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예술에 대하여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88년 4월 20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며칠전에 국립연극단에서 창조한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연극《경축대회》를 보시고 연극을 아주 잘 만들었다고 높이 치하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연극《경축대회》를 보시고 하신 교시는 당의 연극혁명방침을 받들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우리 인민의 미감에 맞게 훌륭히 재현한 연극예술인들에 대한 높은 평가입니다.

우리가 연극혁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나갔습니다. 이 기간에 연극예술인들은 당의 연극혁명방침을 높이 받들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인 혁명연극 《성황당》, 《혈분만국회》, 《딸에게서 온 편지》, 《3인 1당》, 《경축대회》를 《성황당》식 연극으로 훌륭히 형상하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5대혁명연극은 당의 연극혁명방침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며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연극예술인들의 헌신적노력이 가져 온 자랑찬 열매입니다.

우리는 연극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지난 날의 낡은 연극에 종지부를 찍고 주체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황당》식 연극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성황당》식연극은 내용과 형식에서 주체의 인간학의 요구를 철저히 구현하고 있을 뿐아니라 창조체계와 방법에서 주체의 창작원리에 튼튼히 의거하고 있는 새형의 연극입니다.

《성황당》식연극은 높은 사상성과 예술성으로 하여 세상에 나오자마자 우리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세계 인민들속에서도 열렬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한결같이 좋아 하는 《성황당》식 연극을 가지게 된것은 우리 인민의 긍지이며 자랑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성황당》을 무대에 다시 올린 때로부터 시작된 연극혁명과정에 주체적연극예술에 관한 사상과 리론이 완성되였으며 주체적인 연극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이 확립되게 되였습니다.

주체적연극리론은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연극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강령적지침입니다. 주체적연극리론이 체계정연하게 선것은 연극혁명에서 이룩된 가장 주되는 성과입니다.

우리는 연극혁명과정에 이룩된 주체적연극리론을 옹호고수하고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하여 이미 높은 경지에 오른 우리의 연극예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것입니다.

 

1. 연극혁명

 

1) 연극혁명은 시대와 예술발전의 요구

 

연극혁명은 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혁명적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연극혁명을 하는것은 시대의 요구와 연극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학과 예술은 시대의 산물이며 시대가 발전하는데 따라 끊임없이 변화발전합니다. 이것은 문학예술발전의 합법칙적과정입니다. 지난 날 억압 받고 천대 받던 인민대중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한 력사의 새 시대는 그들이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며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해 나가는데 적극 이바지하는 새로운 문학예술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연극혁명을 하기전까지만 하여도 연극예술은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미처 따라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지 않는 연극예술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대담하게 변혁할것을 요구합니다.

연극은 오랜 력사를 가진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인류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발전하여 온 연극은 이러저러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끊임 없는 발전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이러한 연극이 현대에 와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였습니다. 연극예술이 현대에 와서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것은 영화가 널리 보급되고 텔레비죤이 출현한 사정과도 관련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조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극예술이 현대에 와서 침체상태에 빠지게 된것은 그 자체에 원인이 있습니다.

시대는 발전하였는데 연극예술은 여전히 종래의 낡은 틀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착취사회의 연극은 거의다 봉건제왕의 궁중생활이나 귀족의 애정비사가 아니면 부르죠아지의 부화방탕한 생활을 보여 주는 작품이였습니다. 물론 지난 날의 연극가운데는 인간생활에서 고상하고 아름다운것을 찬미하고 사회악과 불의를 고발하며 생활의 진리를 밝혀 주는것이 더러 있기는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극작품도 이러저러한 사회력사적제약성과 작가자신의 세계관의 제한성으로 하여 모순에 찬 착취사회의 본질을 예리하게 해부하여 보여 주지 못하였고 인민이 나아갈 앞길을 옳바로 밝혀 주지 못하였습니다. 연극예술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상업극장이 흥행하기 시작하여 저마다 돈벌이에 열을 올리면서부터 더욱더 상품화되고 반동화되였습니다. 썩어 빠진 부르죠아연극예술을 반대하여 대두한것이 로동계급의 연극이였습니다.

선행한 로동계급의 연극은 그 내용에서 혁명적이였습니다. 선행한 로동계급의 연극은 착취제도를 뒤집어 엎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혁명투쟁과 창조적생활을 기본으로 하여 그렸습니다. 이것은 연극예술을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게 발전시키는데서 하나의 커다란 변혁으로 되였습니다.

그러나 선행한 로동계급의 연극도 주체시대의 요구에 비추어 볼 때 적지 않은 제한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 인민대중은 연극에 세계의 주인으로 등장한 자주적인 새 인간전형을 내세우고 자연과 사회와 인간을 사람의 본성적요구에 맞게 개조해 나가는 자기들의 창조적생활을 그릴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행한 로동계급의 연극은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인으로 극의 중심에 내세우기는 하였으나 자주성을 위한 그들의 보람찬 투쟁과 생활을 그리지 못하였으며 자주적인 인간의 운명문제에 똑똑한 해답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더우기 선행한 로동계급의 연극은 그 형식이 종래연극의 낡은 틀에서 벗어 나지 못하였습니다.

해방후 우리 나라의 연극예술도 사상적내용은 혁명적이였으나 연출과 연기체계, 무대형식과 형상방법에서는 낡은 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연극이 우리 인민의 정서와 미감에 맞을리 없었습니다. 인민의 정서와 미감에 맞지 않는 연극은 인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인민으로부터 점점 멀어 지기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한때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연극은 낡고 뒤떨어 졌으니 필요 없다고 하면서 연극단을 그대로 둬두겠는가 하는 문제까지 론의되였습니다. 연극예술이 시대에 뒤떨어 졌다고 하여 연극자체를 무시해 버려서는 안됩니다.

연극은 오랜 력사를 가진 예술의 한 형태로서 사람들을 사상정서적으로 교양하는 훌륭한 수단입니다. 연극만큼 사람들의 생활에 가깝고 사람들에게 친숙해 진 예술은 없습니다. 우리 인민은 연극을 아주 좋아 합니다. 인민이 좋아 하는 연극을 장려하고 더 발전시켜야지 버릴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영화나 텔레비죤이 널리 보급되고 있기때문에 연극을 창조하여야 관중을 끌기 곤난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연극에는 영화나 텔레비죤으로는 대신할수 없는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영화예술이 발전되고 텔레비죤이 널리 보급되였다 하여도 그것이 결코 연극을 대신할수는 없습니다. 연극은 극장에서 배우와 직접 교감하면서 보기때문에 실생활을 보는것처럼 실감이 납니다. 그렇지만 텔레비죤으로 내보내는 연극은 연극맛이 나지 않고 그 정서적감화력도 떨어 지게 됩니다. 연극은 무대예술인것만큼 극장에 가서 보아야 제맛이 나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연극《성황당》을 우리 식으로 새롭게 재현하여 무대에 올린 다음 일부 일군들이 빨리 텔레비죤으로 내보내여 연극혁명의 성과를 널리 선전하자고 할 때에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영화나 텔레비죤이 인민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여 연극자체를 버리려 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연극혁명을 함으로써 침체상태에 빠진 연극을 구원하고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였습니다.

