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4.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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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유원지의 연혁
 

흥남에 가면 마전바다가의 아득히 뻗은 백사장기슭에 무성한 소나무숲이 펼쳐져있고 여러 모양의 높고 낮은 집들과 갖가지 놀이장들이 곳곳에 펼쳐져있는것을 보게 된다.

이곳이 바로 인민의 문화휴식터인 마전유원지이다.

지난날 외로운 갈매기의 울음소리만이 처량하게 들려오고 바다바람에 모래만이 흩날리던 마전바다가에 인민의 유원지가 일떠서게 된데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크나큰 사랑이 어리여있다.

주체54(1965)년 5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이날 함경남도 함흥시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함흥시건설전망계획도를 보아주시였다.

일군들이 올린 전망계획도를 주의깊게 살펴보시던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함흥시근로자들을 위한 휴양지건설은 어디에 예견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이의 뜻밖의 말씀에 일군들은 얼른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때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함흥과 흥남지구의 새로운 공장들과 로동자들의 주택건설, 여러가지 도시경영시설들에 대해서만 알아보실줄로 생각하고 이에 대해서는 전혀 예견하지 못하였던것이다.

당황한 일군들은 먼 후날에 가서 실현할것으로 예견하고 자체로 준비해가지고있던 두개 대상에 대한 휴양지건설안을 급히 찾아내여 위대한 수령님앞에 펼쳐드리였다.

그중 첫째 안은 락원군의 어느 한 일대를 휴양지로 예견하고 설계한것이였고 둘째 안은 마전바다가를 대상지로 잡고 설계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 불충분한 설계안들을 비교해보시며 주의깊게 살펴보시다가 형성안에서 눈을 떼지 않으신채 일군들에게 서호에서 마전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한 10리가량 된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수 그것을 확증해보시듯 허리를 짚으시였던 한쪽손으로 형성안에 표시된 서호와 마전사이에 금을 그어보시였다.

그러시더니 이번에는 마전바다가의 백사장길이가 얼마나 되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그것도 한 10리가량 된다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을 허리에 얹으시고 다시 형성안을 쭉 살펴보시다가 못내 만족하신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마전지구를 함흥시안의 로동자들을 위한 야간휴양소형식으로 꾸리는것이 좋겠습니다. 로동자들에게 좋은 곳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전지구는 경치도 좋지만 공장이 있는 시내로부터 가깝고 사방이 트인것이 무엇보다 좋다고 하시는것이였다.

일군들은 로동자들에게 더 좋고 훌륭한 문화휴식조건을 마련해주시려고 이렇듯 심혈을 기울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에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일군들을 둘러보시다가 근로자들에게 좋은 자리를 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면서 마전바다가의 10리백사장을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휴양각도 짓고 해수욕장도 만들어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여기에는 휴양권을 요구하지 말고 가고싶은 사람은 누구나 다 가게 하여야 한다고, 단체로만 받지 말고 개별적으로 하루저녁이라도 와서 자고 갈수 있게 려관을 지어 영업식으로 할데 대하여 구체적인 방도까지 가르쳐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지난날 찾아오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 쓸쓸한 바다바람만 불어대던 마전바다가에 인민을 위한 문화휴식터가 꾸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난 주체57(1968)년 6월초 어느날이였다.

함흥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항으로 향하시였다.

차창밖으로는 공장들이며 협동농장들이 흘러지나갔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승용차가 공장지구를 벗어나 마전바다가를 따라 달리고있을 때였다.

여름철이라 마전유원지는 휴식의 한때를 즐기는 휴양객들로 흥성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차창밖으로 안겨오는 바다가전경을 바라보시며 기쁘신듯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자신께서는 순간의 휴식도 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면서도 즐겁게 휴식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시는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차창밖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는것이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옆에 앉아있는 한 일군에게 마전지구를 잘 꾸리면 훌륭한 유원지가 되겠다고 하시면서 마전유원지에 지을 집은 원산의 배나무골에 지은 집 같은것을 지어야 하겠다고, 원산에 가서 설계를 가져다 그대로 지어야 하겠다고, 단층집만 짓지 말고 2층, 3층짜리도 지어 함흥시내 근로자들이 일요일에 휴식하러 와서 놀다가 갈수 있게 꾸려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사실 일군들은 3년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마전유원지를 여름 한철밖에 리용하지 않을것을 그리 요란하게 꾸려놓겠는가 하면서 단층으로 된 휴양각 몇채와 식당 등 간단한 편의시설 몇가지만 갖추어놓고 여기에 만족해하였다.

하지만 인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시려고 온갖 편의시설까지 갖추어줄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고보니 일군은 자기들의 생각이 짧았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에게 함흥에서 마전까지 뻐스도 다닐수 있게 바다기슭을 따라 길도 내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살림집들을 맞은켠 산기슭으로 옮겨 문화주택마을로 꾸리며 유원지능력에 맞게 식당도 더 늘이고 여러가지 체육오락시설도 잘 갖추어줄데 대하여서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이렇게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울창한 소나무숲사이로 바라보이는 바다가를 다시한번 빙 둘러보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마전유원지를 깨끗이 정리하여 함흥의 <송도원>으로 꾸려야 하겠습니다.》

그이의 이 말씀에는 마전유원지를 이름난 원산의 송도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휴식의 한때를 즐겁게 보낼수 있는 인민의 유원지로 꾸리시려는 숭고한 뜻이 어려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마전유원지를 더 훌륭하게 꾸릴데 대한 여러차례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오늘 마전유원지는 이곳 인민들뿐아니라 온 나라 인민이 사랑하고 즐겨찾는 곳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