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제1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1.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발아래


남조선에서 온 장안당대표
 

력사의 그날은 오고야말았다. 우리 민족은 일구월심 갈망해온 해방의 날을 맞이했다. 8월의 조선은 말그대로 해방열파로 진동하였다.

조선의 해방, 그것은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영웅이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직령도하신 장장 20성상의 간고한 항일대전의 빛나는 승리였다.

일제의 패망으로 조선인민앞에는 새 조국건설의 휘황한 길이 열리였다. 반일항전에서 축적되고 양성된 민족의 거대한 힘이 활화산처럼 터져오르는 속에 이르는 곳마다에서 인민들자신의 창의에 의해 인민위원회들이 속속 출현하였다. 한편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 온갖 반동세력들은 대중의 앙양된 진출에 눌리워 죽지가 부러진채 살구멍을 찾아 전전긍긍하고있었다. 민족의 자주적운명개척을 위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여 폭발된 인민의 감격과 환희, 리상과 열정의 대하에 과거의 온갖 어지러운것들이 거품이 되여 밀려나고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해방열기에 찬물이라도 끼얹듯 국토의 허리를 자르며 38°선이라는 민족분렬선이 그어지고 이를 경계로 남쪽에서는 해방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정세판이 짜여지고있었다.

북위 38°선이남에서의 《일본군대의 무장해제》라는 명목밑에 침략의 구두발을 들여놓은 미제는 아시아대륙과 세계제패를 위한 교두보의 확보에 방점을 찍은 대조선지배전략에 따라 일제의 식민지총독통치와 다를바 없는 군정통치를 강행실시하기 시작하였다.

미군정은 총칼을 휘둘러 인민의 창의에 의해 수립된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대중의 민주주의적요구와 애국적진출을 가차없이 탄압해나서는 한편 친일반동세력을 긁어모아 식민지통치의 지반을 닦는데 광분하고있었다. 형형색색의 정객들과 사회활동가들 또한 저마다 주의주장과 리념의 돛을 올려 력사의 노를 저어보겠노라고 세력권확대와 집권욕에 불을 달았다.

이로 하여 이 땅에는 38°선을 경계선으로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위기가 시시각각 몰려오는 속에 자주와 사대, 진보와 반동, 애국애족과 매국배족사이의 날카로운 대결이 가중되는 엄혹한 정세가 조성되였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온 겨레가 해방된 조선이 나아갈 참다운 길을 안타까이 찾고있던 그때 력사의 온갖 도전과 역풍을 과감히 제압하며 새 조선건설을 위한 장엄한 진군길의 선두에 서신 민족의 태양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해방직후인 주체34(1945)년 8월 20일 군사정치간부들앞에서 하신 연설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하나의 조선로선, 통일되고 자주적인 민주주의 새 조국건설로선과 그 실현을 위한 방략과 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우리는 진보적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워야 합니다.》

진보적민주주의에 기초한 통일적자주독립국가의 건설, 이를 위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바로 이것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된 조선민족에게 안겨주신 총체적인 건국설계도였다. 이것은 민족의 숙망과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그리고 민족의 힘과 의지에 대한 절대적믿음에 기초한 가장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건국로선이였다. 전국적범위에서 민족적자주권을 확립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로선이 명시됨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앞길에는 휘황한 등대가 밝혀지게 되였다.

우리 민족은 옳바른 방향타를 쥐고 이 땅우에 통일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일떠세우기 위한 거창한 흐름에 용약 들어섰다.

여기에서 각계각층의 광범한 애국적민주력량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튼튼히 묶어세우는가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것은 새 조국건설의 성공여부를 담보하는 근본문제였다. 민족의 단합은 통일적인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대전제, 천하지대본이였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산당을 창건하고 그를 근로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박은 대중적당으로 건설할데 대한 문제, 각계각층 군중을 계급, 계층별에 따라 근로단체들에 결속하는 문제, 로동계급의 령도하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주력량을 망라하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며 그것을 공고발전시킬데 대한 문제 등 애국적민주력량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묶어세우는데서 나서는 제반 과업과 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시고 그 실현에로 대중을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미군의 남조선강점과 군정통치로 하여 북과 남의 모든 민주세력을 전국적범위에서 하나의 단합된 정치적력량으로 묶어세울수 없는 당시의 정세를 명철하게 꿰뚫어보신 수령님께서는 당면하여 북과 남에서 각각 애국적민주력량을 굳게 결속시켜나가는데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어느덧 해방된 조국땅우에 천고마비의 계절이 왔다.

