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일 성
 
재미교포 최덕신과 한 담화
 
(주체73(1984)년 10월 28일)

 

    나는 최덕신선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선생이 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여준데 대하여 감사히 여깁니다.

    선생이 조국에 와서 진갑을 맞이한데 대하여 축하를 드리며 건강한 몸으로 조국통일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기 바랍니다.

    이번에 소련을 비롯한 구라파 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여보니 그 나라들은 다 전쟁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체르넨코를 비롯한 소련의 지도자들은 전쟁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련은 새로운 세계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구라파 사회주의나라 지도자들도 다 전쟁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민주독일을 방문하여 호네커와 담화해보니 그는 구라파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 나라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구스타브 후사크, 헝가리의 카다르 야노쉬, 불가리아의 토도르 쥡코브,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챠우쉐스크도 전쟁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들은 더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미중앙정보국이 제공하는 자료를 통하여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세계전쟁의 위험은 소련을 비롯한 구라파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전쟁의 위험은 주로 미국에서 오고 있습니다. 원래 전쟁의 근원은 사회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있습니다.

    나는 얼마전에 우리 나라를 방문한 일본의 우쯔노미야 도쿠마를 만났습니다. 그는 <핵군축을 요구하는 22명위원회> 고문으로 있는데 우리 나라에 오면서 나에게 보내는 <핵군축을 요구하는 22명위원회> 성원일동의 편지와 <군축문제자료>라는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나를 만난 자리에서 가까운 앞날에 새로운 세계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가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세계전쟁은 미소 두 대국의 입장에 따라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소련은 사회주의국가이므로 다른 나라에 먼저 원자탄을 쓰거나 핵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소련사람들은 전쟁에 대하여 싫증을 느끼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보아도 전쟁을 일으킬 형편이 못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지난 9월에 우리 나라를 방문한 일본사회당 이시바시위원장을 만나 담화하면서 조일 두 나라 인민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새로운 세계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하여주었습니다.

    현대전쟁은 옛날 삼국시대의 싸움과는 다릅니다. 현대전쟁은 원자탄전쟁입니다. 현대전쟁은 교전쌍방을 다 망하게 하거나 추설 수 없는 병신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세계전쟁이 일어나면 큰 나라들은 서로 원자탄을 쓰게 될 것입니다. 소련과 미국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그들은 새로운 세계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몹시 겁나하고 있습니다. 소련사람들은 미국이 원자탄을 쓰는 것을 겁나하고 미국사람들은 소련이 원자탄을 쓰는 것을 겁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입을 맞출 것입니다. 소련과 미국이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은 서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마련하기 위한 경쟁입니다. 다시말하여 상대국이 가지고 있는 원자탄보다 살상력이 더 큰 원자탄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경쟁입니다.

    나는 이시바시에게 조선문제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정도에 따라 빨리 해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소미간의 대결이 격화되면 조선의 통일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못하고 대결이 완화되면 빨리 해결된다,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견제하기 위하여 남조선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남조선에 1, 000여개의 핵무기를 끌어들여다 놓고 있는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하려는데도 있지만 그보다도 소련을 견제하자는데 목적이 있다, 그들은 남조선의 진해만과 일본의 쯔시마사이의 해협을 군사화하여 소련의 태평양함대가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하여주었습니다.

    미국과 일본, 남조선이 3각군사동맹을 조작하려고 책동하고 있는데 경각성을 가지고 주시하여야 합니다. 일본인민은 일본이 군국주의화되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민들속에서 일본이 군국주의화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이 미국의 대아시아전략에 추종하여 군국주의재생의 길로 나가지 않고 자주적으로 나간다면 일본의 안전은 물론, 아시아의 평화도 보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아시아에는 일본을 위협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일본이 자기 나라 인민들의 요구와 시대발전의 추세를 외면하고 군국주의의 길로 나간다면 이보다 더 위험천만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주의 길은 일본의 안전과 평화적 발전의 길이며 군국주의의 길은 일본을 자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길입니다.

