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완성하는데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

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담화 1969 9 27

 

나는 얼마전에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그대로 옮긴 예술영화 《피바다》의 첫필림을 보았는데 영화가 괜찮게 되였습니다. 그만하면 영화의 극조직도 째이고 극성도 강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예술영화 《피바다》를 보시고 영화가 좋다고 하시면서 영화가 나가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것이라고 교시하시였습니다. 특히 피바다장면과 어머니가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장면, 을남이 죽는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고 하시면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있었던 잊을수 없는 일들을 회상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예술영화 《피바다》를 통하여 배우들의 연기수준이 한단계 높아 졌다고 못내 만족해 하시였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역형상에서 조선녀성의 풍모를 보여 주었다고 하시면서 어머니역을 배우가 공훈배우답게 연기를 잘하였다고 치하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예술영화 《피바다》가 잘되였지만 내용에서 원작과 다른것이 많다고 지적하시였습니다. 사실 예술영화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시기 수령님께서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그대로 옮긴 영화라고 아직 부족점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만이 아니라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들에 옮기는 사업을 하여야 하며 사업을 통하여 문학예술전반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우리 시대에 와서 영화를 비롯한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들에 손색없이 옮기자면 일련의 원칙적문제에 대하여 옳게 인식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영화예술부문의 창작가, 예술인들에게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완성하는데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1

 

우리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직전개된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의 간고한 불길속에서 이룩되였습니다.

우리의 주체적문학예술의 깊고 억센 뿌리이며 만년초석인 우리 당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수령님께서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로 하여 더욱 찬연한 빛을 뿌리고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문학예술을 혁명투쟁의 위력한 무기로 보시고 혁명적문학예술의 창작과 활동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히심으로써 인류문예사상사에 불멸의 공헌을 주체적문예사상을 창시하시였으며 몸소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창작하시여 주체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을 반영한 문학예술작품의 고전적본보기를 마련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로서는 광범한 인민대중을 자주적인 반일애국사상으로 교양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혈분만국회》와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조국광복의 성전에로 있게 불러 일으킨 《꽃 파는 처녀》,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경축대회》그리고 가요 《조국광복회10대강령가》, 《반일전가》를 비롯하여 내용과 형식에서 다양한 작품이 많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에는 연극과 가극, 음악과 무용을 비롯한 문학예술의 모든 종류와 형태가 포함되여 있으며 극예술인 경우에도 정극과 희극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와 양상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류례없이 간고하였던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창작공연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은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제기되는 자주성에 관한 문제, 자주적인 인간에 대한 문제에 옳바른 해답을 줌으로써 생활의 교과서, 투쟁의 무기로 대중교양과 혁명투쟁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는 사상적내용의 철학성과 심오성에 있어서나 생활반영의 폭과 깊이에 있어서 주체적문예사상이 제기하는 혁명적문학예술의 근본요구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비파다》는 평범하고 소박한 농촌가정과 인간의 운명을 통하여 시대를 예술적으로 개괄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전반적조선혁명의 흐름과 혁명투쟁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일반화함으로써 혁명이란 무엇이며 혁명투쟁을 하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심오한 예술적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비파다》는 내용과 형식, 창조체계와 방법의 모든 령역에서 주체사상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극예술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와 형태의 문학예술창작에서 확고히 틀어 쥐고 나가야 창작원칙과 방도를 완벽하게 체현하고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는 작품에 제기된 사회정치적문제의 절박성과 심오성, 생활반영의 폭과 깊이, 형상 수단과 수법의 다양성과 풍부성으로 하여 혁명적문학예술이 도달하여야 최상의 높이에 이른 기념비적명작으로서 수령님께서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가운데서도 특출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참으로 여기에는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 주체적인 창조체계와 방법, 고귀한 창작경험과 업적이 집대성되여 있으며 지난 날의 문학예술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주체적문학예술의 면모와 특징이 밝혀 있습니다.

