들의 고민과 과학자들의 고민

 

추진체가 가벼우면 연료가 적게 드나 멀리 날수 없고 무거우면 멀리 갈수 있으나 연료가 많이 들고. 여기서 말하고있는 로케트를 하나의 《실체(substance)》라고 한다면 발사체의 무게 그리고 연료가 액체냐 고체냐 하는것은 실체에 대한 《속성(property)》이라고 한다. 실체는 속성없이 운동할수 없고 운동을 하면 속성이 운동을 방해하고. 그래서 실체와 속성은 서로 상보적관계이면서도 서로 상반적관계이기도 하다.

다시말해서 속성없이 실체가 운동을 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속성들때문에 실체가 운동을 할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로케트를 만들자면 실체와 속성의 관계를 잘 조절되도록 해야 하는 중간적요소를 발견해야 한다. 이런 역설적관계는 뉴톤물리학의 거시세계속에서도 발견되는것이다. 그러나 둘사이를 조절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위치와 열량의 역설과 프랑크상수

 

20세기 현대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이런 역설이 나타나는것을 알게 되였다. 만약에 빛이란 실체의 속성을 알기 위해 다른 빛으로 빛을 비춘다고 하자. 그러면 비추는 빛의 열량이 너무 크면(너무 밝으면) 관찰하려는 대상을 파괴시켜버리고(보이는 대상보다 보는것이 너무 커서) 그렇다고 열량을 줄이면(너무 흐리면) 어두워져 위치를 관찰할수 없게 된다. 그래서 관찰위치(position)와 열량(energy)은 서로 상반적이면서 상보적이다. 이는 뉴톤이 알지 못하던것으로서 여기서 1927년 닐스 보아에 의하여 상보성리론이 나오고 하이젠베르크에 의하여 불확정성리론으로 발전한다.

이는 대립물의 갈등이 지배하는 맑스의 세계관이나 이분법이 지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과는 거리가 먼것이다. 이를 두고 쿤은 과학혁명이라고 했다. 구쏘련의 붕괴의 중요원인이 고르바쵸브가 이런 신과학의 량자력학의 리론을 도입했기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신과학의 리론은 맑스의 모순률을 쓰나미같이 휩쓸기에 충분했기때문이다.

현대과학의 3대과학혁명은 상대성리론, 량자력학의 불확정성리론, 카오스리론이라고 할 때에 이 3자는 모두 전통서양의 이원론 혹은 이분법적사고와는 상반되는것들이다. 그러나 20세기 과학, 심지어는 미싸일로케트발사의 리론까지 망라하여 이런 현대과학의 리론없이는 불가능하다.

북조선에서는 사찰과 평양의 단군을 모신 숭령전 등이 모두 복원 및 복구되였다. 주체사상이 갖는 붓대정신때문이다. 여기서도 주체사상의 사람중심사상이 구별되게 나타난다. 김일성주석의 주체사상은 1930년대에 유격현장에서 체험으로 획득했던것이다.

빛의 위치와 열량의 관계를 조절하는 상수가 1900 12 14일 도이췰란드의 과학자 막스 프랑크에 의하여 발견되였다. 20세기 성탄절선물이라고까지 알려지게 되였으며 우의 3대과학혁명모두 이 상수 혹은 프랑크상수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이다. 빛과 열량과 위치를 조절한다는것은 옛 도공들이 빛의 밝기정도를 육안으로 구별하여 도자기를 굽는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이 제3의 요소인 프랑크상수는 물질의 질량과 속도의 관계를 설명할 때에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즉 질량 m, 속도 v, 물질파 L, 에네르기 E의 관계로 이 상수를 리해한다고 해보자. 아인슈타인은 1914년에 공식 Ehmv로 노벨상을 탔다. 에네르기와 질량과 속도는 비례하며 이 비례를 조절하는것이 h이다. 빛의 공식덕분에 자동문이 발명되였다. E m으로 바꾸면 mhv도 가능하다. 이는 또한 로케트가 자기 질량과 속도를 조절하는 문제이기도 하며 hm/v라고 할 때에 로케트가 자기 몸무게와 속도의 관계를 조절할 때에 사용되는 공식이다. 그후 1929 Lh/mv란 공식으로 드 브로이로는 노벨상을 탔다.

이 공식덕분에 어떤 물질속에 불순물유무를 확인할수 있고 이는 공항검색대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있다. 드디여 1929년 하이젠베르크는 적당한 운동량 x와 위치 p의 곱은 프랑크상수보다 같거나 커야 한다는 공식으로 노벨상을 탄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20세기 과학혁명을 가능하게 한것은 프랑크상수(6. 625×1027erg/sec)이다.

뉴톤과학이 질량과 속도 그리고 위치와 속도의 2수분화적관계만으로 관찰한 과학이라면 20세기 신과학은 바로 여기에 프랑크상수를 첨가한 3수분화적과학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그래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적구조란 2수분화에서 3수분화로 달라진것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량극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에 제3의 수(h)같은것이 나타나 이를 중화, 조화시키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를 두고 3수분화문화 혹은 2수분화문화라고 한다.

이번 하늘을 날은 《은하2호》도 이 3가지 법칙가운데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적용되여 수행된것이다. 3가지 법칙은 블랙홀주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례를 들어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에네르기가 빠져나갈수 있는 리유는 프랑크상수만큼의 빈틈은 블랙홀같은것속에도 있기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수 있는 빈 공간이 바로 이 상수이다.