    지금 구라파에서는 자주적으로 나가려는 것이 하나의 추세로 되고 있습니다. 구라파자본주의나라들이 미국의 통제밑에 있지만 적지 않은 나라들은 자기 나라에 미국이 핵무기를 배비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에 위험한 불통을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대국들사이에 있을 수 있는 전쟁놀음에 끼어들어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는 자주정치의 한 표현입니다.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똑바로 알고 대조선정책에 대한 자기의 입장장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미국이 생트집을 걸면서 침략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가 피땀을 흘려 이룩하여놓은 혁명의 전취물을 가만히 앉아서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준비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승리자로서 전쟁의 결말을 매듭지을 것입니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전쟁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나는 이번에 일본사람들을 만나 담화하면서 미국사람들에게 미군이 남조선에 계속 틀고 앉아있으면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 커진다고 말하여주라, 우리 인민은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공장들과 좋은 집들을 많이 지어놓았는데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여 다 파괴하겠는가, 우리는 전쟁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많은 군인들을 동원하여 남포갑문을 건설하고 있다고 말하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하려고 한다면 많은 돈을 들여 남포갑문을 건설하느라고 하지 않고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군수공장을 더 건설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군수공장을 더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쌀은 곧 사회주의라는 구호를 내놓고 쌀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하여 인민군대까지 동원하여 남포갑문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 잘살려면 쌀이 많아야 합니다. 남포갑문이 건설되면 평안남도, 황해남북도의 논밭들에 물을 충분히 보장하여 지금보다 더 많은 쌀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시바시를 만나 이런 내용으로 말하여주니 그는 나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하면서 자기가 미국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잘 설복하여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미국호전광들의 전쟁정책을 저지시켜야 합니다. 미국이 새로운 세계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면 미국사람들과 친한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세계인민들이 다 전쟁을 원하지 않고 있는데 당신들도 호전적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설복하여야 하며 미국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뒤다리를 잡아당겨야 합니다.

    조선사람은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상관없이 모두다 한목소리로 미국사람들에게 조선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말며 긴장상태를 완화하여야 한다고 말하여야 합니다. 미국이 큰 나라들과만 입을 맞출 것이 아니라 작은 나라들과도 손을 잡을 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주시대의 역사가 미국을 비롯한 큰 나라들에 주고 있는 엄숙한 경고입니다. 냉전정책은 지난 시대의 낡은 유물입니다.

    선생도 알고 있겠지만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하지 않으면 조선의 북과 남의 싸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조건에서 원자탄도 필요없습니다. 미국사람들은 우리가 <남침>하지 않으며 남조선을 <적화>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아무리 말하여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침>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들은 못들은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침>할 수 없다는 것은 군사학적으로 분석하여 보아도 명백히 증명됩니다. 남조선은 인구가 북반부의 인구보다 훨씬 많고 군대와 최신무기들도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사람들은 우리의 군사력이 더 우세하다고 하면서 남조선에 현대적인 대량살육무기들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아무리 속임수를 써도 누가 그것을 믿겠습니까. 미국사람들이 남조선보다 북이 군사적으로 우세하다는 구실밑에 남조선에 대량살육무기를 계속 끌어들이는 목적은 우리 나라의 절반땅을 영원히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데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 인민과 세계인민들을 속이고 우롱하면서 공화국을 적대시하며 전쟁정책에 매달리는 놀음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미 그럴 때는 지나갔습니다. 남조선을 근 40년동안 붙들고 기름진 비게덩이처럼 놓지 못하 고있는 미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대조선정책을 시급히 바꾸어야 합니다. 미국이 구태의연하게 낡은 대조선정책에 계속 매달려서는 큰 이득을 볼 것도 없고 강력한 반미항전에 부딪쳐 세상사람들앞에서 망신만 당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의 통일문제에 대하여서도 미국사람들은 태도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미국사람들은 우리가 제기한 3자회담을 받아물지 않고 있는데 원래 3자회담은 우리가 처음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미국, 남조선이 3자회담을 하자는 것은 미국사람들이 먼저 제기하였습니다. 카터는 1979년에 남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발표한 박정희와의 <공동성명>에서 3자회담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올해에 제기한 3자회담은 그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답을 준 것으로 됩니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은 3자회담을 반대하면서 이번에는 우리와 미국, 남조선, 중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을 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중국사람들은 우리는 조선에 군대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선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당사자로 될 수 없다, 당사자는 남조선에 4만명의 군대를 두고 있는 미국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4자회담에 참가하겠는가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나라에 왔던 중국인민지원군은 전쟁이 끝난 다음 중국에 다 돌아갔습니다. 판문점에는 군사정전위원회 중국인민지원군 연락처 성원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군사정전위원회를 할 때 거기에 참가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조선문제를 토의하는 회담에 참가하겠다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소련사람들은 자기들이 일제패망후 조선문제처리에 관한 회담에 참가하였기 때문에 조선문제를 토의하는 회담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그들대로 6자회담이요 뭐요 하면서 자기들도 우리 나라 문제를 토의하는데 참가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조선문제를 토의하는 회담에 참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일본은 지난날 우리 나라를 강점한 침략자이고 조선이 둘로 갈라지게 만든 장본인이며 전후처리문제도 아직까지 해결하지 않았고 우리 나라와 국교관계도 없기 때문에 조선문제토의에 참가시키는 것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조선의 통일문제는 3자회담이든 2자회담이든 관계없이 협상의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미국사람들이 3자회담에 응하지 않는 조건에서 조선의 북과 남이 회담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조선당국과 회담을 하려면 전두환이 민족앞에 지은 죄를 백지화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날 김구가 숱한 공산주의자들을 죽였지만 그것을 백지화하고 1948년에 평양에 데려다가 통일문제를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때처럼 전두환의 죄를 백지화하여주고 그와 마주 앉아 회담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과 남이 회담을 하여 그 어떤 문제에 합의를 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효력을 내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로 됩니다. 남조선의 실제적 통치자는 미국사람들이므로 그들이 참가하지 않은 북과 남의 회담에서 합의를 본 문제는 아무런 효력도 내지 못합니다. 지금 남조선괴뢰군에 대한 통수권도 전두환이 아니라 <한미연합군사령관>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가 전두환과 마주 앉아 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안을 채택한다고 해도 그에 대하여 미국사람들이 나는 모른다, 연구해보아야 하겠다고 하면 어디에 가서 해볼데가 없습니다.