동무들도 알다 싶이 항일혁명투쟁시기에는 당시의 조건과 환경의 제약성으로 하여 영화를 만들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옮겨 놓으면 우리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을 빛내이는데서 획기적전환을 가져 올것이며 그에 토대하여 주체시대의 새로운 영화예술을 창조하고 나아가서 문학예술전반을 혁신하는데서 거대한 전진을 이룩하게 될것입니다.

참다운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은 깊고 억센 력사적뿌리이며 만년초석인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오늘 우리 시대에 와서 영화로 옮기는 사업은 영화예술의 내용과 형식, 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의 모든 령역에서 지난 날의 낡은것을 뒤집어 엎고 주체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영화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하나의 혁명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옮기는 사업은 우리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데서와 영화예술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원래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는 연극작품으로서 공연시간은 40~45 정도 되였다고 합니다. 《피바다》의 공연시간은 짧았지만 선동성은 매우 강하였습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작품을 가지고 여러곳에서 공연하였는데 가운데서도 왕청과 내도산에서 제일 많이 공연하였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님께서 갑순역을 많이 맡아 하였다고 합니다.

예술영화 《피바다》를 만들면 근로자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 크게 이바지하게 될것이며 영화를 본보기로 하여 영화예술뿐아니라 문학예술의 모든 령역에서 혁명적전환을 이룩할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될것입니다.

동무들은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옮기는 사업이 가지는 의의를 깊이 자각하고 모든 정력과 지혜를 바쳐 영화를 사상예술적으로 손색없이 훌륭히 완성하여야 하겠습니다.

 

2

 

예술영화 《피바다》를 완성하려면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영화로 옮기는데서 지켜야 원칙을 옳게 세우고 그것을 창작실천에서 확고히 견지하여야 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옮기려면 무엇보다도 원작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원작에 충실하는것은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영화로 옮기는데서 나서는 첫째가는 요구이며 근본원칙입니다.

원작에 충실한다는것은 원작에 구현된 사상예술적성과를 가장 정당한것으로 받아 들이고 우수한 사상예술적특성을 손색없이 그대로 재현한다는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지난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를 많이 내놓았으며 그중에 성과작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은 개별적인 작가에 의하여 창작된 문학예술작품을 각색하는것과는 전혀 다르며 창작목적에서 근본적으로 구별됩니다. 예술영화 《피바다》를 창작하는 목적은 단순히 영화자체의 인식교양적의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것은 영화를 통하여 항일의 불길속에서 이룩된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키며 우리의 영화예술을 비롯한 문학예술전반에서 혁명적전환을 이룩할수 있는 본보기를 마련하자는데 있습니다.

수령님께서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은 인류사상사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위대한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의 참다운 길을 밝힌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으며 사상적내용과 예술적형상에서 최상의 수준에 오른 주체시대의 문학예술의 참다운 본보기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의 참다운 면모를 자그마한 손색도 없이 그대로 재현하자면 원작의 사상예술적특성을 깊이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정당한것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에서는 일제의 《간도토벌》에 대하여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간도토벌》은 항일유격대가 창건되기전에도 있었고 항일유격대가 창건된 다음에도 있었습니다. 예술영화 《피바다》에서 《간도토벌》에 대하여 진하게 그려 넣은것은 잘한것입니다.

그러나 동무들이 만든 영화에는 인물설정부터 원작과 어긋나는것이 많습니다. 지금 만든 예술영화 《피바다》에서처럼 원작을 영화적형상으로 펼친다고 하면서 원작과는 달리 늙은 어머니를 유격대에 입대시켜 형상의 진실성을 잃게 한다면 원작의 사상예술적특성을 살려 낼수 없으며 오히려 손상을 주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될것입니다.

