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2. 《세기와 더불어》의 세계화 담론


부엉이바위의
《나비효과》가 두렵다

 

시작하는 글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그 나라에 어떤 후과를 가져올지 상상하기조차 두렵고 무섭다. 일본의 자객에 의하여 타살당한 명성황후의 죽음과 그 결과를 우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베이징하늘우의 나비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이 대서양을 지나가는 허리케인의 진로를 바꾼다고 하여 이를 현대과학에서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고 한다.

심지어는 그러하건대 일국의 전직 《대통령》의 비명의 죽음이 어떤 나비효과를 만들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명성황후서거이후 망국과 같은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케 할지 아니면 나라의 앞날에 오색령롱한 무지개가 떠오르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불안하고 두렵기만 하다. 나는 2009년 나비효과를 《부엉이바위 나비효과》라 이름붙여 우리 현실을 짚어 생각해보려 한다.

 

 

부엉이바위에 선 우리모두들

 

서양에서는 새가 《노래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운다》고 한다. 울어도 청승맞게 우는 새가 부엉이이다. 내가 자라던 시골 고향마을에서는 부엉이가 울 때면 동네사람들이 이렇게 따라불렀다.

 

《부엉 부엉 부엉

지집* 죽고 자식 죽고 논밭 천지 다 팔아먹고

부엉 부엉 부엉》

    (* 여기서 《지집》이란 강원도 남부지방의 《계집》의 방언이다)

 

이 노래말이 고 로무현《대통령》의 사망과 함께 다시 나의 뇌리속을 맴돌고있다. 하필이면 로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삶을 정리한 바위가 《부엉이바위》라고 하니 이 노래말이 다시 귀전을 울리며 가슴저미게 한다. 시골동네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처량한 자기 삶의 처지를 이 노래에 투사하고있었다. 어떤 불행한 사나이가 계집 잃고, 자식 잃고, 가지고있던 논밭마저 다 팔아먹고 이제 하루 세끼 풀칠도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이 노래를 불렀던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인간군상들이 한두사람이 아닌 마을, 동네 온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가 아니였나 하고 추억해본다.

부엉새는 우리 대중가요가운데 《천둥산 박달재》 그리고 《울고넘는 고모령》 등의 노래말에도 등장한다. 우리 서민대중이 가장 애창하는 가요속엔 빠짐없이 부엉새가 등장한다. 5 29일 서울광장에 모여 로제를 지내던 날 추모인파가 모여 구성지게 우는 모습을 보면서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로무현 전 《대통령》의 처지와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는것만 같았다. 마치 서글픈 부엉이우는 소리를 자기 신세에 대응시키듯이 말이다.

이에 대하여 김근태 전 의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로 전 《대통령》을 조문한 배경과 관련, 《국민들이 로 전 <대통령>모습에서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때문》이라며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일자리조차 몽땅 비정규직인 상황 등에 내몰린 국민의 처지와 로 전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다르지 않아서 눈물을 흘린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부엉이바위에 선 로 전 <대통령>의 짙은 외로움이 바로 국민의 마음》이라고 했다.

6 5일 낮 쌍룡자동차 평택공장앞에서 한 로동자의 안해는 서럽게 울었다. 그는 도로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아 품에 있던 갓난아이를 꼭 끌어안은채 흐느꼈다. 아기도 엄마를 따라 울었다. 또 다른 안해도 드러누웠던 길바닥에서 일어나 눈물을 훔쳤다. 다른 10여명의 안해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안해들은 <일한 죄밖에 없다>, <정리해고를 철회해달라>고 웨쳤지만 박영태관리인은 용역의 힘을 빌려 안해들을 뿌리치고 공장을 떠났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쌍룡차로동자들은 안해에 대한 미안함과 회사에 대한 분노에 긴 한숨을 내쉬였다.(오마이뉴스 6 5) 이것은 이 사회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부엉이바위앞에 선 우리모두의 사회적성격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 전 의장과 비슷한 말로 사람들은 지금 자기들의 처지와 신세를 부엉이바위 낭떠러지앞에 서있는것 같이 여기고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회심리적현상을 에리히 프롬은 《사회적성격(social character)》이라고 했다. 그렇다. 앞으로의 우리 력사는 이 사회적성격이 어떻게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서 나비효과가 다르게 나타날것이다.