    3자회담을 열고 첫째로 우리와 미국과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를 해결하여 조선에서의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켜야 하며, 둘째로 북과 남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쌍방의 군비를 축소하여 조선에서의 긴장상태를 완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3자회담을 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불가침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미국, 남조선 사람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남조선괴뢰들은 우리의 정당한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지어 자기들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였다가도 우리가 막상 하자고 대답을 주면 선뜻 달라붙지 않고 있습니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주는 우리의 구호물자를 받아가면서 그들이 취한 태도가 그 대표적 실례의 하나입니다.

    남조선괴뢰들은 지난 9월 18일 우리 일꾼들과 마주 앉아 구호물자를 인도인수하는 문제를 토의할 때 9월말까지 구호물자 전량을 넘겨달라, 9월말이 지나서는 쌀 한알, 시멘트 한줌도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일꾼들은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짧은 기간에 구호물자들이 남조선수재민들에게 직접 가닿게 하기 위하여 5만석의 쌀을 800대의 자동차를 동원하여 2~3일동안에 서울까지 날라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번에는 당신들이 휘발유를 소비하면서 서울까지 오느라고 하지 말고 판문점까지만 실어다 달라, 그렇지 않으면 쌀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남조선괴뢰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우리가 보내주는 구호물자를 받지 않겠다는 소리입니다. 나는 북남적십자실무대표들의 회담에 참가한 남측 대표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다는 보고를 받고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해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5만석의 쌀을 비롯하여 구호물자 전량을 남조선당국이 요구하는 날짜와 장소에 보내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남조선수재민들에게 5만석의 쌀과 10만톤의 시멘트, 50만미터의 천과 기타 많은 의약품들을 보내주었습니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주는 사업을 통하여 우리 인민의 단결된 위력을 세계인민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남조선괴뢰들은 동포애가 스며있는 우리의 구호물자들을 호의적인 입장에서 받을 대신에 여러가지 이유와 구실을 붙여 구호물자가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가닿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크게 오산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묵은 쌀이 없는 줄 알고 5만석의 쌀을 9월말까지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햇쌀을 찧어서는 자기들이 요구하는 날짜에 쌀 전량을 보내주지 못할 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약속된 날짜에 잘 마른 묵은 쌀로 전량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보내준 쌀을 받은 다음 그것이 몇해전에 생산한 쌀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공화국북반부에서는 해마다 풍년이 들기 때문에 묵은 쌀이 많습니다.

    남조선괴뢰들은 세계여론이 두려워 우리가 보내준 구호물자를 받아놓고는 매우 난처한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남조선인민들에게 북반부에는 거지가 많고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여 굶어죽고 얼어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거짓선전을 하여왔습니다. 그런데 남조선괴뢰들은 이번에 북반부에서 몇해 묵은 쌀과 고급천, 시멘트, 의약품들을 받았으니 자기들이 지금까지 한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난처한 입장에 빠진 전두환역도는 괴뢰문교부장관에게 어떻게 하나 북반부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비난할 수 있게 <제강>을 만들어 <해설>사업을 하라고 하면서 분주탕을 피우고 있다고 합니다.