연극혁명을 하는것은 문학예술혁명을 완성하기 위하여 나서는 필수적요구였습니다.

문학예술혁명은 어느한 예술부문이나 한두가지의 문학예술형태를 변혁하는것만으로 완성되는것이 아닙니다. 문학예술혁명은 문학을 비롯하여 영화, 연극, 가극, 음악, 무용, 미술, 교예와 같은 문학예술의 모든 부문에서 온갖 낡은것을 버리고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새로운것을 창조함으로써만 성과적으로 수행될수 있습니다.

우리 당은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문학예술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분석한데 기초하여 대중교양의 가장 힘 있는 수단인 영화예술부문에서부터 먼저 혁명을 일으키도록 하였으며 련이어 낡은 틀이 제일 많이 남아 있던 가극예술부문에서 혁명을 일으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영화예술부문과 가극예술부문에서는 1960년대말과 1970년대초에 불후의 고전적명작《피바다》와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 파는 처녀》를 영화와 가극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하여 영화혁명, 가극혁명을 빛나게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영화혁명과 가극혁명에서 이룩된 성과와 경험에 기초하여 연극예술부문에서도 전환을 가져 와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1970년대초에 연극혁명을 할데 대한 방침을 내놓고 연극혁명을 본격적으로 벌렸습니다.

연극혁명을 힘 있게 다그친 결과 전반적인 문학예술혁명을 완성하는데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 나게 되였습니다.

연극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여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연극의 훌륭한 본보기를 창조함으로써 우리 인민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 이바지하는것은 물론, 세계연극계에도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게 되였으며 앞으로 북남문화교류가 실현되거나 조국통일 이룩되면 남조선에 나가 종래의 낡은 연극만을 보아 오던 남조선인민들에게 우리의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연극을 보여 줄수 있게 되였습니다.

 

2)우리 식의 새 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

 

우리 식의 새 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연극혁명은 결코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연극혁명은 내용과 형식, 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의 모든 령역에서 낡은것을 쓸어 버리고 새것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이였던것만큼 그 과정에는 처음부터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많이 제기되였습니다. 연극혁명은 우리가 처음하는 일이였기때문에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수도 없었고 그 어떤 기성문예리론에서 참고할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체적립장에 튼튼히 서서 연극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독자적인 신념과 판단에 기초하여 우리 식대로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하였습니다.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은 당의 령도가 있는 한 못해낼 일이 없다는 필승의 신념을 안고 부닥치는 난관을 이겨 내면서 자그마한 동요도 없이 연극혁명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5대혁명연극을 창조하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연극혁명은 연극예술부문에서 부르죠아사상, 봉건사상, 수정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동적이며 이색적인 사상을 쓸어 버리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속에서 수행되였습니다.

우리가 연극혁명을 시작하던 첫 시기만 하여도 연극예술부문에는 부르죠아사상, 봉건사상, 수정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 사상잔재가 적지 않게 남아 있었습니다. 연극예술부문의 일부 작가, 예술인들이 연극에 대한 낡은 사고방식과 방법에 매달리다보니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이 철저히 구현되고 정책적대가 똑바로 선 연극작품을 많이 내놓지 못하였습니다. 연극예술부문에서는 특히 서양연극에 대한 사대주의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연극예술인들이 연극이라고 하면 의례히 서양식으로 되여야 하는것으로 생각하면서 다른 나라 연극을 숭상하고 있었습니다.

부르죠아사상, 봉건사상, 수정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 사상잔재는 작가, 예술인들의 연극에 대한 관점과 립장에서만 아니라 창작과정과 생활과정에서도 이모저모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지난 날 국립연극단안에는 분파적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자기 연기가 기형화되여 가는것도 모르고 자기만이 연기를 잘하는것처럼 생각하면서 우쭐렁거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부 작가, 예술인들속에서 선배요, 후배요 하면서 도관계를 만들어 놓고 서로 결함을 싸고 며 춰주는것과 같은 무원칙한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의 머리속에 남아 있는 부르죠아사상, 봉건사상, 수정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와 같은 낡은 사상잔재를 뿌리 뽑지 않고서는 좋은 연극을 창조할수 없었습니다.

연극혁명의 직접적담당자는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이며 연극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는 힘도 바로 그들자신에게 있습니다. 다른 모든 혁명투쟁이 그러하듯이 연극혁명도 그 직접적담당자인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이 주인다운 태도와 창조적립장을 가지고 그들스스로가 연극혁명의 필연성을 옳게 인식하고 높은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을 발휘할 때에만 성과적으로 수행될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의 머리속에 남아 있는 낡은 사상잔재를 뿌리 뽑고 연극창조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우고 그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기 위한 투쟁과 밀접히 결부하여 벌렸습니다.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데서 기본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사상과 주체적문예리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것입니다. 주체사상은 혁명과 건설의 가장 정확한 지도사상이며 우리의 모든 활동에서 튼튼히 틀어 쥐고 나가야 할 확고부동한 지침입니다. 당의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문학예술 건설과 창조의 옳바른 길을 밝혀 주는 등대이며 모든 창작실천적문제에 전면적인 해답을 주는 옳바른 사상과 리론입니다. 우리는 작가, 예술인들을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문예방침으로 무장시키는것을 첫째가는 사업으로 힘 있게 밀고 나갔습니다. 1972년 11월초에 있은 국립연극단 작가, 예술인들의 회의는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고 그들이 당의 문예방침을 자기의 확고한 신념으로 삼고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습니다.

작가, 예술인들을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주체적문예리론으로 무장시키는 사업은 꾸준한 교양과 함께 새로운 혁명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실천투쟁속에서만 성과적으로 수행될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연극혁명을 준비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문예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문예방침, 특히는 영화혁명, 가극혁명과정에 새롭게 밝힌 당의 독창적인 문예리론과 연극혁명방침으로 작가, 예술인들을 무장시키고 그것을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창작과정을 작가, 예술인들의 혁명화, 로동계급화 과정으로 되게 할데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더욱 힘 있게 밀고 나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투쟁과정에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히 서고 낡은 사상잔재가 기본적으로 극복되였으며 혁명화, 로동계급화 과정이 더욱 다그쳐 지고 창작과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가 철저히 서게 되였습니다.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5대혁명연극은 작가, 예술인들의 머리속에 남아 있는 부르죠아사상, 봉건사상, 수정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비롯한 온갖 낡은 사상잔재를 뿌리 빼고 그들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며 연극창작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과정에 이룩된 고귀한 결실입니다.