즉 나라의 운명이 비참한 비극으로 끝날지 아니면 희망으로 승화될지는 바로 지금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사회적성격이 어떤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느냐에 달려있다. 로무현《대통령》이 자기의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자기의 죽음이 어떤 나비효과를 이 나라에 가져올지를 생각하지 않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말이 없다. 그의 유서에도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운명》이라고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나 그의 선택은 이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었다는것을 믿기때문에 그의 부엉이바위우의 나비효과는 건강한 날개짓을 할것을 믿어의심치 않을뿐이다. 락관적인 미래는 바로 우리의 사회적성격에 대한 옳바른 진단과 선택에 달려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성격의 두 얼굴

 

다시말해 프롬은 력사변혁은 개인적성격이 사회와 일치할 때 가능하며 이를 《사회적성격(social character)》이라고 했다. 만약에 어느 영웅이 력사를 바꾸어놓았다면 그것은 그 영웅의 《사회적성격》때문이라고 말할수 있다는것이다. 《로무현》은 희대의 풍운아인가 영웅인가? 이 나라를 지키는 바다의 룡으로 남을것인가 아니면 소에 갇혀있는 이무기로 남을것인가? 점쟁이에게 점이라도 쳐보고싶은 심정이다. 프롬은 《사회적성격》에 관해 그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부록 《성격과 사회과정(Character and Social Process)》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회적성격은 개인이 지니고있는 특성속에서 어떤것을 빼낸것으로서 한 집단의 성원이 대부분 가지고있는 성격구조의 본질적인 핵심이며 그 집단에 공통된 기본경험과 생활양식의 결과로 발달된것이다.(프롬, 1984, 245페지)

개인마다 태여난 출생신분에 따라 이질적요소가 있겠지만 일정한 상태에서 인간의 에네르기가 하나의 생산적인 힘으로서 어떻게 형성되여 작용하는가를 리해하려면 그때에 《사회적성격》은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성격이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이 사악한 면과 선량한 량면성을 가지고있다는 점이다. 전자에 해당하는것이 히틀러의 사회적성격이고 후자에 해당하는것이 루터나 최제우 등의것이다. 그렇다면 로무현의것은?

 

히틀러의 사회적성격과 나치즘의 등장

 

어떤 사상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수 있는가를 알려면 그 사상의 담지자자신의 사회적성격이 사회에 부응하는가를 고찰해보아야 한다. 례를 들면 도이췰란드에서 나치즘이 등장하는 배경도 히틀러라는 개인의 사회적성격을 규명하지 않으면 리해될수 없다. 당시 도이췰란드의 로동자들은 좌익에 속해있었지만 결국 히틀러의 나치즘에 끌려들고말았다. 그 리유는 그들의 사회적성격이 《고립된 권위주의를 뿌리깊게 갈망하고 그것을 존경하고있었기》때문이라는것이다. 결국 그들은 히틀러의 강력한 지도력에 매료되고말았다. 그리고 히틀러의 사회적성격이 이들의 성격에 부합될수 있었다. 《다시말해서 사상이 강력해질수 있는것은 그것이 어떤 일정한 사회적성격에서 현저하게 보이는 어떤 특수한 인간적욕구에 부응하는 한에서이다.

프롬은 도이췰란드인들이 나치즘에 빠져든 요인들을 다음과 같이 렬거했다.

1918년에서 1923년에 걸쳐 그 정신적상태가 울분에 가득차있었고 사디즘으로 된 중하층계급이 존재했다는것, 1929년초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에 의하여 묵인되였던 도이췰란드군국주의적세력의 힘의 증대, 반자본주의적운동의 발달에 따른 중공업자본가들의 두려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그들의 적으로 삼은 공산주의자들의 전술, 재능은 있었지만 반미치광이이고 기회주의자인 선동가가 있었다.(프롬, 1992, 205페지)