    남조선괴뢰들은 구호물자를 받은 이튿날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우리를 비방중상하는 반공시위를 벌였습니다. 전두환은 사람다운데가 없는 아주 더러운 놈입니다. 사람이 사람하고 상대하여야 통하지 사람답지 못한 자와 상대하여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일꾼들에게 전두환이 못된 짓을 하면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넓은 도량을 가지고 그들이 제기하는대로 북남경제회담에 응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북과 남사이에 경제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경제합작과 교류를 하면 북과 남이 힘을 합쳐 민족경제를 통일적으로 발전시키고 모든 분야에 걸쳐 민족적 융성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과 남이 경제합작을 하는 문제는 오늘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미 1972년에 북과 남의 고위급정치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온 최규하, 장기영, 이후락을 만났을 때 북과 남이 경제합작을 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북과 남이 경제합작을 실현하기 위하여 세가지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첫째로, 남조선사람들이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와서 우리와 공동으로 광산을 개발하자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설비를 대고 당신들은 노력을 대어 쇠돌을 캐자, 당신들은 대양건너 먼곳에 가서 쇠돌을 사오는데 그러지 말고 한 지맥으로 잇닿아있는 북반부에 와서 쇠돌을 마음대로 캐가라, 무산광산에는 몇백년동안 캐먹을 수 있는 쇠돌이 있다, 당신들은 노력이 남는다고 하면서 동족을 서부독일에 탄부와 간호원으로 보내고 브라질에 <이민>의 명목으로 보내고 있으며 심지어 어린이들을 자본주의나라들에 <양자>로 보내고 있다, 같은 조선민족으로서 어떻게 이와 같이 할 수 있는가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둘째로, 남조선에 관개공사를 하여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박정희는 <새마을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일본에서 많은 차관을 끌어들여 남조선농촌들에 있는 초가집이영을 벗기고 수지기와를 씌우는 놀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새마을운동>을 하려면 인민들이 밥과 고기를 먹고 배가 부를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배를 곯으면서 지붕에 수지기와나 씌우는 <새마을운동>을 하여서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공화국북반부에서는 치산치수를 잘하였기 때문에 홍수나 가물을 모르고 해마다 풍년이 들고 있다, 우리는 관개공사를 해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아프리카나라들에 가서 치산치수사업을 도와주고 있다, 무상으로 남조선에 관개공사를 해주겠으니 당신들은 노력을 대라, 옛날 중국의 황제들가운데는 치산치수를 잘하여 이름을 남긴 사람도 있다, 지금 남조선은 조금만 비가 와도 홍수가 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논들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있는데 관개공사를 해놓으면 이런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셋째로, 남조선어민들이 공화국북반부어장에 들어와 물고기를 마음대로 잡아가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남조선어민들이 다른 나라 영해에 비법적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다가 붙잡혀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가까운 북반부바다에 들어와 물고기를 실컷 잡아가게 하라, 해마다 명태철이 되면 우리 나라 동해에 수백만톤의 명태가 쓸어들지만 우리는 기껏하여 60만톤밖에 잡지 못한다, 남조선어민들이 해마다 북반부어장에 들어와 200만톤의 명태를 잡아가도 물고기자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서 김일성수상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주 지당한 말씀입니다, 박<대통령>도 환영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다만 합작이란 표현을 다른 말로 바꾸어쓰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에서 국공합작을 하였다가 국민당이 녹아났기 때문에 박정희는 합작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합작이라는 말이 싫으면 협조라고 하든지 적당한 표현을 쓰자고 하였습니다.

    남조선사람들은 이와 같이 우리와 경제합작을 하겠다고 하고서는 돌아가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달이 지나서 한다는 소리가 금강산에 관광호텔을 지어놓고 북과 남이 공동으로 관광업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남조선여성들을 매춘부로 팔아넘기는 못된짓을 북반부에까지 들어와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괴뢰들이 이런 너절한 소리를 하기 때문에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남조선당국이 북과 남이 경제합작을 하자고 제기한데 대하여 좋은 일이라고 지지하여주면서 우선 실무대표들의 경제회담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대답을 준데 대하여 그들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하는 것은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북과 남이 경제합작을 하면 분열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격폐되었던 북남관계를 풀고 이해를 두터이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북과 남의 접촉과 교류를 통하여 전두환과의 면목을 익히는 것보다 북남인민들간의 민족적 유대를 강화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남조선기업체와 경제거래를 할 수 있는 회사를 몇개 만들려고 합니다. 남조선경제는 개인기업경제이기 때문에 그들과 경제거래를 하려면 우리도 회사가 있어야 합니다. 북과 남사이에 물물교환을 할 분야는 많습니다. 우리가 남조선에 쇠돌과 석탄을 보내주고 남조선에서 화학섬유를 받아올 수도 있고 남조선어민들이 북반부에 들어와서 우리 어민들과 같이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경공업제품은 넘겨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조선경공업제품가운데는 별로 신통한 것도 없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공업제품을 사들여오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일관한 방침입니다. 우리는 인민들에게 애국심을 키워주고 민족성을 높여주기 위하여 다른 나라 경공업제품을 사들여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민들에게 질이 좀 낮아도 우리의 것을 써야 애국주의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민들이 애국주의정신을 가져야 사회주의건설도 잘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도 잘할 수 있습니다. 애국주의는 조선사람의 정신적 지주로, 우리 민족의 넋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사람이 참답게 살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주변정세에서 문제로 되고있는것은 소미대결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소련은 미국의 대륙침략을 막으려고 무력을 증강하고 있으며 미국은 소련의 진출을 견제하려고 남조선에 최신군사장비들을 계속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두 대국의 군사적 대결상태는 조선반도의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으며 우리 나라의 통일에 큰 방해거리로 되고 있습니다. 소미간의 대결상태가 완화되면 남조선이 우리가 내놓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받아물 수도 있습니다.