경험은 다른 모든 사업과 마찬가지로 연극혁명도 작가, 예술인들이 낡은 사상잔재를 버리고 주체의 미학관으로 튼튼히 무장하며 자신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여야만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다는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연극혁명은 연극창조사업에서 온갖 낡은 틀을 마스고 새로운 혁명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이였습니다.

연극에서 낡은 틀은 그 뿌리가 깊고 폭이 넓었습니다. 연극의 력사가 오랜것만큼 낡은 틀도 오랜 세월 내려 오면서 굳어 질대로 굳어 져 있었고 그 영향은 희곡이나 연출, 무대미술과 같은 연극예술의 모든 분야에 다 미치고 있었습니다.

연극혁명을 시작할 때 우리 나라 연극에도 낡은 틀은 이모저모에서 나타났습니다. 적지 않은 극작가들은 희곡창작에서 인간학적요구를 구현하려는것보다도 그 어떤 극적사건에 매력을 가지고 사건극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갈등이 없이도 얼마든지 보여 줄수 있는 사회주의현실을 취급한 작품에서까지 갈등을 인위적으로 설정해 놓고 극을 위한 극을 꾸며 내고 있었습니다. 희곡자체가 이런 식으로 되다보니 연극이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절실하게 해답을 기다리는 의의 있는 문제를 들고 나올수도 없었고 인간생활의 깊은 세계를 보여 줄수도 없었으며 사람들에게 생활의 진리를 깨우쳐 주는 인식교양적역할도 원만히 할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연극혁명을 희곡에서 낡은 틀을 없애기 위한 투쟁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희곡에서부터 낡은 틀을 없애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연극을 우리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재현하도록 하였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은 주체의 인간학의 참다운 본보기입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은 얼핏 보면 미신타파를 주제로 한 작품 같지만 단순히 미신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사상만 강조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은 《하느님》이나 《신령》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것이 아니라 인간자신에 의하여 개척되고 결정되며 따라서 세상에서 믿을것이란 자기자신의 힘밖에 없다는 자주적인간의 운명문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혁명연극 《딸에게서 온 편지》는 단순히 배워야 한다는 사상만 강조하는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자주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지킬수 없으며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창조적역할도 다할수 없다는 사상을 힘 있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연극은 대사를 쓰는데서도 주체의 인간학적요구를 철저히 구현하고 있습니다. 연극혁명을 하기전에 창작된 우리 연극의 대사를 보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보다도 인위적으로 꾸며 낸 무대적인 말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처럼 생활적이면서도 철학적깊이가 있고 예술적으로 세련된 대사를 가지고 있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무대에 올려 작가들이 그 산모범을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희곡을 지난 날의 사건 위주의 문학으로부터 인간위주의 문학으로, 주체의 인간학의 요구를 구현한 참다운 문학으로 되게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연극혁명에서 이룩한 커다란 성과의 하나가 있습니다.

연극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은 연출과 연기에서 낡은 틀을 마스고 우리 식의 새로운 연출체계와 연기체계를 세우기 위한 투쟁과정이였습니다.

연극혁명을 시작하던 첫 시기만 하여도 일부 연극연출가들은 연출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집단안에 가부장적인 도제관계를 만들어 놓고 독단과 전횡을 부리던 낡은 잔재를 말끔히 가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출가들이 연출제일주의의 낡은 관념에서 벗어 나지 못하다보니 집단안에 건전한 창작기풍과 고상한 공산주의적창조륜리가 설수 없었으며 연출형상에서도 참다운 인간학의 요구가 구현될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연극예술부문에서 연출가가 창작단의 사령관으로서의 역할을 높이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가부장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연출체계를 마스고 예술창조사업과 사상교양사업을 다같이 틀어 쥐고 나가는 우리 식의 새로운 연출체계를 세우는데 깊은 관심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투쟁과정에 연극창조사업에서 연출가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그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졌으며 연출분야에서 우리 식의 새로운 형상원칙과 형상방법이 창조되였습니다.

배우연기에서 낡은 틀을 마스고 우리 식의 새로운 배우연기체계를 세우는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극에서 배우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것만큼 우리는 영화예술과 마찬가지로 연극예술을 배우의 예술이라고 규정하고 배우는 연극의 얼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극혁명을 시작하던 첫 시기만 하여도 배우연기체계와 방법에서는 낡은 틀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배우가 연기하는것을 보면 틀이 있고 과정이 심하였으며 가식과 기형적인것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배우의 연기가 신파적이였습니다. 미리 만들어 놓은 틀에 성격과 생활을 틀어 맞추고 연기를 과장하거나 기형화하는 형식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신파연기는 결국 연기에서 생활을 외곡하고 인간을 기형화하는데로 굴러 떨어 지게 합니다. 이러한 낡은 틀을 마스지 않고서는 연극의 운명문제를 풀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도식과 과장, 가식과 기형화를 조장하는 형식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인 낡은 연기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투쟁에 불을 걸고 사상전을 힘 있게 벌렸습니다.

이와 함께 배우가 무대에 나와서 실제인물이 활동하는것처럼 연기를 할데 대한 방침을 내놓고 그것을 관철하도록 하였으며 《유기적자연의 잠재의식적인 창조》요 뭐요 하면서 배우의 사상의식에 기초한 의식적인 연기 창조를 거부하는 그릇된 리론에 타격을 주고 이미 《영화예술론》에서 제시한 인물형상창조에서 배우의 세계관이 결정적역할을 한다는 리론이 철저히 구현되도록 하였습니다. 연극예술부문에서는 이러한 투쟁과정에 배우의 연기가 현실에서 실제인물이 살아 숨 쉬고 활동하는것처럼 자연스럽고 생동하고 진실하게 되였으며 배우의 세계관에 기초한 우리 식의 새로운 연기체계가 확고히 서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연극혁명을 하면서 지난 날의 낡은 무대미술의 틀을 마스고 무대를 흐름식립체무대로 전환시켰으며 음악을 받아 들여 인물의 내면세계를 더 잘 살리고 극발전을 힘 있게 추동하도록 하였습니다.