이것이 나치즘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며 당시 대다수 도이췰란드인들의 사회적성격은 히틀러의 사회적성격과 일치했다는것이다. 개인 히틀러의 성격은 그 당시 도이췰란드의 중하층계급의 성격에 일치했으며 이런 합치점에서 도이췰란드나치즘은 등장한다. 륙군하사라는 경력이외에 특별하게 내세울만 한 학력도 경력도 없었던 히틀러가 칸트와 헤겔을 낳은 3 500만명 게르만민중의 지도자로 떠오를수 있었던 리유는 《20세기의 불가사의》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사회적성격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불가사의도 리해할만 한것으로 여겨진다. 즉 제1차 세계대전패망이후 베르사이유조약에서 도이췰란드에 부과된 가혹한 배상금에 대한 부담으로 고통을 겪고있던 도이췰란드인들은 히틀러를 통해 《옛 게르만의 영광》을 다시 찾을수 있다고 착각했다. 이는 마치 우리 나라에서도 IMF사태이후 박정희향수가 되살아나는 현상과 같으며 이것이 바로 2007년 리명박의 《경제살리기》구호에 빠져버린 리유이다. 히틀러는 그 당시 도이췰란드인들의 심리상태를 샅샅이 읽을수 있었고 이를 리용하여 그는 집단최면을 걸었으며 도이췰란드인들은 그 최면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갔던것이다. 이러한 독재에 대한 향수를 마조히즘적인 현상이라 하며 이를 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서구식민주주의의 관건이라고 할수 있는 다수결의 원칙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33년 히틀러는 그의 나이 겨우 44살때에 최면에 걸린 대다수의 지지속에 다수결원칙에 의해 합법적으로 총리자리에 오른다. 리명박의 어린시절의 고생담 그리고 TV화면의 그의 로동자다운 험한 손 등은 서민들로 하여금 어떤 최면에 걸리도록 하는데 주효하였다. 나치즘보다 더 원초적인 최면이다. 박정희는 이 최면으로 《정권》을 18년동안이나 유지할수 있었고 지금도 이 최면에서 깨여나지 못한 대중들은 리명박에게로 접목되였다.

이렇게 1929년에 도이췰란드인들은 히틀러와 사회적성격이 일치하여 나치즘에 빠져들게 할만 한 요소들이 있었다. 히틀러는 주로 사람들이 흥분하기 쉬운 밤 8시이후 집회를 열었으며 그의 카리스마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에 주력했다. 19201923년사이에 도이췰란드 중하층계급은 사디즘적울분과 분노로 가득차있었다.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라는 구호는 로무현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며 드디여 투표에 의한 다수결로 일을 내고말았다. 지난 5 29일 대한문앞에서 어떤 한 시민은 리명박을 찍은 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싶다고 할 정도였다. 로무현의 죽음이 집단최면에서 해방돼나오기 시작하는 한 장면이였다.

도이췰란드의 중하층계급의 사회적성격에 대하여 히틀러의 그것은 잘 어울릴수 있었다. 즉 히틀러의 모험성과 투쟁성은 1930년대 중하층 도이췰란드인들의 사회적성격과 리상적으로 들어맞았다. 히틀러의 사회적성격은 중하층계급의 가치관과 변화된 가치관사이를 비집고들어가 설자리를 찾았던것이다. 이것이 나치즘이 발생한 배경이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에 페병 등 온갖 질환을 앓았으며 또한 극심한 가난과 사병생활의 경험을 통해 개인적성격이 과도하게 투쟁적이며 모험적으로 변했다. 그의 사디즘적인 성격은 유태인학살로 이어졌으며 그의 이러한 광적인 성격마저도 그 당시 평균적중하층 도이췰란드인들의 사회적성격과 부합되여 정치적으로 그 격이 올라갈수 있었다. 히틀러의 성격은 일반대중에게는 상식적인것이였고 합리적인것으로 통해있었다. 이를 《사악한 사회적성격(malicious social character)》이라 할수 있으며 이러한 사악한 사회적성격이 2007년 《한국》사회에 팽배해있었던것이다.

다시말해서 2007년 《대선》때에 이런 집단최면에 걸려있었으며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단행했던것이다. 독재를 해도 좋으니 경제만 살려라 하는것이 특히 자영업자들사이에 확산돼있었고 이 집단최면적사회적성격은 지금도 유효하여 《리명박다음은 박근혜이다.》로 이어지고있다. 진보진영이 이런 대중집단을 최면에서 풀어내는 작업, 이것이 운동의 최대과제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말해 군말이 될 그것은 로무현 전 《대통령》의 부엉이바위에서의 투신은 이런 집단최면상태를 일시에 씻어내기에 충분했다는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2007년 집단최면에서 풀려나 자기를 최면에 걸게 한 주인공들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속았다.》라는 말 한마디로. 그래서 그의 죽음의 나비효과는 일단 이 나라를 건강하게 할것이라 진단하게 된다.  