예술영화 《피바다》는 어머니와 유격대정치공작원의 관계만 빼놓으면 원작과 전혀 다른 영화가 될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영화를 《피바다》로 부르기는 곤난합니다. 차라리 영화에 《한 녀성의 운명》이라고 제목을 달아서 내보내는것이 좋을것입니다. 원작과는 달리 부녀회문제도 옳게 선정하지 않고 청년들의 투쟁도 깊이 보여 주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어머니선에만 치우쳤기때문에 영화제목을 그렇게 달아서 내보내도 무리가 없을것 같습니다.

영화제목을 《피바다》라고 하려면 철저히 원작에 기초하여 영화를 완성하여야 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옮기려면 예술적허구를 아무렇게나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각색이란 어떤 작품을 다른 종류나 형태의 작품으로 재창조하는것이기때문에 원작에 철저히 의거하면서도 각색자의 창조적인 예술적허구가 허용될수 있지만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옮기는데서는 함부로 허구를 더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가피하게 허구를 써야 경우에는 원작의 사상예술적특성을 깊이 연구파악하고 원작에 반영된 생활에 철저히 기초하여야 합니다. 원작의 생활에 바탕을 두지 않은 허구는 사실상 무의미하며 도리여 원작의 사상예술적특성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수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옮기려면 영화예술의 형태상 특성을 옳게 살려야 합니다. 원작을 옮기는데서 예술의 형태상 특성을 살리는것은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여러가지 예술형태로 옮기는데서 지켜야 하나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원작에 충실한다고 하면서 영화의 형태상 특성을 살리지 않는다면 원작의 사상예술적특성을 옳게 재현할수 없습니다.

문학예술의 다양한 형태에는 현실을 반영하는 고유한 수단과 수법이 있으며 극적묘사방식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연극과 영화인 경우에도 서로 다른 형상 언어와 문법이 있습니다. 연극은 대사의 예술이라면 영화는 행동의 예술입니다. 연극에서의 몇마디 대사가 영화에서는 하나의 장면으로 펼쳐 질수 있습니다.

주인공 어머니일가가 일제놈들의 《토벌》에 남편을 잃고 살길을 찾아 별재마을로 찾아 가는 이야기가 원작에서는 몇마디의 대사로 처리되였으나 예술영화 《피바다》에서는 영화적으로 형상되였습니다. 장면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는 하지 말자고 서로 다짐하는 어린 오누이의 기특한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형상은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가요 《〈토벌〉가》의 비장한 선률과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둡니다.

별재마을에 살던 친척이 잘못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실망하였던 어머니가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마을에 가서 살자고 하는 별재마을로인의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희망찬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장면도 영화적으로 처리되였습니다.

이러한것은 원작에 기초하면서도 영화의 형태상 특성에 맞게 처리한데서 얻어 생동한 화폭들입니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형태상 특성을 옳게 살리는 원칙을 철저히 견지하여야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손색없이 그대로 재현할수 있으며 그것을 대를 이어 길이 전할수 있습니다.

 

3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옮기려면 작품의 종자를 옳게 인식하고 원작 그대로 재현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작품을 각색하든지 원작의 종자를 옳게 파악하고 주제사상을 정확히 인식하는것은 선결조건으로 됩니다. 종자를 똑바로 알아야 원작의 사상주제적요구에 맞게 구성의 대를 세우고 형상의 꽃을 피워 나갈수 있습니다.

