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일 성
 
공화국영웅 안동수의 유가족들과 한 담화
 
(주체83(1994)년 4월 11일)

 

    오늘 정일심동무 가족일행을 다시 만나니 매우 기쁩니다.

    정일심동무가 나의 사랑과 배려에 의하여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니 나도 마음이 놓입니다.

    정일심동무 가족일행이 나와 김정일동지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여, 김정숙동무를 추모하여 잔을 들겠다고 하는데 감사합니다.

    정일심동무 가족일행을 만나니 안동수동무 생각이 납니다. 안동수동무는 해방직후 소련에서 나온 우리 사람들가운데서 조선말도 잘하고 애국주의사상도 강한 동무였습니다. 우리는 안동수동무가 러시아말을 잘하기 때문에 그를 평양학원 러어교원을 시켰습니다. 그후 안동수동무는 탱크사단 문화부사단장을 하였습니다. 안동수동무는 우리 나라에 와있던 소련군대 기계화보병사단장과의 사업을 잘하여 그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때 소련군대 기계화보병사단장을 랴쉔코가 하였습니다. 랴쉔코는 마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귀국할 때 자기 사단의 탱크와 그 부속품을 우리에게 많이 넘겨주었습니다. 그때에는 우리 나라에 훈장을 수여하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랴쉔코에게 회중시계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지난해에 랴쉔코는 러시아연방전쟁노병대표단 단장으로 우리 나라에 왔댔습니다. 그때 나는 랴쉔코와 담화도 하고 그에게 오찬도 차려주었습니다. 랴쉔코는 해방직후 자기 부인이 김정숙동무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가 가지고 왔습니다.

    랴쉔코는 우리 나라에 올 때 내가 해방직후에 선물로 준 회중시계를 차고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새로 금시계를 주었습니다. 랴쉔코는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동수동무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잘 싸웠습니다. 안동수동무가 속한 부대가 수원 남쪽에서 처음으로 미제침략군과 맞다들었는데 그때 포로된 미국병사들은 우리 군인들에게 금가락지를 내놓으면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우리 군인들은 인민군대가 금가락지 같은 금붙이나 좋아하는 너절한 군대인줄 아는가고 하면서 그것을 줴던졌다고 합니다.

    우리 인민의 조국해방전쟁은 미제를 비롯한 16개국 무력침공자들을 반대하는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나라와 같이 작은 나라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와 그 15개 추종국가 무력침공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싸운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성스러운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지만 미제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놓은 것은 큰 승리입니다.

    안동수동무는 1950년 7월 6일에 전사하였습니다.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74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정일심동무 가족이 안동수동무처럼 조국통일과 조국의 융성번영을 위하여 헌신분투하기 바랍니다.

    미제는 지난 조선침략전쟁에서 당한 참패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아직도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미제국주의자들은 《핵문제》를 걸고 우리에게 그 무슨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면서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우리를 감히 어쩌지 못합니다.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튼튼히 지켜야 합니다. 그전에 소련과 동구라파나라들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고 하였지만 다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체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스타린 때에 소련에서는 당사상사업이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련사람들은 히틀러파쇼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조국을 위하여》, 《스타린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높이 부르며 침략자들과 맞서 영용하게 싸웠습니다. 그때 스타린이 없었더라면 소련은 히틀러파쇼독일에 먹히우고 말았을 것입니다. 스타린은 히틀러파쇼군대가 모스크바근방에까지 쳐들어왔을 때 당정치위원들은 소개시키면서도 자기는 모스크바에 남아 싸움을 지휘하였습니다.

    스타린은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우리 인민의 투쟁을 적극 지지해주었습니다. 스타린이 서거하기 전해에 내가 소련에 가니 스타린은 나를 보고 반가와하면서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인민민주주의국가 당 및 국가 수반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미제침략자들과 1년나마 싸웠는데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다, 문제는 전후에 복구건설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스타린은 인민민주주의국가 당 및 국가 수반들에게 조선을 도와주자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때에는 형제나라들이 단결되어있었습니다.