연극혁명을 통하여 희곡과 연출, 연기, 미술, 음악을 비롯한 연극창작의 모든 령역에서 오래동안 내려 오던 낡은 창조체계와 방법을 대담하게 마스고 주체시대의 요구에 맞는 우리 식의 새로운 창조체계와 창조방법이 서게 되였으며 우리 연극예술의 면모가 근본적으로 달라 지게 되였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연극혁명을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은것은 새로운 연극리론과 떼여 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화혁명, 가극혁명 과정에 새롭게 내놓은 문예리론을 연극혁명에 구현하여 연극창조사업에서 제기되는 절실한 리론실천적문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에 종래의 연극리론과 전혀 다른 우리 식의 새로운 연극리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문예사상에 기초하여 새롭게 내놓은 당의 연극창조에 관한 리론은 불후의 고전적명작 《성황당》을 비롯한 5대혁명연극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재현하는 과정에 철저히 구현되였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은 우리 당이 내놓은 혁명적연극창조에 관한 주체적문예리론과 방침이 빛나게 구현된 첫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성황당》을 재현하여 무대에 올려 놓음으로써 지난 날의 연극과 전혀 다른 우리 식의 새로운 연극을 가지게 되였으며 력사적으로 내려 오던 종래의 낡은 연극에 종지부를 찍고 연극의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우리의 연극은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예술로 발전하게 되였으며 우리 시대 로동계급의 연극예술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는데서 전환이 일어 나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응당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연극예술부문 작가, 예술인들은 연극혁명에서 이미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성황당》식연극에 구현된 우리 식의 창조리론을 확고히 고수하고 더욱 빛내여 나가야 할것입니다.

 

3) 《성황당》식 연극은 새형의 연극

 

《성황당》식 연극은 주체적문예사상에 기초하여 성과적으로 수행된 연극혁명의 고귀한 결실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을 창조한것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연극예술발전에서 력사적인 전환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성과로 됩니다. 《성황당》식연극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연극예술을 어느 길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가 하는것을 실천적으로 가르쳐 주는 본보기로 됩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인민대중을 내세우고 인민대중에게 복무하는 공산주의적인간학의 요구를 철저히 구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연극의 사회적성격과 가치를 평가하는 기본척도는 인민대중에 대한 태도에 있습니다. 인민대중을 어느 지위에 내세우며 그들의 자주적요구와 지향을 어떻게 반영하고 그들에게 삶의 길을 얼마나 옳바르게 밝혀 주며 그들의 비위와 정서에 맞게 형식을 갖추는가 못갖추는가에 따라 연극의 사회적성격과 가치가 규정되게 됩니다. 극장무대에 로동계급의 연극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인민대중의 생활과 지향을 반영한 진보적인 연극이 있었지만 그런 연극은 력사적 밑 계급적제한성으로 하여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을 옳바로 그릴수 없었습니다. 그런 연극에서는 인민대중을 그리는 경우에도 그들을 한갖 력사의 대상으로, 착취와 압박속에서 시달리는 수난자로 형상하였을뿐입니다. 그러나 로동계급의 혁명적진출과 함께 출현한 사회주의적연극은 로동계급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지금까지 력사의 대상으로, 수난자로, 취급되여 온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인으로, 힘 있는 존재로 내세우고 그들의 혁명적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였으며 그들을 혁명투쟁에로 불러 일으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이것은 의심할바없이 로동계급의 연극예술을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사회주의적연극이 거둔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연극이 진실로 시대의 요구에 맞게 되려면 혁명과 건설에서 인민대중이 차지하는 주인으로서의 지위와 그들이 노는 결정적역할을 응당한 높이에서 그려야 합니다. 이와 함께 연극은 사회력사적운동이 인민대중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운동이며 혁명과 건설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진리를 똑똑히 밝혀야 합니다. 바로 《성황당》식 연극은 이 위대한 진리를 예술적으로 깊이 있게 밝히고 있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은 풍자극이지만 지난 날의 풍자극과는 달리 부정인물과 함께 긍정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사이의 투쟁속에서 긍정인물이 낡은 사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 나 세상에서 가장 힘 있고 존엄 있는 존재로,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진리를 체득한 자주적인 인간으로 성장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초점을 었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의 혁신적인 성과는 《하느님》이나 《귀신》, 부처 같은 그 어떤 신적인 존재가 세계의 주인이며 지배자인것이 아니라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가진 인민대중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며 유일한 지배자이라는 주체의 진리를 예술적으로 깊이 있게 밝혀 낸데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이 인민대중을 내세운다고 하여 모든 연극에서 반드시 로동자, 농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야 한다는것은 아닙니다. 연극에서 인민대중을 내세운다는것은 혁명과 건설에서 인민대중이 차지하는 주인으로서의 지위와 그들이 노는 결정적인 역할을 밝혀 낸다는것을 말합니다. 비록 로동자, 농민을 형상의 중심에 내세우지 않아도 인민대중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밝혀 지면 됩니다.

혁명연극《혈분만국회》의 주인공 리준은 량반출신의 관리입니다. 그러나 연극은 력사적사실을 통하여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며 오직 자기 인민의 힘을 믿고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야만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을수 있다는 진리를 뚜렷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혁명과 건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진리를 밝혔다는데 바로 《성황당》식 연극의 혁신적의의가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형식에서도 주체사상의 요구를 구현한 진실로 인민적인 연극입니다.

연극이 인민대중에게 참답게 복무하려면 그 형식도 인민대중의 요구에 맞게 되여야 합니다. 바로 《성황당》식 연극은 우리 시대 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형식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하였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의 형식은 진실로 생활적인 형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생활은 연극에 내용을 주며 내용은 그에 맞는 형식을 요구합니다. 참다운 연극의 특징은 내용과 형식의 완벽한 통일에 있습니다. 생활의 요구에 맞지 않는 연극의 형식은 아무리 매력이 있다고 하여도 좋다고 볼수 없습니다. 생활의 요구에 맞는 예술형식이라야 좋은 예술형식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황당》식 연극을 볼 때 현실에서 벌어 지는 생활을 보는것처럼 진실하게 느끼게 되는것도 그 형식이 생활의 요구에 맞기 때문입니다. 생활을 진실하게 보여 주는 형식이 다름아닌 《성황당》식 연극의 형식입니다.

《성황당》식 연극형식의 특징은 구성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고정격식화된 구성의 틀에 생활내용을 맞출것이 아니라 생활내용에 따라 장면을 설정하고 총체적인 구성을 세워야 한다는데로부터 새로운 다장면구성형식을 받아 들였습니다. 다장면구성형식은 극이 발전하는데 따라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론리에 맞게 한 장면안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자주 변화시켜 화폭을 다양하고 폭 넓게 펼쳐 나갈수 있게 하고 생활의 흐름도 중단함이 없이 그대로 재현할수 있게 합니다. 다장면구형식은 생활을 자연스럽게 펼쳐 나가면서도 간결하게 집약하고 조화롭게 통일시켜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서 많은 생활을 보여 줄수 있게 합니다.