작품의 핵으로서의 종자는 작품의 사상예술적질을 조건 짓는 기초이며 형상적특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출발점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가혹한 억압과 착취를 받으며 살아 가는 조선의 평범한 어머니가 생활의 모진 시련과 세파속에서 점차 혁명투쟁의 진리를 깨닫고 혁명가로 자라나는 과정을 진실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자주성을 무참히 짓밟는 일제식민지통치제도의 본질을 인식하고 원쑤에 대한 적개심에 끓어 넘쳐 혁명투쟁에로 나서는 주인공 어머니의 성격발전과정은 혁명투쟁의 위대한 진리를 인식하고 혁명가로 자라나는 과정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는 일제의 야수적인 학살만행에 의하여 가정의 기둥으로 믿고 살던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도 이런 참변을 당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고 원통하게 통곡만 하던 어머니가 생활의 모진 시련속에서 점차 혁명의 길에 들어 서는 과정을 통하여 혁명이란 무엇이며 혁명은 일어 나며 혁명을 하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는것을 깊이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어머니가 인식한 혁명의 진리는 쉽게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라 피바다, 불바다를 헤쳐 나가는 시련과 우여곡절에 생활로정을 거쳐 오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 집니다. 어머니의 이러한 형상을 통하여 밝히고 있는 《피바다》의 사상적핵,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가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의 종자일것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의 종자는 한마디로 말하여 수난의 피바다를 투쟁의 피바다로 만들어야 한다는것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의 이러한 종자는 일제침략자들의 폭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간의 존엄과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반항은 더욱 세차게 일어 나며 조선인민이 살길은 오직 손에 무장을 들고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서는것이라는 반제혁명사상과 혁명적인 무장투쟁사상의 진리성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의 심오한 사상은 일제의 야수적인 폭압과 살륙만행으로 강토가 피바다로 변한 참혹한 현실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형상적으로 해명되고 있습니다.

작품에는 1930년대 우리 나라의 력사적현실이 반영되여 있습니다. 시기에 본격적인 대륙침략의 길에 들어 일제는 《후방의 안전》을 위하여 조선인민에 대한 반동공세를 어느때보다도 강화하였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인민의 혁명적진출을 무력으로 탄압하고 이르는 곳마다에서 무고한 우리 인민을 닥치는대로 검거투옥학살하였습니다. 특히 일제는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새로운 혁명력량이 자라나고 있던 만주의 조선인거주지역에서 우리 인민에 대한 폭압만행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일제와 조선인민간의 민족적모순은 극도로 첨예화되였으며 일제의 야만적탄압에 항거하는 광범한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은 급격히 앙양되였습니다.

일제의 총칼에 쓰러진 무고한 인민들의 피로 물든 조선은 말그대로 피바다, 불바다였으며 인간생지옥이였습니다. 수난의 피바다를 투쟁의 피바다로 만들어야 한다는 《피바다》의 종자는 이러한 현실생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것은 주인공 어머니의 성격과 생활을 통하여 예술적으로 심오히 해명되고 있습니다.

혁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어머니는 혁명조직의 영향과 생활의 쓰라린 체험을 통하여 일제의 야수성과 략탈적본성, 식민지사회의 모순을 깨닫게 되고 인간의 존엄과 자주성이 여지없이 짓밟힌 망국노의 운명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는 수난의 피바다의 참화속에 주저앉아 한탄만 할것이 아니라 일어나 싸워야 한다는것을 인식하고 점차 혁명의 길에 들어 서게 되며 원한의 피바다를 투쟁의 피바다로 전변시켜 나가는 어엿한 혁명가로 자라나게 됩니다. 어머니의 이러한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을 통하여 작품의 종자가 실현됩니다.

《피바다》는 포악무도한 일제의 《간도토벌》로 억울하게 남편을 잃고 철부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살아 가야 막막한 앞날을 생각하며 통곡하는 어머니의 형상을 통하여 수난의 피바다의 참혹한 현실속에서 살아 가는 당시 조선인민의 비극적운명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일제놈들앞에서 굴종만 하고 순종하는 무저항주의적이며 패배주의적인 어머니가 아니였습니다. 그는 혁명조직의 영향밑에 원쑤놈들과는 끝까지 싸워야 하며 자기 운명은 자신이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혁명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부터 일제침략자들을 때려 부시는 투쟁의 길에 떨쳐 나서게 되며 과정에 수난의 피바다가 투쟁의 피바다로 전변되게 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의 종자는 피바다, 불바다 속에서 수난과 우여곡절의 길을 걸어 주인공이 생활체험을 통하여 심장으로 체득한 생활과 투쟁의 진리이기에 오늘도 사람들의 심장을 억세게 틀어 잡고 그들을 참된 삶과 투쟁의 길로 힘차게 고무하고 있는것입니다.