    스타린 때에는 소련에서 좋은 영화들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만든 소련영화들을 보군 합니다.

    스타린이 살아있을 때 인민민주주의국가들에서 당과 국가의 지도자로 있던 사람이 이제는 나 하나밖에 없습니다.

    소련은 스타린이 서거하고 흐루쑈브가 집권한 다음부터 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흐루쑈브는 집권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미신》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스타린을 헐뜯었습니다. 전후에 내가 소련에 가니 흐루쑈브가 나에게 쎄브에 들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쎄브에 들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살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동구라파나라들은 소련이 하라는대로 하다가 망하였지만 우리는 자기 힘을 믿고 혁명과 건설을 자주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우리의 사회주의는 끄떡없습니다.

    지금 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를 고립압살하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하여야 합니다. 세계의 혁명적 인민들은 우리 인민의 정당한 위업을 적극 지지성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인민들은 자본주의복귀에서 점차 교훈을 찾고 각성되어가고 있으며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우리 나라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사람들이 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도 많이 보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4. 15를 계기로 국제고려인통일연합회와 러시아의 친선단체들이 연합하여 기념행사를 많이 조직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일심동무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겠다고 하는데 결의가 좋습니다. 정일심동무가 이제는 나이가 많은 것만큼 자식들에 대한 교양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자식들을 잘 교양하여 그들이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를 높이 받들고 조국통일과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는 정일심동무의 자식들이 당과 혁명에 충직하였던 아버지처럼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 끝없이 충실하리라고 믿습니다.

    지금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는 혁명과 건설의 전반사업을 영도해나가면서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늘 새벽까지 일하며 일요일에도 여느날처럼 사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건강에 대하여서는 생각하지 않고 나의 건강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습니다.

    김정일동지는 나에게 늘 감기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감기를 앓는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으면 일없다, 나의 건강에 대해서만 염려하지 말고 건강에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최고사령관이 건강하여야 조선혁명을 끝까지 고수하고 완성해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백두산, 금강산을 비롯하여 경치좋은 명승지가 많습니다. 예로부터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지리산은 우리 나라의 5대명산으로 유명한데 그가운데서 4개는 공화국북반부에 있고 지리산 하나만 남조선에 있습니다. 지리산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우리 유격대가 활동한 곳입니다.

    이인모동무도 전쟁시기에 지리산유격대에 들어가 싸우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이인모동무는 해방전에 풍산군에서 자라면서 국내공작을 나온 김형권삼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조선혁명군을 결성한 다음 국내에 무장소조를 파견하였습니다. 그때 김형권삼촌이 인솔한 무장소조가 국내에로 나오다가 풍산군 파발리에 들렸습니다. 김형권삼촌은 파발리 경찰관주재소 순사부장이 인민들을 못살게 군다는 소식을 듣고 주재소를 습격하여 그놈을 쏴죽인 다음 거기에 모인 사람들앞에서 모두다 반일투쟁에 떨쳐나설데 대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때 이인모동무도 거기에서 김형권삼촌의 연설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인모동무는 해방후에 당일꾼으로 일하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군복을  입고 종군기자로 전선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일시적 후퇴시기에 미처 후퇴를 하지  못하여 지리산유격대에 들어가 싸우다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적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적들은 이인모동무에게 전향문만 한장 쓰면 석방하겠다고  하였지만 그는 끝내 전향문을 쓰지 않았으며 34년동안 신념과 의지를 지켜  용감하게 투쟁하였습니다. 그래서 김정일동지는 이인모동무를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고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지난해 4월 15일 아침에 나는 누구보다 먼저 남조선감옥에서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싸우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인모동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인모동무를 찾아가 그에게 내가 수표한 당원증을 직접 수여하고 금시계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인모동무가 그 무시무시한 남조선감옥에서 굴하지 않고 신념과 의지를 지켜낸 것을 보면 용습니다. 이인모동무같이 훌륭한 당원이 있기에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혁명은 필승불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