 

선량한 루터의 사회적성격

 

사회적성격이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산하여 력사발전에 크게 공헌한 례도 있다. 에릭 에릭슨의 《청년 루터》는 이런 점에서 필독의 양서이다. 루터 역시 어린 성장기에 엄격한 아버지밑에서 성장하였고 루터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 대한 저항심과 반항적인 성격으로 일관된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그의 개인적성격이 그 당시 새로 등장하던 계급인 중소상인들의 성격과 완전히 일치했다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상인들은 로마카톨릭의 권위에 압살당해 사회적인 모든 리익과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당시 교회의 권위에 맹종하면서 리권을 누리던 계급은 상인들이 아니고 농민들이였다.

이러한 신흥상인들의 성격은 루터의 성격과 합의점을 찾게 되여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였다. 카톨릭의 립장에서 볼 때에 종교개혁을 보는 시각이 다르겠지만 세계력사에 루터의 종교개혁이 차지하는 신선한 충격은 무시할수 없다. 루터의 《아버지》라는 상징은 바로 카톨릭교회였으며 이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루터의 성격과 상인들의 성격은 일치되였다. 루터의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저항이 중소상인들의 카톨릭교회에 대한 저항과 일대 일로 대응하여 종교개혁이 가능하게 되였다는것이다. 그래서 이들 상인들은 루터를 특별보호하고 은신처에 숨겨 생계비를 도와주고 심지어는 성경을 도이췰란드어로 번역하는데 모든 비용을 부담하였다. 당시 이들 상인계급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은 공념불이 되고말았을것이다. 종교개혁을 성공시킨 이후 루터가 농민들을 그렇게 박해하였고 그 리유로 도이췰란드에서 농민전쟁이 발발한것으로 보아서도 사회적성격이 력사변화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짐작할수 있다.

구한말 조선의 최제우의 사회적성격은 당시 농민들의 그것과 일치하였다. 어린시절 조실부모하고 살던 집마저 갑자기 화재로 소실된다. 나라안은 삼정이 문란하여 민중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국운은 말그대로 풍전등화와 같았다. 이때에 수운의 개인적처지는 당시 민중들의 그것과 합일되여 동학농민혁명을 가능케 했던것이다. 이와 같이 루터의 종교개혁과 그리고 수운의 동학농민혁명은 모두 한 개인의 사회적성격이 그 사회의 어느 계층과 일치하여 사회변혁을 건강하게 유도한 례들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성격을 히틀러의 그것과 대조하여 《선량한 사회적성격(virtuous social character)》이라 할수 있다. 력사와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회적성격이라고 할수 있다.

인간 로무현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투신을 통해 이룩해놓은 사회적성격은 누가 지울수 있는 성격의것이 아니며 《한국》현대사의 한 장면은 새로 형성된 사회적성격과 함께 만들어져나갈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후-사건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스스로 기발이 된, 바보 로무현

 

지금 보수우익들은 한편으로는 가장 두려워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부러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렬등감을 가지고 로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을 바라보고있다. 이들은 봐라, 좌파《대통령》이란것이 이렇게 비도덕적이였으니 좌파나 우파 갈아보았자 똑같다. 그러니 아예 좌파《대통령》 뽑을 생각하지 말고 《정권》교체같은것은 생각도 하지 말라는 대국민경고장을 보내기 위해 소위 로무현가족비리를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들은 자기들자체의 도덕성을 내세울 근거도 리론도 없이 국민들이 정치허무주의에 빠져들기만을 정치생명줄로 삼고있다.

그들은 1997년과 2002년 두차례나 좌파《대통령》이 선출되는것을 보고 아예 《정권》교체란 희망자체를 절단시켜버리려 했었다. 그러나 이번 로무현《대통령》앞에 모여드는 추모행렬을 보고 자기들에게는 왜 저런 인물이 하나 없나 하는 렬등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전두환, 로태우, 김영삼장례식에도 저렇게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룰가 상상적비교도 해본다. 이 보수우익들은 민중민초들과 사회적성격이 같은 지도자를 갖기란 앞으로도 절대 불가능하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이렇게 서울광장은 실로 세기와 더불어 영광스런 사회적성격의 현장이였다. 세계 어느 혁명보다 못지 않은 인파가 운집하였다.

만약에 로무현《대통령》이 살아서 기발을 들고 리명박《정부》를 향해 정면승부를 거는 싸움을 한판 벌렸다면 과연 어떤 효과를 내였을가?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낼수 있었을것인가? 나비효과는 유기체적구조를 전제하지 않으면 리해 안되는 측면이 있다. 과연 모든 베이징하늘의 나비날개짓이 대서양을 지나는 허리케인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이라도 할수 있단 말인가?