《성황당》식 연극형식의 특징은 무대미술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의 무대미술은 새로운 흐름식립체무대미술입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은 극발전에 따라 장치와 배경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생활을 진실하고 생동하게, 폭 넓고 깊이 있게 보여 줄수 있게 합니다. 실제로 혁명연극 《성황당》에서 무대미술은 검은 구름을 헤가르고 눈 부신 해빛을 뿌리며 제명이 솟아 오르는 서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선마을의 전경과 강냉이밭이 있는 마을어구, 복순의 집과 지주집뜨락, 마을길과 구장집마당, 물레방아간과 성황당에서 이르기까지의 매 장면을 끊임 없는 흐름속에서 마치 영화화면처럼 보여 주고 있으며 련속 흘러 가는 장치와 배경의 다양한 변화를 통하여 생활을 여러모로 볼수 있게 합니다. 《성황당》식 연극을 보면서 현실생활을 직접 대하는것과 같은 진실감을 느끼게 되는것은 무대미술의 이러한 역할과도 관련되여 있습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은 인물이 살고 있는 사회력사적조건과 자연지리적조건, 시대의 분위기와 민족적생활풍습을 보여 주는것과 함께 인물의 내면세계도 드러내며 그가 성장발전하는 과정도 조형적으로 안받침하여 줍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은 연극의 감정선을 끊임없이 일관시키면서 관중을 극세계에로 깊이 끌어 들이고 그들의 정서적감흥을 높일수 있게 합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는 암전하거나 막을 닫는 일이 없 매 장면을 흐름식으로 전환시켜 이야기를 련이어 펼쳐 나가기때문에 감정선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수 있으며 관중의 정서적감흥을 계속 고조시켜 나갈수 있습니다.

음악을 받아 들인것도 《성황당》식 연극형식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 음악은 떼여 낼수 없는 필수적인 구성요소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는 력사적으로 내려 오면서 형성된 우리 인민의 민족적특성과 우리 시대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음악을 받아 들였으며 그것을 사상적내용을 돋구고 예술적형상을 살리는데 적극 리용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 음악은 대사와 함께 중요한 형상수단의 하나로 되고 있습니다. 음악은 인물의 다양한 사상감정을 드러내며 극을 떠밀어 주고 배우연기를 자연스럽게 하며 장면을 정서적으로 전환시키는데 적극 작용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음악을 받아 들임으로써 정서가 넘쳐 흐르게 되고 감화력이 더욱 높아 지게 되였으며 무대종합예술로서의 면모도 더 잘 갖추게 되였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는 형식을 이루는 모든 요소의 형상적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리용하여 극적형상을 살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다장면구성형식과 흐름식립체무대미술, 특색 있는 음악은 다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의 성격창조에 맞물려 들어 가면서 하나로 조화되여 전일적인 《성황당》식 연극의 형식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의 형식은 인간을 진실하게 그리고 생활을 생동하게 보여 주며 우리 시대 인민의 미감에 맞는 새롭고 독창적인 형식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연극이 세상에 나온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성황당》식 연극처럼 시대와 생활이 뗄수 없이 밀착되고 인민대중의 요구가 투철하게 반영된 연극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새 시대, 새 생활의 요구에 맞게 내용과 형식에서 새로운 면모를 갖춘 새형의 연극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우리 인민의 사상문화생활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건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오늘 우리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으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추동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새 시대의 요구와 우리 인민의 지향에 맞는 높은 사상예술성으로 하여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로 키우며 사회를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는데서 위력한 사상적무기로 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우리 시대 인민들에게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체의 관점을 안겨 주고 있으며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살며 일하며 투쟁하는 참된 삶의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황당》식 연극은 사람들이 온갖 낡은 사상의 구속에서 벗어 나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 나가도록 교양하는데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가르쳐 주는 생활의 교과서로, 그들을 새 사회, 새 생활창조에로 불러 일으키는 투쟁의 무기로 되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의 출현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피바다》식 가극과 함께 새로운 리정표로 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문학예술건설과정은 문학예술자체를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로동계급의 모양대로 개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문학예술혁명은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영화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문학예술혁명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다그쳐 나가는데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집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내용과 형식에서 우리 시대의 문학예술을 갖추어야 할 참다운 면모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의 성격과 사명, 그로부터 흘러 나오는 내용과 형식의 본질적인 특성을 뚜렷이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작가, 예술인들은 실천적본보기를 가지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건설을 성과적으로 해나갈수 있게 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성황당》식 연극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발전에 기여한 력사적공헌이 있습니다.

 

4) 항일혁명연극은 우리 연극예술의 력사적뿌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성황당》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것으로부터 연극혁명을 시작한것은 잘한 일입니다.

우리의 연극혁명은 본질에 있어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된 혁명적연극전통을 계승하여 주체사상이 철저히 구현된 공산주의 연극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성스러운 사업입니다. 참다운 공산주의연극예술, 주체의 연극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은 그 억센 력사적뿌리이며 만년초석인 혁명적연극전통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은 력사의 자주적인 주체, 혁명의 주체가 형성되고 강화되는 과정에 이루어 지며 발전합니다. 혁명의 주체는 새로운 문학예술,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을 요구합니다. 혁명의 주체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문학예술을 가지려는 인민대중의 요구는 오직 수령에 의하여 빛나게 실현됩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을 건설하는 사업도 다른 모든 혁명사업과 마찬가지로 수령에 의하여 령도됩니다. 수령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건설의 옳바른 길을 밝혀 주는 혁명적인 문예사상을 창시하며 로동계급의 문학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활동을 현명하게 이끌어 나갑니다. 수령은 그 과정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건설에 관한 사상리론적기초와 방법론적기초를 마련하며 고귀한 업적과 풍부한 경험을 쌓아 올립니다. 수령에 의하여 이루어 지는 로동계급의 문학예술의 혁명적재부가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입니다. 이것은 지나온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발전력사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맑스는 로동계급이 력사의 대상으로부터 주인으로 등장하던 시기에 인류문화의 발전력사를 유물사관에 기초하여 분석하면서 봉건적이며 부르죠아적인 문학예술의 반인민적이며 반사실주의적인 본질을 폭로비판하고 진보적이며 인민적인 사실주의문학예술을 옹호하였으며 로동계급의 본성에 맞는 문학예술을 창조할데 대한 사상을 내놓았습니다.