 

4

 

문학예술작품의 종자를 형상적으로 피우려면 인물들의 성격을 그려야 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는 조선의 평범한 어머니인 주인공이 혁명가로 자라나는 과정을 진실하게 그림으로써 혁명이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것이 아니며 누구나 혁명의 진리를 깨닫고 결심하면 혁명가로 될수 있다는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술영화 《피바다》를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부족점이 적지 않습니다.

예술영화 《피바다》를 완성하려면 원작대로 주인공 어머니의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을 깊이 있게 그려야 합니다. 사람들의 혁명적세계관이 서는 과정을 전면적으로 깊이 있게 그리는것은 혁명적문학예술의 기본요구입니다. 인민대중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 복무하여야 혁명적문학예술은 사람들의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을 깊이 있게 그릴것을 요구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에는 혁명적문학예술의 본질적특징으로 되는 주인공의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이 진실하고 생동하게 그려 있으며 그의 내면세계가 깊이 있게 펼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술영화 《피바다》에서는 원작의 이러한 요구를 원만히 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어머니의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을 그리기 위하여 어머니선을 강조하느라고는 하였으나 종자의 요구에 맞게 어머니의 세계관형성과정을 깊이 있고 풍부하게 그려 내지 못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사상의식 발전과정을 진실하게 밝힐수 있는 생활이 깊이 있게 그려 지지 못했기때문에 작품의 종자가 형상적으로 생동하고 감명 깊게 살아 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혁명조직의 교양을 받아 성장한 주인공 어머니의 혁명가로서의 사상정신적풍모가 제대로 그려 질수 없게 되였습니다.

어머니의 혁명적세계관형성의 첫단계라고 말할수 있는 남편이 화형당하는 장면에서 어머니의 성격을 진실하게 그리지 못하였습니다.

주인공의 혁명적세계관형성과정은 작품에 제시되는 사건과 사실을 인식하고 체험하는 과정에 변화발전하는 그의 내면세계와 실천행동에서 표현되게 됩니다.

어질고 순박하게만 살아 오던 어머니에게서 남편의 죽음은 간악한 일제에 대한 원한과 증오심을 불러 일으키는 극적계기이며 혁명가로 성장하는 어머니의 성격적바탕을 제시해 주는 출발점으로 됩니다. 모진 가난과 천대속에서 집안의 기둥으로 믿고 살아 오던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앞에서 어머니는 비통한 심정과 함께 남편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일제놈들에 대한 치솟는 격분을 금치 못해 할것이며 분노의 감정은 그의 내면세계의 변화에 커다란 작용을 하게 될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자신의 이러한 비극적인 생활체험과 유격대정치공작원의 혁명적영향을 받아 마침내 혁명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고 자기의 남편과 아들이 걸어 혁명의 길에 자신도 용약 떨쳐 나서게 될것은 자명한 리치입니다. 그런데 지금 영화에서 어머니를 남편의 죽음앞에서 원쑤들에게 반항할줄도 모르고 주어 비극적운명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는 나약한 녀성으로만 그리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억울하게 죽는 남편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저 슬피 울고만 있습니다. 그런 정황에서는 일제놈들이 아무리 총칼로 행패질을 한다고 하여도 하다못해 적들을 물고 뜯으면서라도 항거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장면을 비통하게 그려야 비극성을 강조할수 있으며 일제의 야수성과 포악성을 예리하게 드러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적문학예술의 비극성은 원쑤들의 치떨리는 폭압으로 수난을 겪는 주인공에 대한 동정의 눈물에서가 아니라 원쑤들에 대한 치솟는 격분과 증오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혁명적인데서 나타나야 합니다. 지금 만든 영화에서 어머니의 나약한 행동은 불합리한 사회현상의 본질을 인식하고 혁명투쟁에 나서는 어머니의 성격 발전과 생활의 론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어머니의 나약성은 성시해방전투때 성문을 열어 제끼는 장면에서 어머니가 적들의 총에 맞아 쓰러지게 한데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격발전의 견지에서 놓고 때 이 장면에서 어머니의 형상은 응당 혁명가로서의 사상정신적풍모를 갖춘 혁명적세계관형성의 높은 단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무맥하게 부상 당하게 함으로써 그의 혁명가로서의 사상정신적특질을 옳게 보여 주지 못하였습니다. 장면에서 어머니는 총에 맞아 부상 당하는 그런 무맥한 어머니가 아니라 적들과 총을 맞대고 싸우는 강의하고 용감한 어머니로 형상하여야 할것입니다.