오곡백과 무르익어가는 대지우에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감돌던 9월 23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불원천리 찾아온 장안당의 리영선생과 그일행인 최익환, 김창렬을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장안빌딩에서 조직되였다 하여 그 이름을 장안당이라 부른 이 당의 대표인물인 리영선생은 일찌기 청운의 뜻을 품고 국내와 국외에서 여러 파벌들에 관여하면서 공산주의운동을 해온 사람이였다. 새로운 시대사조를 타고 조선공산당이 창건되던 그때로부터 4차례에 걸쳐 벌어졌던 조선공산당사건을 겪으면서 거듭되는 체포와 감옥살이로 하여 당시 그의 이름은 국내공산주의자들속에 잘 알려져있었다.

해방후 복잡한 남조선정세하에서 옳바른 길을 찾으려 모대기던 끝에 멀고 험한 길을 걸어온 리영선생일행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00여리길을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그이의 인자하고 소탈한 품성에 그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백두와 만저우의 피바다, 눈보라를 헤치시며 강도 일제와 싸워이기신 만고의 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렇게까지 젊고 너그러우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경의에 찬 그들의 얼굴표정을 일별하신 수령님께서는 자리를 권하신 다음 어서 찾아온 용건을 이야기하라고, 오늘의 이 자리는 선생들의 이야기를 듣자고 마련한 면담석이니만치 선생들이 주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겸허한 말씀에 리영선생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기들이 만든 장안당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였다.

그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자기들의 장안당이 합법적이며 중앙조직으로서의 《정통성》을 갖추고 태여난 근로대중의 전위부대라는 설명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시였다. 그러느라니 퍼그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의 말이 끝나자 수령님께서는 오늘은 시간이 없어 그러는데 후에 다시 만나자고 하시였다.

그제서야 리영선생과 일행은 조국에 개선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몹시도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는 자기들을 위해 귀중한 시간을 너무도 많이 바치고계신다는것을 깨달았다.

몸둘바를 몰라하던 그들은 아무때건 장군님께서 부르시면 다시 찾아와 뵙겠다고 아뢰이고는 그이께 자기들이 준비해온 문건을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남조선의 공산주의운동자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내시여 그들이 가지고 온 자료들을 다 보아주시였으며 3일후인 9월 26일 다시금 이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일련의 제기된 문제들과 앞으로의 활동방향에 대해 명확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수령님께서 그들과 하신 담화의 기본내용은 현 단계에서의 조선혁명의 로선과 남조선공산주의운동대렬의 통일문제였다. 그이께서는 특히 남조선의 광범한 애국력량을 묶어세우는데서 초미의 문제로 제기되는 남조선공산주의운동대렬의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당시 남조선공산주의운동자들은 서로 단합을 이룩하지 못하고 각기 분렬되여 령도권쟁탈전에 급급해있었다.

대표적으로 엠엘파를 주축으로 조직된 장안당과 이어 박헌영 등 화요파계렬이 주동이 되여 선포한 재건당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한편 자파세력확장에 열을 올리면서 진보적애국력량의 분렬을 조장시키고있었다.

담화에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재건당을 조직하고 《서울중앙》을 만든 사람들이 자기파 사람들을 각 도와 지방에 파견하여 자파세력을 확장하며 자기들의 비위에 거슬리거나 의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배척하고있는 형편에서 그들과 단결하기 곤난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저마다 서로 배척하고 반목질시한다면 남조선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단합을 이룩할수 있겠는가고 엄하게 지적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가 해방되였으나 인민대중이 아직 자기들이 나아갈 길을 똑바로 알지 못하고있고 미군의 남조선상륙으로 인하여 나라의 정세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있는 이때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걸머지고 나가야 할 공산주의자들이 단합을 이룩하지 못하고 서로 반목질시한다는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

《남조선공산주의자들은 서로 반목질시하고 배척할것이 아니라 조선혁명을 중심에 놓고 단결을 지향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현 단계의 당면문제들을 놓고 허심탄회하고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사상과 행동의 일치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것입니다. 당면하게는 여러 파들이 각기 조직한 당들을 시급히 정리하고 조직적으로 결속된 하나의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리영선생은 크나큰 감동에 휩싸이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들의 치명적인 병집인 파쟁의 실태를 면바로 진단하시며 그 극복방향을 뚜렷이 밝혀주시는 말씀이였다. 수령님의 그 말씀에는 해방된 조선인민을 하나의 의지로 단합시키고 건국에로 일떠세우는 진리의 눈부신 빛과 크나큰 힘이 비껴있었다. 그것은 어지러운 탁류속에 갈길 몰라 헤매이던 그의 온넋을 삽시에 틀어잡았다.