레닌은 제국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력사적전환기에 세계문학예술발전력사를 고찰하면서 지난 날의 모든 진보적문학예술을 계승한 기초우에서 새로운 사회주의적문학예술을 건설할데 대한 사상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진보적작가, 예술인들을 이끌었습니다.

이와 같이 선행한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력사적전환기에 혁명의 수령에 의하여 이룩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력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인민대중이 자기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주체시대의 요구와 우리  나라와 세계 문학예술발전력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이바지하는 새형의 혁명적문학예술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 주는 주체적문예사상을 창시하시고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혁명투쟁에로 불러 일으키는 수많은 혁명적문학예술작품을 몸소 창작하심으로써 주체적문학예술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룩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각성시키고 혁명투쟁에로 불러 일으키는데서 연극예술이 노는 역할을 꿰뚫어 보시고 몸소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 파는 처녀》와 같은 혁명가극과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3인 1당》, 《혈분만국회》, 《성황당》, 《딸에게서 온 편지》, 《지주와 머슴군》, 《8월추석》과 같은 혁명연극들을 창작하시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의 그 어려운 나날에도 《비파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경축대회》, 《아버지는 이겼다》, 《유언을 받들고》, 《기민탄식》, 《승냥이》와 같은 혁명연극을 창작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의 전기간 유격대원들의 창작활동을 세심히 지도하시여 수많은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연극을 창작공연하도록 하시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유격대에는 상설적인 극장도 없었고 전문적인 연극단체나 극작가도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항일유격대원들은 집체적으로 연극을 만들어 가지고 가는 곳마다에서 공연하였습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천막으로 풍을 치고 통나무를 찍어다 가설무대를 만들어 놓고 연출가가 되고 배우가 되여 공연활동을 활발히 벌렸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지금도 무송일대에서의 전투를 끝마치시고 만강에서 혁명연극《피바다》와 《한 자위단원의 운명》, 《경축대회》를 비롯한 연극과 음악무용작품을 가지고 공연하던 때와 륙과송전투가 끝난 다음 항일유격대를 따라 식량을 지고 수백명의 로동자들을 위하여 한주일동안이나 연극공연과 가극공연도 하고 선동강연도 하던 때를 감회깊이 회상하군 하십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혁명적문학예술활동은 유격구와 인민혁명군안에서뿐아니라 반유격구와 적통치구역에서도 활발히 진행되였으며 온성을 비롯한 국내 여러 지역에서도 진행되였습니다.

혁명적연극예술활동은 항일혁명투쟁의 전기간 줄기차게 진행되여 항일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에로 힘 있게 불러 일으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된 연극은 주제사상적내용이 폭 넓고 깊이가 있을뿐아니라 그 형식도 매우 다양합니다.

항일혁명연극은 항일혁명가요와 함께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서 기본을 이룹니다.

지금 사람들이 우리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에서 혁명연극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때문에 기본으로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물론 혁명연극이 항일혁명문학예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것만 사실이지만 량적개념에서만 보고 기본이다 아니다라고 규정할수는 없습니다.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에서 어느 문학예술형태 기본을 이루는가 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량적개념보다도 질적개념의 견지에서 보아야 합니다.

로동계급의 수령에 의하여 혁명의 길이 처음으로 개척되던 시기에 비록 한두편의 혁명적문학예술작품이 창작되였다 하여도 거기에 수령의 혁명사상이 구현되여 있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이 본 받고 이어 받아야 할 우수한 사상예술적특질이 체현되여 있는 작품이라면 그것은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이루는 작품으로 보아야 합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이 다 그러한바와 같이 항일혁명연극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문예사상을 철저히 구현하고 있으며 우리 문학예술이 대를 이어 계승하여야 할 창작원칙과 방도를 전면적으로 체현하고 있습니다. 항일혁명연극은 형태상으로 볼 때 연극예술이지만 거기에는 극작품창작에서뿐아니라 모든 종류의 문학예술작품창작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방도가 다 밝혀 져 있습니다. 항일혁명연극에는 또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보급된 모든 형태의 문학예술작품의 우수한 사상예술적특징이 집약되여 있고 그 빛나는 성과가 집대성되여 있습니다. 특히 불후 고전적명작 혁명연극은 항일혁명투쟁시기 이룩 문학예술을 대표하는 기념비적작품으로서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의 핵을 이룹니다. 그런 의미에서 항일혁명연극이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에서 기본을 이룬다고 말하는것입니다.

항일혁명연극의 특성을 옳게 리해하자면 항일혁명문학예술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항일혁명연극의 특성이자 항일혁명문학예술의 특성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문예사상을 확고한 지도적지침으로 삼고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을 창작에 철저히 구현하고 있는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문학예술입니다.

주체적문예사상은 사람위주의 철학적세계관에 기초한 새로운 문예학설로서 문학예술건설과 창조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인민대중을 위주로 보고 대하며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원칙에서 풀어 나가는 창작의 근본원리를 밝혀 줍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주체적문예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삼고 인민대중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우며 자주성을 실현하고 정치적생명을 빛내이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을 깊이 있게 그려 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발전과 인간의 운명개척에서 주인의 지위를 지키고 주인의 역할을 다하도록 깨우쳐 주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조선혁명과 조선인민에게 복무하는것을 근본사명으로 삼고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싸운 공산주의자들과 인민대중의 전형을 창조함으로써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혁명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항일혁명문학예술의 주체적성격이 있고 항일혁명문학예술이 우리 나라 문학예술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로 되는 근거가 있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당성, 로동계급성의 원칙을 옹호하고 뚜렷이 구현한 문학예술입니다.

항일혁명투쟁의 가장 준엄하고 간고한 환경속에서 태여난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처음부터 혁명의 리익,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는것을 창작의 근본원칙으로 삼고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 없는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 원쑤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정신과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정신을 높이 발양하도록 힘 있게 고무하였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에서는 우리 혁명의 요구와 리익에 배치되는 그 어떤 반혁명적요소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고 제국주의와 착취계급에 대한 타협을 설교하는 자그마한 기회주의적요소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인민성, 통속성을 철저히 구현한 문학예술입니다.