    북과 남사이에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가 있는 조건에서 그것을 초월한 가장 합리적인 통일방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 이외에 다른 방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북과 남이 상대방의 서로 다른 사회제도와 이념에 대하여 비방중상하지 말고 누가 누구를 먹으려 하지 말며 사이좋게 지낼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입니다. 우리는 통일후 남조선사람들이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나라들과 장사를 하든 무엇을 하든 그에 대하여 상관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시비를 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가 남조선을 <적화>하려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 제6차대회에서 내놓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대로 북과 남이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기초위에서 최고민족연방회의와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고민족연방회의 의장과 연방상설위원회 위원장은 북과 남에서 윤번제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엔에도 <두개 조선>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국호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북과 남이 각기 따로 유엔에 들어가면 우리 나라는 영원히 둘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반대할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이 방안이 실현된다고 하여 미국사람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해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전에 우리 나라를 방문한 독일사회민주당 위원장의 특사를 만났을 때 그에게 지금 남조선에 서부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나라 자본이 많이 투자되어있는데 우리는 나라가 통일되어도 남조선에 투자된 다른 나라의 자본을 다치지 않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이 실현되면 북과 남의 인민들에게 좋은 점이 많습니다. 북과 남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고 군대를 축소함으로써 쌍방이 군사적 부담을 덜게 됩니다. 지금 북과 남은 각기 수십만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커다란 군사적 부담을 걸머지고 있습니다. 연방제가 실현되고 북과 남이 각각 군대를 10만명으로 축소하면 많은 군사적 부담을 덜 뿐 아니라 숱한 노력을 얻게 됩니다. 가령 우리가 30만명의 인민군대를 축소한다고 하여도 그 노력으로 우리 나라에 무진장한 지하자원을 캐서 다른 나라에 팔면 많은 외화를 벌 수 있고 인민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료와 자재를 많이 사들여올 수 있을것입니다.

    지금 남조선괴뢰군은 미국사람들이 대주는 돈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우리는 자체의 힘으로 인민군대를 유지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 부담이 매우 큽니다. 군사적 부담이 없다면 우리 인민들은 구라파사회주의나라 인민들보다 훨씬 낫게 살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 나라들보다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소련을 비롯한 구라파사회주의나라들을 돌아보니 그 나라들이 우리 나라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1956년에 그 나라들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우리 나라가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을 끝낸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부러운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우리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놓기 전에는 구라파땅을 다시 밟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번에 소련과 구라파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여보니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교육제도와 여러가지 인민적 시책, 사회질서를 지키는 측면을 비롯하여 많은 분야에서 우리가 그 나라들보다 앞서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전자자동화공업을 발전시켜 생산공정의 자동화, 로봇화를 실현하면 경제분야에서 구라파나라들에 뒤떨어질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멀지 않은 장래에 인민경제의 중요생산공정들에 대한 로봇화를 실현하여 어렵고 힘든 노동을 다 기계가 대신하게 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그 나라들보다 <뒤떨어진 것>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유흥장에서 엉뎅이춤을 추지 않는 것인데 이런데서 뒤떨어지는 것은 나쁘지 않으며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소련과 구라파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여보니 우리 나라처럼 아름답고 물이 맑은 나라는 없습니다. 시베리아에 있는 강들과 엘베강, 두나우강을 비롯하여 구라파의 강들은 다 물이 흐려 뿌옇습니다. 우리 나라의 강들은 다 맑고 아름답습니다. 압록강은 물이 맑다고 하여 강이름을 그렇게 달았고 청천강도 물이 맑다고 하여 강이름을 그렇게 달았습니다. 물이 맑기 때문에 강물을 들여다보기만 하여도 기분이 좋고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대동강은 지금도 물이 맑지만 앞으로 남포갑문이 건설되면 밀물때 서해의 감탕물이 쓸어들지 못하게 되어 물이 더 맑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한 남포갑문을 빠른 시일안에 완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포에서 배를 타고 대동강상류까지 유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청천강에도 갑문을 여러개 건설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청천강에서도 배를 타고 유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전에는 청천강하구에서 배를 타고 희천까지 올라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강바닥이 높아져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향산읍에 갑문을 건설하고 있는데 그것이 완공되면 향산읍옆으로 흐르는 청천강에 물이 꽉 차서 향산읍이 멋쟁이로 될 것이며 향산읍에서 낚시질도 하고 배를 타고 유람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인공저수지가 많습니다. 도처에 크고 작은 1, 500여개의 인공저수지들이 있는데 우리 인민들은 큰 인공저수지들을 <산중의 바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선생이 여기 와서 보았겠지만 태성저수지도 그런 인공저수지의 하나입니다.

