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2. 《세기와 더불어》의 세계화 담론

《잃어버린 10년》의 반을 잃어버린 2MB의 위기 

정치가의 생명력은 잘 만들어진 구호와 그것을 통한 대중선동에 있다. 다시말해서 한 정치가의 선동적인 구호는 그 정치가의 생명과도 같다. 《한나라당》과 리명박《대통령》(아래 《리명박》으로 통일)이 지난 《대선》때에 만들어낸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만큼 성공적인것도 없었을것이다. 1950년대말 《못살겠다 갈아보자》고 한것만큼의 효과를 낸것이 바로 이 구호였다.

로무현 전 《대통령》(아래 《고 로무현》으로 통일)의 죽음의 가까운 원인은 검찰조사이지만 먼 원인은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에 있었다고 진단해본다. 김대중과 로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통치기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청산과 부정이 이 구호에 담긴 의미였다. 리명박과 《한나라당》은 《정권》을 잡은 다음에도 이 구호를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하면서 구여권세력들을 사정의 칼날앞에 줄세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 앞줄에는 고 로무현이 서있었다. 재벌들앞에서는 그렇게도 무디던 검찰의 칼날이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앞에서는 말그대로 서슬이 시퍼랬다고 하는것이 적당한 표현일것이다.

그런데 리명박은 지금? 로무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잃어버린 10년》의 반을 잃어버리게 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더이상 로무현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 지지세력을 결집시킬 대상을 상실하고말았다는것이다. 그래서 이번 로무현의 죽음에 가장 큰 손실을 입은 사람은 바로 리명박자신이다. 로무현이 죽지 않고 살아 버티여야 구호의 약효가 발할터인데 그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로무현이 해놓은것을 생이뽑듯이 하나하나 뽑아내는 일환으로 검찰조사라는 전가의 보도를 하나 꺼내들었으나 인간 로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말았다. 리명박은 자기 지지층을 결집시키던 수단이 하나 없어진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이제 남은 임기동안 잃어버린 남은 5년의 보도를 휘둘러야 할 판이 되였다.

고 로무현의 죽음은 지금 몇가지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를 내고있다. 먼저 로무현의 승부수는 늘 적중했고 그의 승부수에 그의 적들은 번번이 당하고말았다. 지난번 탄핵때에도 그의 적들은 로무현을 권좌에서 끌어내릴줄을 알고 행동을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줄줄이 당하고말았다. 이번에는 자기 몸을, 아니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던지는 승부수를 두었다. 승부수치고는 너무 큰것이였다. 삼손이 마지막카드를 빼들었을 때 건물의 기둥이 빠져 건물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살을 당하고말았듯이 지금 로무현의 적들도 혹시나 삼손의 효과가 나지나 않을가 전전긍긍하고있다.

다음으로 이번 추모행렬이 보여주는 효과는 대외적으로 지대하다.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던 《대통령》이 이렇게 《한》국민들에 의해 존경을 받고있는 모습을 추모행렬을 통해 가시적으로 확인한 미국, 나아가 일본으로서는 《한》국민들의 진정한 정치의식 내지 력사의식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있다. 고 로무현은 10. 4선언을 성사시켰고 군사분계선(MDL)을 자기 발로 걸어서 넘는 첫번째 《대통령》이였다. 추모행렬의 모두가 그의 정치적견해를 지지하는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죽음이 가져오는 효과에서 이 점을 빼놓을수는 없을것이다.

실로 이번 로무현의 승부수는 머리털이 잘린 삼손이 자기도 죽음을 각오하고 적들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것과 비교할수 있을것이다. 그의 유서에는 일언반구도 담기지 않은 자기의 시체를 밟고 넘어 《산자여 따르라》는 숨은 언어는 지금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퍼져나가고있다. 봉하마을의 추모인파는 어디로 발길을 돌릴지 모른다. 리명박은 지금 전전긍긍하고있다. 서울광장을 열지 않는것이 바로 그의 초조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있다. 그의 초조한 이 심사가 그대로 반영된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26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전면참여라는 급작스런 결정에서 여실히 나타나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고 결정이다.

왜냐하면 그가 결정해야 할 일은 다른데 있었기때문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10년》이 얼마나 잘못되였는가에 대한 대()국민사과와 반성 내지 성명을 먼저 발표하는것이였어야 했다. 지난번 초불정국때와 같이 이번 조문기간동안에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또 한번의 기회를 놓치는것이 될것이다. 정녕 사과를 하지 않을진대 초불이 아니라 홰불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살길을 제시해주는 말도 벌써 쓸데없을줄로 안다. PSI참가선언자체가 10. 4선언을 깡으로 무시하고 나가겠다는 신호이기때문이다. 전혀 반성하지도 않고 진단도 제대로 하지 않고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있다는 말이다. 27일 추모제의 열기는 정동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타고넘쳤다. 북핵실험에 랭기가 돌고 추모발길은 줄어들줄 알았는데 전혀 약효가 나지 않고있다. 그래서 여당 원내대표는 국민들이 안보불감증에 걸려있다고 했다.

리명박의 눈에는 로무현의 죽음이 《잃어버린 10년》 하나 청산한것으로 여기고있는것 같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청산의 일환으로 보는지 고인의 뜻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였다.

리명박은 지금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자기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정책이 송두리채 뿌리뽑힌다는것을 외국이 이젠 다 알고있다면 리명박의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모르고있다. 그래서 이 구호는 자기를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위험천만한것이라 아니할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 나라 지도자로서 력사관과 시간관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처사라 아니할수 없다. 오죽하면 공자마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했겠는가?

이런 사실을 조금이라도 모를리 없는 리명박이 지금 이렇게 막 나가는것은 리유가 있을것이다. 다시말해서 자기부터 《대한민국》의 력사는 다시 쓰이고 나라는 새로운 건국을 해야 한다는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자체에 위험성이 있는것이 아니라 리명박《정부》를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고 이를 지켜, 다시말해서 자꾸자꾸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아집과 고집에 사로잡히지 않을수 없게 하는것이 바로 구호에 담긴 화두이다.

우려된다. 이 나라의 하늘에 재앙의 먹구름이 몰려오고있지나 않는지 우려가 된다. 단군이래 나라의 최고통수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으로 생을 마무리한 인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나라가 빼앗겼을 때에도 고종은 자살을 하지 않았다. 단종도 자살을 하지는 않았다. 신하들과 대신들이 그랬을망정 왕자신이 그러지는 않았다. 아무리 퇴임한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한 나라의 통수권자가 후임자의 압박에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것은 상스러운 일은 아니다. 말을 바꾸어 《정치적타살》에 의한 자살이란 말이 지금 별별 의혹을 야기하고있다.

대한문앞 조문행렬가운데 있는 자라나는 이 나라의 어린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부디 이 못난 어른들의 선택이 불행한 결과로 돌아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뿐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의 반을 잃어버린 리명박에게도 더 잃을것이 없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의 불행이 곧 이 나라의 불행이라는것을 안다면 부디 온고이지신의 교훈을 잊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29일 영결식이 끝난 다음에도 깨닫지 않는다면 인간 로무현의 죽음은 실로 이 땅에 불행을 불러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