문학예술작품의 인민성, 통속성은 그 가치를 규정하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입니다. 문학예술작품이 비록 의의 있고   절실한 인간문제를 제기하였다 하여도 누구에게나 쉽게 리해되고 친근감을 주는 통속적인 예술형식을 통하여 밝혀 주지 않으면 별로 의의가 없게 됩니다. 문학예술작품은 심오한 사상을 누구에게나 쉽게 리해되는 인민적이며 통속적인 예술형식을 통하여 깊이 있게 밝혀 주어야 사람들의 심장을 울릴수 있고 참다운 가치를 가질수 있습니다. 항일혁명연극은 말할것도 없고 혁명가극과 혁명가요도 다 소박하고 간결하며 통속적인 예술형식을 통하여 자주적인간의 운명개척에서 나서는 근본문제에 심오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높은 사상성과 고상한 예술성이 훌륭히 결합된 문학예술입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당시 우리 인민의 운명개척에서 사활적의의를 가지는 근본문제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국을 광복하며 조국땅우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 싸우는 혁명가들과 인민들의 투쟁모습을 통하여 깊이 있게 밝혔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의 높은 사상성은 고상한 예술성에 의하여 안받침되여 있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민족적 및 계급적해방을 위한 투쟁내용을 우리 인민의 정서와 구미에 맞는 민족적형식에 담아 진실하고 생동하게 형상하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창작된 혁명연극이나 혁명가극이 커다란 견인력을 가지고 관중을 극세계에로 이끌어 가면서 그들의 심금을 울리는것은 진실하고 생동한 형상으로 생활의 본질과 투쟁의 진리를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일혁명가요가 창작된지 반세기가 넘는 오늘에 와서도 깊은 감동을 주면서 친근하게 안겨 오는것은 혁명적내용과 함께 우리 인민이 좋아 하는 민족적선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일혁명가요만큼 민족적선률이 풍부한 노래는 없을것입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이야말로 높은 사상성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예술성으로 안받침되여 있는 참다운 혁명적문학예술입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의 특성의 다른 하나는 창작에서 전투성, 기동성, 집체성이 확고히 보장된것입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그 어떤 안온한 서재나 책상머리에서 창작된것이 아닙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간고한 행군길과 가렬한 전투의 휴식짬에 가사를 쓰고 작곡하여야 했고 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대본을 쓰고 연기훈련도 하여야 하였습니다. 항일유격대원들에게 있어서 문학예술창조사업은 말그대로 하나의 전투였습니다. 그들은 상을 초월하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왕성한 기백과 창작적열정에 넘쳐 언제나 창작과 공연을 기동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시나 마을, 목재소 같은데 둥지를 틀고 있는 적들을 습격소탕한 다음 그자리에서 예술공연을 하군 하였습니다.

항일유격대에는 문학예술작품을 전문적으로 창작하는 사람이 없었던것만큼 창작을 언제나 집체적으로 하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된 많은 문학예술작품에는 유격대원들의 집체적지혜가 깃들어 있습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유격대원들이 문학예술작품을 집체적으로 창작하는 과정에 전투적이고 혁명적이며 공산주의적인 창조방법과 창작기풍이 서게 되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높이 발양된 항일유격대식창조방법과 창작기풍은 우리 문학예술이 이어 받아야 할 귀중한 창작전통입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일찌기 그 어느 시기에 창조된 문학예술에도 없었던 사상리론적재부와 창작실천적재부를 가진 문학예술이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된 혁명적문학예술의 재부에는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 주체적 창조체계와 창조방법,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비롯한 수많은 혁명적작품, 고귀한 창작경험과 업적이 포함되여 있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지난 날의 문학예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 시대 문학예술이 지녀야 할 모든 우수한 특질을 가지고 있음으로 하여 우리 문학예술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으로 되였습니다. 실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하신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은 참다운 공산주의문학예술의 력사적뿌리이며 그 명맥을 이어 주는 생명선입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항일혁명연극은 우리의 연극예술의 전통으로 됩니다. 혁명적연극전통은 참다운 공산주의연극예술건설의 새 력사를 열어 놓은 시원이고 그 발전을 끊임없이 떠밀어 주는 원천이며 생명선입니다. 혁명적연극예술전통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연극예술건설의 전 과정에서 그 승리를 확고히 담보하여 주는 만년초석으로, 대를 이어 계승하고 빛내여 나가야 할 끝없이 고귀한 재부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혁명적연극전통을 철저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계속 힘 있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혁명적연극예술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는데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기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기는것은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을 옹호고수하며 계승발전시켜 나가는데서 우리 당이 견지하고 있는 일관한 방침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은 혁명적연극예술전통의 핵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의 본보기입니다. 수령님께서 창작하신 문학예술작품을 불후의 고전적명작이라고 하는것은 거기에 인류사상사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위대한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건설의 옳바른 길을 밝혀 주는 주체적문예사상이 빛나게 구현되여 있기 때문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은 사람중심의 철학적세계관에 기초하여 세계를 보고 그리며 인민대중을 혁명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그들의 운명문제에 심오한 해답을 주는 주체의 인간학의 본보기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은 사회주의적내용과 민족적형식이 완벽하게 결합된 문학예술작품의 본보기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은 인물의 성격과 생활을 그려도 다름아닌 조선사람의 참된 모습을 그렸고 조선의 아름다운 산천과 그속에서 살며 싸우는 조선인민의 생활을 그렸습니다.

사상적내용과 예술적형상에서 로동계급의 혁명적문학예술의 높은 경지에 오른 불후의 고전적명작은 문학예술의 보물고에 특출한 기여를 한 우리 인민의 귀중한 혁명적재부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이 있기에 우리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이 있으며 우리의 혁명적문학예술전통이 그처럼 빛나고 자랑스러운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가지고 있는것은 우리 인민의 영광이며 행복입니다. 우리는 고전적명작을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기는 방법으로 문학예술혁명을 수행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여 왔습니다. 경험은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기는 사업을 잘하여야 혁명적문학예술전통도 훌륭히 계승발전시킬수 있고 문학예술혁명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다는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연극혁명도 고전적명작《성황당》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재현하는것으로부터 시작하였기때문에 빛나게 수행될수 있었으며 우리 연극예술이 오늘과 같은 일대전성기에 들어 서게 되였습니다.