성시가 해방된 다음 어머니가 연설하게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어머니는 연설에서 일제놈들이 남편과 막내아들을 죽이고 집도 태웠지만 큰아들이 유격대에서 싸우고 있다, 우리 모두 혁명전에 떨쳐 나서자고 호소하게 하여야 합니다.

영화에서는 유격대정치공작원의 형상도 잘하여야 합니다. 유격대정치공작원을 형상하는것은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1930년대 전반적조선혁명의 본질을 밝히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특히 을남이 죽는 장면에서 유격대정치공작원의 형상을 잘하여야 합니다. 작품에서 을남이 죽는 장면은 극의 절정을 이루는 장면으로서 성시를 해방하기 위한 대중적무장봉기가 폭발하게 되는 계기를 지어 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장면에서 일제침략자들의 폭압만행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증오심은 절정에 이르게 되고 축적된 감정은 폭발하여 무장봉기에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장면에서는 마땅히 모든 형상요소가 일제의 야수적본성을 폭로하고 원쑤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 일으키는데로 집중되여야 하겠으나 영화에서는 유격대정치공작원때문에 을남이 죽는것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마을사람들이 일제놈들의 행패로 재난을 당하는데 유격대정치공작원때문에 재난을 당하는것처럼 그려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물론 영화에서 유격대정치공작원이 어쩔수 없는 정황에서 마을에 숨게 되고 부상 당하여 혼수상태에 빠진 몸이기때문에 인민들이 피해를 받는것도 막지 못한것으로 설정하면 그것이 생활적으로는 타당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유격대정치공작원때문에 인민들이 피해를 당한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주게 된다면 인물형상에서뿐아니라 극의 절정으로서의 장면을 응당한 위치에서 그리는데서도 지장을 받게 됩니다.

을남이 죽는 장면에서 유격대정치공작원이 을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원쑤놈이 총알을 자기 몸으로 막고 적들을 소멸하다가 을남이도 죽고 그도 죽게 한다면 유격대정치공작원때문에 마을사람들이 피해를 받는것으로 되지 않을것입니다.

인물들의 형상을 원작의 요구에 맞게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예술영화 《피바다》에서 음악을 써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화를 보시고 《〈토벌〉가》가 좋다고 하시면서 한군데 주라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영화에서 《〈토벌〉가》를 생활이 고생스러워 부르는것으로 하여 한군데 주어야 하겠습니다.

동무들은 《피바다》원작의 내용에 철저히 의거하고 빠진것을 보충하여 영화를 빨리 완성하여야 하겠습니다. 창작단성원들은 영화를 보름동안에 잘만들 각오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영화를 만들수 있다는 신심을 가져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화가 기본적으로 잘되였다고 하시면서 마음을 놓으라고 교시하였습니다.

나는 동무들이 예술영화 《피바다》를 사상예술성이 높은 혁명적영화예술의 본보기작품으로 완성함으로써 우리 당과 인민의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리라는것을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