    태성저수지를 건설하기 전에는 용강, 온천 일대가 매우 척박한 고장이었습니다. 전후에 나는 이 지방 사람들이 어렵게 산다는 말을 듣고 농민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려고 그곳에 가보았습니다. 용강, 온천 일대에는 산들이 들어앉아있고 물이 적었습니다. 산이 막혀 다른데서 물을 끌어올 수도 없었고 그 일대는 강수량도 매우 적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이 1, 000~1, 200 밀리미터인데 이곳은 750~800밀리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고장 농민들은 가물을 타지 않는 피나 수수를 심어먹고 있었습니다. 온천 지방에는 간석지를 개간하여 논으로 만들 땅도 많았지만 물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용강, 온천지방 농민들과 담화하는 과정에 이러한 실태를 알고 이 지방에 저수지들을 만들어 물문제를 풀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저수지를 만드는데 적합한 장소를 선택하기 위하여 여러곳을 다녀보고나서 태성골안에 언제를 쌓고 그곳에 물주머니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태성골안에 언제를 쌓고 물을 채운 다음 산에 굴을 뚫어 용강군과 증산군, 온천군쪽으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습니다. 이 공사는 대단히 큰 공사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짧은 기간에 해제꼈습니다. 그때 우리 인민들은 3년간의 전쟁을 이겨낸 직후여서 혁명적 열의가 대단히 높았습니다. 지금 태성저수지에서 용강군, 온천군, 증산군과 대동군의 일부 그리고 남포시의 일부 지역에까지 물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평안남도와 남포시에는 태성저수지와 같은 큰 저수지가 여러개 있습니다. 대동강물을 끌어올려 태성저수지에 채우는데 쓰는 대형양수기들은 다 우리자체의 힘으로 만든 것입니다. 앞으로 남포갑문이 건설되면 이 지방의 물문제를 보다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큰 관개공사를 한 덕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물걱정을 모르고 농사를 지으며 넉넉히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민들이 좋아하며 잘사는 것을 보는 것이 제일 기쁩니다.

    우리는 앞으로 30만정보의 간석지를 개간하여 벼농사에서 모내기를 그만두고 비행기로 직파를 하려고 합니다. 부침땅면적이 많이 늘어나면 구태여 힘들게 벼모내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석지에 직파를 하여도 벼를 정보당 10톤씩 생산할 수 있으며 간석지논에서만도 300만톤 생산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로 씨를 뿌리고 살초제로 김을 잡고 가을에 가서 이동식탈곡기를 내다놓고 벼를 털면 정보당 수확고를 제대로 내면서도 노력공수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벼농사에서 종합적 기계화를 실현하면 노력이 정보당 300여공수가 들던 것을 30공수로 줄일 수 있으며 한명의 농장원이 7~10정보의 논을 다룰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명의 농업로동자가 30정보의 밭을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대홍단군종합농장에서도 한명의 노력자가 30정보의 밭을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토지정리를 하기 어려운 경사진 밭에는 뽕나무, 포도나무와 같은 다년생 작물을 심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구상들이 실현될 날은 멀지 않아 올 것입니다.

    최근에 진행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도를 읽어보니 소련사람들도 관개공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농업생산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으나 그 어느 하나도 똑똑하게 해결되지 않으니 관개공사를 하여야 하겠다고 결심한 것 같습니다.

    나는 소련방문을 위하여 시베리아를 통과할 때 나와 동행한 소련 최고소비에트상임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당신네 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들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그 강들을 농업생산에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소련은 공업이 발전된 나라이므로 양수기를 많이 만들어 강물을 퍼올려 무연한 벌에 대주면 지금보다 두배이상의 알곡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전직후에 등짐으로 흙을 져날라 100만정보의 논밭에 물을 댈 수 있는 관개공사를 하였다, 당신들이 위력한 기계수단을 이용하여 부침땅면적의 10분의 1만 수리화하여도 대단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독일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을 때 호네커는 나를 프랑크푸르트ㅡ오데르주에 있는 골초브농업생산협동조합에 데리고 가서 대형분수식 관수체계가 도입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분수식 관수체계를 오래 전에 도입하였습니다. 호네커는 최근에 농촌에서 수리화를 실현하여야 농업생산을 늘일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것 같습니다. 그가 그전에는 농촌에서 기계화만 하면 알곡생산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호네커를 만날 때마다 농촌에서 알곡생산을 높이자면 수리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여주군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1964년에 발표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에서 농촌경리의 수리화, 전기화, 기계화, 화학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농촌테제를 관철하는 사업이 힘있게 추진되어 지금은 우리가 구라파사회주의나라 사람들 못지 않게 잘살게 되었습니다.

