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1. 견결한 통일의지를 지니시고


 
몸소 이름지어주신 《통일각》    

주체85(1996)년 11월 24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판문점을 현지시찰하실 때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앞에서 일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일각》에 들리시였다.

《통일각》의 내부를 일일이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그 건설유래와 거기에 깃든 가지가지의 사연들을 감회깊게 들려주시였다.

사실 《통일각》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친히 발기하시고 세심한 지도를 주심으로써 건설된 뜻깊은 건물이였다.

주체73(1984)년 초가을 공화국이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준것을 계기로 북남사이에는 여러 갈래의 회담들이 진행될것이 예견되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하여도 판문점에는 《판문각》이 있었지만 북남회담을 하기에는 매우 협소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관계부문의 한 책임일군에게 판문점에 북남회담을 할수 있는 집을 한채 잘 지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많은 자금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설계도면이 완성되였을 때에는 그것을 친히 보아주시고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으며 건설이 빠른 시일안에 완공되도록 필요한 모든 조건을 최우선적으로 충분히 보장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북의 건설자들은 단 몇달동안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대로 이 집을 훌륭하게 완공하였다.

건물이 다된 다음 일군들은 집이름을 어떻게 짓겠는가를 의논하던 끝에 몇가지 안을 만들어 경애하는 장군님께 보고드리였다.

그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보고를 받으시고 어버이수령님과 토론하시여 《통일각》이라는 이름을 친히 지어주시였던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회고하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통일각>이라는 이름이 좋습니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통일을 념원하는 뜻에서 좋고 통일된 다음에는 통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좋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에는 수령님의 통일의지를 담아 《통일》이라는 이름을 단 집과 거리, 국가표창도 있다고 하시면서 평양에 《통일거리》가 있고 개성에도 《통일거리》가 있으며 또 《통일관》이라는 큰 국수집도 있고 《조국통일상》도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통일각》은 진짜 멋쟁이집이라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참으로 《통일각》은 그 이름으로 보나 건물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손색이 없는 멋쟁이집이였다.

《통일각》이 완공된 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북남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통일각》에 왔던 남측기자들은 《통일각》이라는 현판과 건물외형을 사진찍으면서 회담장이 정말 멋있다, 이남당국자들은 통일의지가 없다보니 통일을 상징하는 이런 훌륭한 건물을 지을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통일각》이 준공된 후 판문점에서 진행된 북남회담들은 례외없이 여기에서 진행되였다.

하여 《통일각》은 우리 민족의 통일념원과 의지를 체현하고있는 뜻깊은 집으로, 누가 진정으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바라고 누가 대결과 분렬을 추구하는가 하는것을 직접 목격한 력사의 증견자로 되고있다.

 

 

 통일을 위해 자신께서 있다고 하시며 

 

주체84(1995)년 남조선의 박용길녀사가 어버이수령님 서거 1돐에 즈음하여 남녘겨레들의 뜨거운 통일열망과 의지를 안고 평양에 왔을 때였다.

7월 8일,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기념궁전의 력사적준공을 세상에 선포하는 의식에 참석하시기 위하여 현지에 나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토록 중대한 행사에 앞서 작은 키에 소복단장을 한 백발의 박용길녀사부터 만나주시는 특전을 베풀어주시였다.

녀인으로 말하면 사선을 헤치고 평양에 들어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김일성주석님은 통일의 구성이시라고 높이 칭송하였고 통일은 미래형이 아니라 완료형이라고 소리높이 웨쳤으며 남조선으로 돌아가서는 조국통일을 위해 굴함없이 싸우다 먼저 떠나간 문익환목사의 미망인이였다. 이번에는 그가 수령님의 서거 1돐 추모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남편이 걸었던 길을 따라 평양에 왔던것이다.

박용길녀사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다소곳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무척 기다리셨던듯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 일으켜세워주시며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다고, 고령의 몸으로 어려운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다고, 이렇게 와주어 정말 고맙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에 안겨 하많은 생각과 이름 못할 격정에 흐느끼던 그는 이윽해서야 마음을 다잡으며 옷매무시를 정중히 하고 그이께 말씀드렸다.

《남쪽민중의 심정을 담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조상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름이 가득 얽혀진 박용길녀사의 손을 다시금 뜨겁게 잡아주시며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녀사께서 수령님의 서거 1돐에 즈음하여 수령님의 령전에 인사를 올리기 위해 신상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신데 대하여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시면서 이번에 녀사가 문익환선생과 같이 수령님의 령전에 인사를 올리는 심정으로 선생이 수령님을 만나뵈올 때 꼈던 안경과 반지를 몸에 소중히 품고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감동되였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녀사가 혼자 온것이 아니라 문익환선생과 함께 왔으며 두분이 수령님께 올리는 남조선인민들의 인사를 안고온것으로 생각하고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박용길녀사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를길 없었다. 

사실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1돐이 가까와오자 며칠동안 남편의 사진앞에 못박혀있던 그는 결연히 평양길에 오르면서 남편의 그 유물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먼저 간 남편도 평양으로 함께 간다는 심정에서 그의 유물을 소중히 안고온 남모르는 늙은이의 그 마음까지 헤아려주시니 박용길녀사는 솟구치는 격정을 묵새길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떠나간 문익환목사에 대해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애국적지조가 높고 절개가 굳은 통일애국투사를 잃은것은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들의 투쟁에서 커다란 손실로 된다고 하시며 못내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그이의 사려깊은 말씀에서 그는 자기의 남편은 결코 죽지 않았다는 생각, 통일애국의 길에 한몸 바친 사람들을 영원히 품에 안아 내세워주는 민족의 해님을 뵈왔다는 환희로 가슴이 끓어번졌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처럼 북에 온김에 통한속에 반세기를 그리던 평북 어머님묘소도 찾아뵙는것이 좋겠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염쉬염 명승지도 돌아보라고 이르시였다.

그는 놀라움이 가득찬 눈길로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풍모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던 문목사의 말을 되새기며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렀다. 

(과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꼭같으신 위인이시구나.)

태양과 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줄곧 따뜻한 정을 쏟아부어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남녘동포들이 보고싶습니다.

나는 나라의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통일을 위해 김정일이 있습니다.

7천만겨레에게 조국통일을 안겨주지 못하면 김정일이 아닙니다.》

철석의 통일의지가 력력히 슴배여있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나지막하였으나 박용길녀사의 심장은 세차게 고동쳤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은 그는 허물어지는 분렬의 장벽이 눈앞에 보이는듯 하였다.

박용길녀사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접견과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장군님이시야말로 조국통일의 위대한 구성이실뿐아니라 민족대단결의 구심이시며 애국애족의 최고화신이시라는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 그는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을 찾았다.

어버이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린 그는 수령님의 영생의 모습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려는듯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모습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겨레의 통일열망은 반드시 실현될것이라는 확신으로 끓어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