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4.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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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의 초행길에 일떠선 모란봉유원지 

해방된 조국강산에 건국의 마치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지고있던 주체36(1947)년 5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차를 타시고 모란봉언덕을 지나게 되시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웬 일인지 갑자기 차를 멈추게 하시고는 한곳을 바라보고계시였다.

동행하던 일군들도 그이께서 바라보시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 처녀애가 금잔디우에서 놀고있었다.

한쪽에서 어른들은 연예공연을 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린 처녀애만은 좀 떨어진 곳에서 잔디밭사이로 흘러내리는 도랑물에 손을 잠그고 물장구를 치고있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애들의 놀이터를 빨리 만들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아동공원도 만들어주고 극장, 구락부도 지어줍시다. 모란봉을 어른들이나 어린이들이 다 즐길수 있는 인민들의 유원지로 잘 꾸려야 하겠습니다.》

순간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서 커다란 자책감을 받았다.

자기들로서는 모란봉에 여러번 나가보면서도 아이들의 놀이터문제까지는 생각해본 일이 없었기때문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란봉유원지를 건설할것을 결심하시고 돌아오시는 길로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모란봉에 야외극장도 크게 짓고 식당, 유희터도 짓자고 하시면서 북조선인민위원회 재정부장에게 자금을 타산해보라고 이르시였다.

그때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것은 당시 새로 복구건설해야 할 대상들도 대단히 많았고 그 어느 부문에서나 자금과 자재를 절실하게 요구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한푼의 돈도 쪼개쓰고 한g의 세멘트도 나누어써야 할 형편이였다.

이러한 때에 모란봉유원지를 건설한다는것은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이였다.

모두가 이런 생각으로 걱정을 하고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에게는 기술자도 부족하고 원료, 자재, 자금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건설해야 할 대상들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나 모란봉공원건설은 첫자리에 놓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인민을 위한 일인데 인민들이 좋아하는것부터 건설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일군들은 나라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인민을 위한 일을 첫자리에 놓으시고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그이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너무도 헤아려보지 못한 자신들이 민망스러웠다.

그리하여 주체36(1947)년 5월 21일부터 모란봉공원건설이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란봉유원지를 훌륭히 건설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공원건설계획을 보아주시고 우리 인민들이 대를 두고 즐겨야 할 공원건설인데 자금을 아끼지 말라고 하시면서 평방수도 더 늘여주시고 내부에 갖추어야 할 시설들도 보충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와 세심한 지도밑에 모란봉은 짧은 기간에 대중문화시설들을 훌륭히 갖춘 유원지로 꾸려지게 되였다.

주체36(1947)년 7월 19일 모란봉에서 유원지개원식이 진행되는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란봉공원개원식에 자신께서도 가시겠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것을 보고싶다고 하시며 대줄기같이 쏟아져내리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공원개원식에 참가하시였다.

그리하여 모란봉경기장(오늘의 김일성경기장)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공원개원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새 조국건설의 중하를 한몸에 안으시고 분초를 쪼개가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비를 맞으시며 공원개원식에 나오셨다는 소식이 군중들에게 전해지자 《만세!》의 환호성이 비속을 뚫고 모란봉에 울려퍼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개원식이 끝났으나 쏟아지는 비속에서 발을 구르며 만세부르는 군중들에게 답례하시며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인민의 기쁨속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이 이야기는 모란봉과 더불어 길이 전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