    볼란드를 방문하였을 때 야루젤스키는 우리 나라에 해마다 1만명정도의 볼란드청년들을 보내겠으니 잘 교양하여달라고 하였습니다. 볼란드에서는 인민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사상적으로 변질되어 당과 정부를 반대하는 놀음을 자주 벌인다고 합니다. 주권을 쥔 노동계급의 당이 사상교양사업을 잘하여 인민들에게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높여주는 것은 그들에 대한 최대의 사랑이며 사상교양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인민들을 사상정신적으로 병들게 하는 것은 나라와 인민 앞에 짓는 최대의 죄악입니다. 볼란드에서 이 중요한 사업을 잘하지 못한 탓으로 하여 애를 먹고 있습니다. 나는 야루젤스키에게 1만명의 청년들을 비행기에 태워보내려면 상당히 많은 비행기가 있어야 하겠는데 그러지 말고 한해에 몇천명정도씩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야루젤스키의 말에 의하면 로마교황이 볼란드사람이라고 합니다. 로마교황은 이탈리아사람외에 다른 나라 사람이 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이 볼란드사람을 로마교황으로 앉혔다고 합니다. 그 교황이 볼란드인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나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볼란드를 방문하였을 때 우리 일꾼들이 안전상 견지로 보아 그 나라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군중집회를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야루젤스키는 우리를 환영하는 군중집회를 소련에서도 하였고 앞으로 다른 나라들에서도 하겠다고 하는데 자기 나라에서만 못하게 되니 매우 섭섭해하였습니다. 야루젤스키는 우리 일꾼들이 환영군중집회를 할 수 없다고 하자 처음에는 우격다짐으로라도 기어이 하겠다고 하였는데 그러다가 만일 재미없는 일이 벌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였다고 합니다. 야루젤스키는 볼란드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군중집회를 하지 못한데 대하여 몹시 미안해하였습니다. 그는 소련사람들이 우리를 열렬히 환영하고 극진히 맞이한데 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소련사람들은 우리가 자기 나라를 방문할 때 시베리아를 통과한다는 것을 알고 시베리아의 긴 구간에 있는 모든 철도역들을 다 깨끗하게 다시 꾸렸다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성의껏 환영하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원래 소련에서는 다른 나라의 수반이 자기 나라에 와도 군중을 동원하여 환영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번에 굉장히 많은 군중을 동원하여 우리를 환영하였습니다.

    야루젤스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건설을 한 경험을 이야기하여주자 자기 당의 당면한 과업은 노동계급에게서 신용을 얻는 것이라고 하면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비당원 노동자들을 참가시켰으면 좋겠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당을 클럽화한다고 욕을 할 것 같아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당신들이 하고 싶으면 할 것이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는 어렵고 방대한 과업을 해결하기 위하여 군중을 동원하는 문제가 제기되면 평양체육관에 한 2만명의 군중을 모아놓고 군중집회를 한다, 평양체육관은 단순히 체육만을 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 아니다, 우리는 거기서 중앙적인 회의를 비롯한 여러가지 회의를 한다, 예를 들어 농업부문에서 어떤 새로운 과업이 제기되면 농장원들과 관계부문 일꾼들을 평양체육관에 모아놓고 회의를 한다, 당신들이 당전원회의에 노동자들을 800여명 참가시켰다고 하여 누가 욕할 사람도 없다.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멋이라고 남이야 무엇이라고 하건 상관할 것이 없다고 말하여주었습니다.

    야루젤스키가 그후 내가 말한대로 많은 노동자들을 참가시켜가지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하였는데 노동자들이 자기들을 당전원회의에 참가시켜 나라의 사정을 같이 의논한다고 하면서 매우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볼란드지도자들과 담화하여보니 그들은 무엇을 하려고 하다가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비판할 것 같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주체를 세우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해 버릇하면 언제가도 예속의 멍에를 벗지 못하게 되며 제정신을 잃고 남의 풍에 놀면서 머저리구실을 하게 됩니다. 주체를 세우는 문제는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독자적으로 자기 나라의 실정과 자기 인민의 이익에 맞게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원칙을 지키는 문제이며 혁명과 건설의 운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주체를 튼튼히 세우고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기 신념에 따라 우리 식으로 혁명과 건설을 진행해왔습니다. 지난 기간 우리가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거둔 승리와 성과들은 주체확립이 가져다준 풍만한 결실입니다.