이 증명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있는 콤퓨터를 여는 순간 알수 있게 된다. 만약에 전산망에 들어가 인터네트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자편지를 보낼 때에 상대방주소의 점 하나, 철자법 단 한자만 틀려도 전혀 련결이 안된다. 바로 이것이 나비효과이다. 전산망속에서는 점 하나가 온 세계이고 우주이다. 전산망이 그만큼 하드나 소프트가 모두 유기체적이기때문이다. 이 말은 전산망같이 빈틈없는 유기체적이 아닌 곳에서는 나비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래서 모든 나비날개짓이 효과를 내는것은 아니다.

답은 주어졌다. 부엉이바위우에서의 《대통령》의 투신이 나비효과를 내자면 전산망같은 유기체적구조속에서만 그것이 가능하다는것이다. 로《대통령》의 죽음이 지금까지는 검찰총장 하나 자진사퇴케 하는 효과를 내고있을 정도이다. 그러면 언제 어떻게 이런 유기체적현상, 즉 나비효과가 일어나는것일가?

다시 우의 질문으로 돌아가 만약에 로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광장에 나타나 혁명아로 자처하면서 기발을 흔들고 우리를 향해 자기를 따르라고 했다고 해보자. 과연 수백만의 군중을 그가 동원해낼수 있었을가? 생각건대 불가능했을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성격을 형성하기 힘들었을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그가 이렇게 많은 군중을 동원할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기발을 흔든것이 아니라 《자기스스로가 기발》이 되였기때문이다. 이를 두고 《자기 귀속적(selfbelonging)》이라고 한다. 완전한 유기체적세계는 이렇게 기발흔드는자가 기발자체가 되여야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혁명자체만을 사랑한 혁명아는 종종 자기자신이 기발을 흔드는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기발이 되여버린다. 6일 세상을 떠난 강희남목사의 자결도 이런 맥락에서 리해되여야 한다. 자기 조직하는 우주나 유기체적생명체에 필수적인 조건은 바로 자기 귀속이다. 그런데 우리 시위현장에는 기발이 너무 많고 기발을 흔드는자만 있을뿐이다. 그래서 안 변한다. 자기 귀속이 없는 곳에 나비효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알랭 바디우는 이러한 자기 귀속적일 때만 《사건(event)》이 발생한다고 했다. 사건이란 부엉이바위에서 자기자신의 몸을 던짐으로써 자기자신을 사건속에 스스로 귀속시키는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개인에게 엄청난 희생을 의미한다. 혁명적영웅이 기발을 흔들다가 자기자신이 스스로 기발이 되여버리는것을 두고 《사건》이 발생한다. 쉽게 말해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쥐가 고양이의 밥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혁명의 영웅들은 이렇게 자기자신이 기발자체가 됨으로써 혁명을 성공시킨다. 성공한 혁명은 이런 자기 귀속으로만 가능하며 이를 두고 사건화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4. 19 5. 18 모두 사건화되였다. 로무현《대통령》은 스스로 사건의 객체이면서 주체가 되였다. 이것이 사회적성격이 형성되는 배경이다.

여기서 사악한 사회적배경과 선량한 사회적배경의 차이가 분명해졌다. 전자의 경우 히틀러에게서 보는바와 같이 자기 귀속없는 군중우에 군림하는 사회적성격은 력사의 큰 오유를 남기게 된다. 리명박《정부》가 집단최면을 통한 위장된 사악한 사회적성격은 바로 약자속에 자기 귀속을 못하였기때문에 실패로 끝날것이 명약관화하다. 《비즈니스 프랜들리》, 이 한 말로 리명박의 모든것은 종말을 고하였다. 국민우에 군림하는 경찰통치는 이의 자연스런 연장이다.

이제 남은것은 산자의 몫이다. 기발이 된 로무현의 뒤를 얼마나 따를것이냐, 이것이 남겨진 우리의 화두이다. 그리고 그가 《원망하지 말라 슬퍼하지 말라》고 한것은 자기자신이 기발자체가 되였기때문에 더이상 너희들은 기발이 되지 말라는 말이다. 기발인 자기 자신을 마음껏 흔들어 좋은 세상 만들라는 신호이다.