한편 그는 심한 자책감에 휩싸이였다. 진리를 위해 정치투쟁의 길에 나섰지만 결국 조국과 민족의 운명보다는 파벌의 리익을 위해 정처없이 걸어온 부끄러운 나날들이 떠올라 차마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장군님, 제가 지금껏 잘못 생각하고있었습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보니 눈앞이 환히 트이는것만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우리는 이번에 동무들이 현 단계에서의 조선혁명의 로선문제와 당건설문제에서 자기들의 견해가 잘못되였다는것을 깨달았다고 하는것만큼 저마끔 당을 내오려고 하거나 이미 무은 자기의 조직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여서는 안된다고 본다고, 장안당을 고집하는 사람이나 《서울중앙》을 표방하는 사람들이나 다같이 파벌의식을 근절하고 대국적견지에서 조선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조직적으로 단결할것을 강력히 권고하고싶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당의 대중적지반을 축성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전개할데 대해서도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조선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은 해내외에서 투쟁하던 공산주의자들이 다 모이기도 전에, 대중적지반을 구축하기 위한 아무런 사업도 없이 몇몇 사람들이 모여 하루밤사이에 저마다 당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을 어떻게 진정한 공산당이라고 말할수 있겠는가고 지적하시면서 당은 어디까지나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적단결을 보장하고 튼튼한 대중적지반을 가져야 혁명과 건설에 대한 령도를 원만히 실현할수 있다고, 남조선공산주의자들은 아무런 대중적지반도 없이 몇몇 사람들끼리 만든 당의 간판을 고수하는데 신경을 쓸것이 아니라 광범한 근로대중속에 들어가 깊이 뿌리를 박아야 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남조선공산주의운동자들이 생명처럼 여기고 지침으로 삼아야 할 고귀한 말씀이였다.

사실 일제의 항복이 선언되던 그날부터 서울에서 벌린 그들의 《당창건》과정은 다시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이였다. 그때 그들에게는 다른 파보다 하루라도 더 빨리 당의 기치를 드는것이 제1차적인 목표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되여나오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당창건회의》를 소집하고 당의 간판을 내건 그들이였다. 그러다보니 당의 대중적지반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고 그후에 화요파인물들이 주동이 되여 만들어낸 재건당에 자기 사람들을 떼우지나 않을가 우려하면서 장안당의 《정통성》만을 내세우는데 급급하였던것이다. 아니 애당초 공산당조직의 대중적지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다고 말하는것이 더 정확한 평가였다.

광범한 근로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사상루각과도 같은 정당, 바로 이것이 당시 남조선에 조직된 공산당의 실태였다. 그러나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머리를 쓰지 않았고 가슴아파하지도 않았다. 단지 어떻게 하면 다른 파들의 조직을 깨버리고 자기들이 다 흡수해버리겠는가 하는데만 머리를 써온 그들이였다.

이날 하나의 작은 세부에서 열백을 펼쳐보이시는가 하면 종당에는 움직일수 없는 결론을 도출해내시며 남조선공산주의운동의 통일단결을 이룩할 방도를 제시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그들은 무한한 격정에 휩싸이였다.

천만금에 비길수 없는 값진 투쟁의 진리, 삶의 참다운 진리를 받아안고 무한히 격동되여있던 이들은 9월 27일 떠나기에 앞서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이날 그들의 숙소를 찾아주신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공산주의운동의 통일단결을 이룩하기 위해 힘쓰며 남조선공산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결속된 하나의 당을 건설할데 대하여 다시금 간곡히 당부하시였으며 일행이 무사히 돌아갈수 있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건국의 초행길을 헤쳐가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자기들을 여러차례나 만나주시면서 일깨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가슴에 새겨안고 서울로 돌아간 리영선생일행은 장안당을 해산하고 당원전원과 함께 재건당으로 들어갔다.

실로 해방후의 그 복잡한 정세속에서 민족대단합을 이룩하기 위해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숭고한 단결의 사상은 파벌싸움에 어지러워진 사람들까지도 민족단합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넓은 길로 이끌어준 참다운 애국애족의 정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