    지난 기간 우리 혁명이 걸어온 길을 생각할 때마다 함께 싸우던 동지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집니다.

    선생이 이장천을 알 것입니다. 그는 이제는 나이가 많아 사람들이 찾아가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선생이 양세봉의 부인을 만나보았으면 잘하였습니다. 이제는 퍼그나 늙었을 것입니다. 양세봉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비행사를 하다가 전사하였습니다. 그는 똑똑하였습니다.

    양세봉이 죽은 다음 독립군 사령을 김활석이 하였는데 그는 정세에 어두운 사람이었습니다. 김활석은 일제놈들의 특무가 국민당군대로 가장하고 독립군부대에 찾아와 가짜 신임장을 보이면서 장개석총통이 김활석선생을 초청한다고 하자 그것을 진짜로 믿고 따라갔습니다. 따라가보니 그곳은 일본헌병대였습니다. 김활석은 거기서 일제놈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최윤구는 의주사람인데 무송에서 우리 아버지와 그리고 장철호 등과 함께 조선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최윤구는 1938년에 얼마 남지 않은 독립군부대를 데리고 우리를 찾아와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최윤구의 독립군부대가 즙안에서 일제의 토벌에 걸려들어 다 죽을번한 것을 최춘국부대가 구원하여준 일이 있습니다. 나는 사선의 고비를 함께 넘어오다가 먼저 간 우리 동무들과 벗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우리 동무들이 일제놈들이 독약을 친 소금을 먹고 혼난 적이 있습니다. 호박과 녹두는 좋은 해독제입니다. 독약을 먹은 사람에게 녹두나 호박을 먹이면 독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소금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소금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다리맥이 없어져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됩니다. 1939년 봄 우리가 행군을 하여 12도구 근방에 도착하였을 때 소금이 없어 며칠동안 소금을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대원에게 돈을 주면서 아버지를 찾아가 소금을 몇말 사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집은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 대원은 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내놓으면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말고 소금을 사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소금을 많이 구하려는 생각으로부터 옆집 노인에게 지금 멀지 않은 산에서 유격대가 소금을 먹지 못하여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소금을 사서 유격대에 보내주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일제의 특무노릇을 하던 다른 집 노인의 아들이 듣고 인차 일제놈들에게 고발하였습니다. 일제놈들은 특무로부터 이러한 정보를 받고 촌거리의 가게방들에 내다놓고 팔던 소금을 모조리 거두어들이고 그 대신 독약을 친 소금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내막을 모르고 유격대원과 그의 아버지는 독약을 친 소금을 사서 지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부대에서는 그들이 가져온 소금을 인차 연대들과 경위중대에 나누어주었는데 경위중대를 제외한 다른 부대들에서는 다 그 소금을 먹었습니다. 경위중대동무들은 내가 사령부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올 때까지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초교대를 나가느라고 먼저 식사를 한 대원들속에서 배가 아프다는 환자들이 생겼습니다. 나는 회의를 하다가 이러한 보고를 받고 모든 부대들에 당장 식사를 중지하며 내준 소금을 다 거두어들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이미 다른 부대들에서 식사를 다 한 다음이었습니다. 회의를 끝마치고 나와서 소금을 한줌 쥐어서 불에 넣으니 퍼런 불이 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일본 <토벌대>놈들이 반드시 공격하여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선손을 써서 부대의 환자들을 안전한 수림지대에 피신시킨 다음 남은 성원들에게 전투준비를 철저히 갖추도록 하였습니다. 예견한대로 일제 <토벌대>놈들은 유격대가 독약을 친 소금을 먹고 다 쓰러져있는 줄로 알고 우리를 생포하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달려들었습니다. 우리는 얼마 되지 않은 역량을 가지고 결사적으로 싸워 달려드는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우리는 일본 <토벌대>놈들을 물리친 다음 독약을 친 소금을 먹은 사람들의 몸에서 독성을 제거하는 사업을 하였습니다. 독을 제거하는데는 호박보다도 녹두가 좋지만 그것은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주로 호박에 좁쌀을 넣어 죽을 쑤어서 환자들에게 먹였습니다. 그렇게 며칠동안 먹이니 독이 빠지고 병이 나았습니다.

    호박은 전쟁시기 부상자들의 상처를 치료하는데도 씁니다. 호박을 속을 좀 파내고 상처가 생긴 부위에 붙이면 인차 낫습니다. 호박은 산후탈에도 쓰이고 겨울에 노인들이 기침을 할 때 먹으면 기침을 하지 않습니다. 호박은 민간요법에 많이 쓰이는 좋은 약재입니다.

    선생은 앞으로 조국에 자주 와서 몇달씩 쉬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에 매우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