혁명의 기발은 흔들어도 자신이 기발이 되지는 않는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로무현은 락선을 각오하고라도 지역주의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3번이나 출마를 했다. 이를 두고 《바보》라고 한다. 자기 귀속을 하는것을 두고 《바보》라고 한다. 아감벤이 말하는 례외자가 되여야 하는데, 즉 남더러 하라고 하고는 자기는 빠지는것이 현명한 태도인데 로무현은 정말 바보였다. 보수우익이 하나 하지 못하는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귀속이다. 절대로 자기희생을 치르려 하지 않는것이 우익의 특징이기때문이다. 그래서 로무현과 강희남의 선택은 좌파만이 할수 있는 선택이다. 자살과 자결과 자진도 구별 못하는 우파종교인들은 이들의 죽음을 훼손하는 네거티브전략밖에는 무기가 없다.

 

북부조선의 등장과 사회적성격

 

지금 남《한》의 보수우익들은 로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을 통해 좌파를 리해할수 없듯이 북측인민들이 그렇게 김일성주석의 서거에 애도하는 분위기를 리해할수 없다. 역시 분노와 두려움과 시기의 눈으로 바라보고있다. 왜 자기들에게는 이런 지도자가 없는가 하고 탄식도 해본다. 역시 마찬가지 론리이다. 사회적성격은 나비효과의 일환이며 결국 자기 귀속이라는 기발을 흔드는 주체가 아니라 기발자체가 되여버리는 리유이외에 아무 다른 리유가 없다고 했다. 하나가 전체가 되고 전체가 하나가 되는 유기체적인 집단생명체란 리유때문이다. 집단생명체란 바로 사회적성격이 있은 다음에 따르는 현상이다.

이렇게 사회적성격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북의 현대사도 바라보지 않을수 없다.

김일성주석은 평양 만경대에서 태여나 어린 10, 20대에 이미 부모를 다 잃고 삼촌과 동생들이 모두 일제에 의하여 희생당한다. 외가도 모두 같은 경우를 당하였다.

김주석의 사회적성격은 당시 나라잃은 인민대중들의 그것과 같았으며 이러한 사회적성격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이라는 량날을 동시에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성격이 지금까지 북조선사회를 추동시키는 원동력이다.

떠밀릴대로 떠밀린 당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10대의 김주석의 사회적성격과 하나였다. 이룩한 업적은 실로 혁명적이였다. 토지개혁과 반민족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완벽한 청산은 이러한 사회적성격없이는 불가능했었다. 단군이래 고착된 계급을 한순간에 뒤집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을것이다. 병안에 고인 물은 자주 흔들어주어야 썩지 않듯이 고착화된 계급 역시 력동적인 힘을 주기 위해서는 뒤집기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느 한 개인의 사회적성격이 당시 억압받던 계급과 합일점을 찾아야 그것이 가능해진다.

김형직선생은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내 몸이 찢기여 가루가 될지언정 일본놈들과 싸워 이겨야 하겠습니다.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합니다.》라 했다. 대를 잇는다는 말이란 자기자신은 물론 자기 자손들까지 자기 귀속을 하겠다는 말이다.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기발이 되는것을 의미한다.

북에서의 사회적성격은 이렇게 대를 이어 전승된다고 본다. 그래서 단순히 권력승계나 왕통을 이어가는 세습과는 다르다. 《대를 잇는다》는 말은 일본이라는 외세와 대를 이어 싸운다는것을 의미하며 아직도 이 땅에서 외세가 물러가지 않는 한 대를 이어서라도 싸워 이겨야 한다는 말은 유효하다는것이다. 김형직선생은 일본형사들의 고문과 그 후유증으로 3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바디우는 프랑스혁명이 성공할수 있었던것은 그것의 《계승》에 있었다고 본다. 이를 《후-사건(afterevent)》이라고 했다. 력사속에는 수많은 혁명이 있었지만 후-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기때문에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안에 끝나고말았던 례도 있다. 예수도 자기 귀속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만들었으며 바울이란 인물이 《후-사건》을 만들어내였기때문에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가능하게 되였다. 바디우의 《바울》이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고 카톨릭교회의 교황제도같은것도 모두 혁명의 후-사건을 만들기 위한것이다. 《대를 잇는다》는 말의 의미란 바로 이런 《후-사건》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남북은 모두 이런 《후-사건》을 만들어내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있다. 선거에 의해서건 아니면 대를 이어서건 문제는 《후-사건》이다.

그러면 어떻게 《로무현의 사망》에 대한 《후-사건》을 만들어 나갈것인가? 여기서 한가지 당부는 부디 뜻을 멀리 잡아보라는것이다. 항상 락관적으로 생각하고 불의는 반드시 망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시선을 멀리 두고 발밑을 보라는 당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