여기서 실체와 속성의 관계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2분법적사고이다. 그리고 여기서 둘을 조절하는 요소까지 생각한다면 3분법적사고가 된다. 소위 말하는 데까르뜨-뉴톤적세계관이란 이런 2분법적사고방식이 철학과 과학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전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서구에는 오래동안 이런 2분법적사고가 발달하여 사물을 실체와 속성의 관계로만 파악해왔다. 이것은 오랜 서구전통속에 고질적으로 있어온 사고방식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사물의 관계를 량분화시켜놓은이래로 그 피해는 지금 우리 《한》반도에 와 병목현상을 만들어내고있다.

 

상수는 주체에서 나온다

 

우리는 주체사상을 읽는 가운데 맑스사상에서 일탈하는것을 실체와 속성의 관계에서 읽을수 있다. 실체와 속성은 운동과정속에서 변해나간다는것이며 이 과정자체가 속성을 변화시키고 그래서 실체도 바꾼다는것이다. 그래서 어느 물질도 고정된 고유한 실체와 속성을 가질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상론할것이다.

문제는 자연과학의 발달과 창의성이 결코 인문사회과학과 별개의것으로 생각할수 없다는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연과학의 사회과학적배경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는다. 례를 들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리론만 하여도 이미 19세기 중엽 기하학, 특히 비-유클리드 기하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된바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교통수단의 발달과 함께 지구촌이 서로 상대적인 관계속에 있다는 사회적현상에 힘입어 아인슈타인이 이를 1914년 일식때에 상대성리론을 증명, 발표하게 된것이다.

불확정성리론도 보어나 하이젠베르크 등이 동양사회를 려행한 후 동양의 역리론같은데서 확신을 얻어 상보성리론을 확정, 발표하게 된다. 그래서 보어가 노벨상을 탈 때에 음양마크를 들고 시상식에 나타난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와 같이 과학리론이 정치사회 그리고 문화환경적요소와 별개인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조선의 《은하2/광명성2호》발사라는 독창적인 최첨단과학기술앞에 모두 놀라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사회구조의 변화가 자연과학을 앞지르고 인간의 내면적주체의 세계가 자연과학의 현상을 앞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리학자인 카프라나 쥬커브 같은 물리학자들이 결국 동양의 정신세계에 몰입해버린 리유도 바로 자기들 필생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의식세계를 결코 앞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광명성에 나타난 첨단과학을 기계기술에서 찾기 이전에 북의 주체사상속에서 그 비밀을 찾아야 할것이다. 주체사상을 다방면으로 말할수 있지만 가장 쉽게, 가장 보편적으로 정의해 일단 말해본다면 필자는 《3수분화》라고 해두고싶다.

우에서 물질의 운동량과 위치 그리고 질량과 속도 등에는 반드시 제3의 상수가 그 사이에서 작용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수 (常數)에 해당하는것이 바로 《주체(Juche)》이다. 그래서 주체가 없거나 바로서지 못하면 아무 일도 안된다. 마치 프랑크상수가 없이는 아무 작용도 불가능해지는것과 같이 말이다. 주체의 담지자는 《사람》이며 사람은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이다. 운동의 주인이 사람이다. 관념이나 물질에 노예적삶을 살아왔기때문에 사람이 주인행세를 하지 못한것이다.

3수분화 혹은 3원주의는 북의 사회주의헌법(1998)에 잘 반영되여 있다. 주권은 《로동자》와 《농민》 그리고 《근로인테리》에게 있다.(4조와 제8) 각급 주권기관은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원칙에 따라 비밀투표를 한다.(6)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벌리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한다.(9) 특히 이 제9조의 경우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의 구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자주, 평화, 친선으로 한다.(17) 그리고 주체사상의 3대원리인 의식성, 창조성, 자주성은 3수분화의 대미이다. 북의 한의학자 지만석과 지성광은 《고려의학원리》(2002)에서 인체에서 이러한 3수적조화의 원리를 《부반결합조절》이라고 했다.

 

3수분화의 유래는?

 

그러면 이러한 3수분화의 구조가 어디에서 유래했느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회고록에서 찾아야 할것이다.

김일성주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두말할것없이 선친 김형직선생이다. 회고록 1권에서 김형직선생은 김주석에게 혁명가의 3대각오라고 하면서 《혁명가는 어디 가나 항상 3대각오를 가져야 한다. 아사, 타사, 동사, 다시말하여 굶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를 가지고 처음 먹은 원대한 뜻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나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깊이 새겨들었다.(1 126페지)고 썼다. 김형직선생의 《지원(志遠)》사상에 기초한 3대각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 두자루의 권총을 두고 유산이라고 한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지원>의 사상, 3대각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 두자루의 권총, 이것이 내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유산의 전부였다. 그것은 모진 고생과 희생을 전제로 하는 유산이였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훌륭한 유산이 없었다.(1 129페지)라고 술회하고있다.

이런 유산은 화성의숙시절 천도교의 3수분화문화에 접목이 된다. 최동오선생은 중국의 3민주의에 류사한 국본, 민본, 인본의 삼본주의를 강의했다. 그리고 천도교는 3대개벽인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을 말한다. 그리고 조국광복회를 조직할 때에도 3명정도이면 1개의 분회를 만들고 3개의 분회가 상위조직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 모든 3수분화의 정신을 《백두정신》으로 요약하면서 김일성항일유격대는 백두산을 향해 나아가고있었다. 백두산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령산이고 3원철학의 본산지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