원작에 충실하는것은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옮기는데서 지켜야 할 근본원칙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옮기는데서 원작에 충실하지 않고 규모만 확대하려는것은 원작의 고전적의의를 무시하는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성황당》식 연극으로 옮긴것은 다 원작에 충실하게 옮긴것입니다. 국립연극단에서는 혁명연극 《성황당》의 재현을 시발점으로 하여 《혈분만국회》, 《딸에게서 온 편지》, 《3인 1당》, 《경축대회》를 모두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사상이 명백하고 간결하게 잘 형상하였습니다. 특히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연극으로 재현하는데서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사상적내용을 파고 들어 매 작품의 형태상 특성을 잘 살렸습니다. 원작의 종자에 맞게 사상적내용을 파고 들면서 형태상 특성이 살아 나게 다시 창조하는 여기에 바로 고전적명작을 옮기는 창작가의 옮바른 자세가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원작에 맞게 잘 옮기려면 거기에 반영된 사회력사적환경을 깊이 연구하여야 하며 인물의 의상과 소도구에 대한 고증사업도 잘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성황당》식 연극으로 무대에 올릴 때 그것이 언제 어떤 목적밑에 창작되였으며 거기에 반영된 사회력사적환경은 어떠하였는가, 인물의 성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어떤것인가 하는데 대하여 여러모로 파고 들어 연구하도록 하였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옮기던 초시기에 창작가들이 원작에 반영된 사회력사적환경과 주인공의 성격을 깊이 연구하지 않다보니 어머니의 성격발전과정을 그리는데서 원작의 요구를 철저히 구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원작에 제시된대로 어머니가 아들딸에게서 교양을 받을뿐아니라 자체로 혁명의 시련을 이겨 내는 과정과 유격대공작원으로부터 혁명적영향을 받는 과정을 잘 보여 주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성격을 부각한다고 하면서 그가 유격대로 들어 가는것으로 형상한것을 원작대로 인민을 불러 일으켜 유격대와 함께 무장봉기를 일으키는것으로 형상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영화《피바다》는 원작의 높은 사상예술성을 손색없이 재현할수 있었습니다.

혁명연극《혈분만국회》를 창조할 때 처음에는 주인공 리준의 성격을 그가 마치 공산주의혁명가나 되는것처럼 과장하여 형상하였는데 그것은 창작가, 예술인들이 당대의 사회력사적환경과 인물의 성격을 깊이 연구하지 못한것과 관련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길 때에는 인물의 의상과 소도구 하나를 고르는데서도 당시의 환경과 생활풍습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것을 세심히 따져 보고 그에 맞게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불후의 고전적명작의 높은 사상예술성을 자그마한 손색없이 살릴수 있으며 그 인식교양적가치를 높일수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영화로 옮길 때에 주인공이 산발을 오르내리면서 메고 다닐 망태기 하나를 마련하는데까지 세심한 주의를 돌리고 소도구문제를 바로 해결한것은 그 좋은 실례로 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발굴고증하여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기는 사업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와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한 성스러운 사업입니다. 그러므로 작가, 예술인들은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발굴고증하여 연극과 영화, 소설을 비롯한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기는 사업을 책임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연극예술부문에서 5대혁명연극을 창조하는 과정에 이룩한 풍부한 경험 앞으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무대에 재현하는 사업에서 귀중한 밑천으로 될것입니다.

혁명적연극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서는 이미 무대에 올린 혁명연극을 계속 공연하여야 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연극이나 가극으로 옮겨 놓고 몇해동안 공연하다가 그만두면 10년후나 20년후에 서 자라나는 새 세대들은 우리 나라에 어떤 불후의 고전적명작이 있었는지조차 모를수 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문학예술의 여러 형태로 옮기는것은 그것을 만대에 길이 전하자는데 목적이 있는것만큼 몇해동안 공연하고 그만둘것이 아니라 100년이고 200년이고 계속 공연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 공연하면 지금 10대의 학생소년들이 10년후에는 20대의 청년으로 되겠는데 그때에 가서 명작을 보면 10대에 볼 때와는 보는 각도가 다를것입니다. 명작은 보면 볼수록 보고 싶고 깊이 사색하게 됩니다.

문학예술부문에서는 《꽃 파는 처녀》, 《피바다》, 《성황당》을 비롯하여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옮긴 영화와 연극, 가극을 대를 이어 상영하고 공연함으로써 위대한 수령님께서 쌓아 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여 나가야 합니다.

 

2. 극 문 학

 

1) 희곡은 연극의 사상예술적기초

사상예술성이 높은 연극을 만들려면 희곡을 잘 써야 합니다.

창조집단안에 재능 있는 배우가 많고 형상능력이 있는 연출가가 있다고 하여도 희곡이 좋지 못하면 관중의 심금을 울리는 훌륭한 연극을 만들어 낼수 없습니다.

희곡은 연극의 사상적내용과 예술적형식을 규정하는 기초입니다.

희곡에는 연극의 내용을 규정하여 주는 종자와 주제사상, 인물의 성격과 인간관계는 물론, 형식을 담보하여 주는 구성과 갈등, 이야기줄거리, 양상이 주어 져 있습니다. 희곡에는 연출가를 비롯한 창작가와 배우가 자기의 형상방향을 잡고 창조적환상을 꽃 피울수 있는 기초가 제시되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연극을 만들자면 사상예술성이 높은 희곡을 창작하는데 첫째가는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다른 문학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희곡은 주체의 인간학, 공산주의인간학으로 되여야 합니다. 주체의 인간학, 공산주의 인간학은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인간문제를 내세우고 주체형의 참다운 인간전형을 창조하여 인민대중을 가장 힘 있고 존엄 있는 사회적존재로 키우는데 이바지하는 문학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의 극문학은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모든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게 할데 대한 근본요구를 철저히 구현하고 있기때문에 시대가 제기하는 물음에 옳바른 해답을 주는 주체의 인간학으로 됩니다.

주체의 인간학은 자주적인 인간전형을 그려야 합니다.

인간학인 문학의 기본사명은 작품의 중심에 본보기로 되는 전형적인 인간성격을 형상하여 사람들에게 생활과 투쟁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데 있습니다. 산 인간의 성격창조를 떠나서 문학은 자기가 내세운 형상적과제를 원만히 수행할수 없습니다. 작품에서 종자도 인물의 성격을 통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특히 주인공의 성격은 문학에서 사상적인것과 예술적인것을 옳게 결합시키며 내용과 형식의 조화로운 통일을 실현하는 중심으로 됩니다. 문학예술작품에서 주인공은 인간관계의 기둥으로 되며 다른 인물을 제약하고 복종시킬뿐아니라 이야기줄거리를 끌고 나가는 중심인물로 됩니다. 문학에서 어떤 인간을 전형으로 내세우며 그리는가 하는데 따라 작품이 제기하는 인간문제의 가치와 의의가 좌우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 극문학에서는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워 나가는 인간의 전형을 내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혁명의 길우에 있으며 우리가 가야 할 혁명의 길은 멀고 험난합니다. 그런데 우리 혁명대오안에서는 세대교체가 일어 나고 있으며 간고한 혁명투쟁에서 단련되지 못한 새 세대들이 나라의 운명을 떠메고 나갈 혁명의 주인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부닥치는 온갖 난관과 시련을 뚫고 우리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사람들을 혁명관으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합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혁명관은 주체의 혁명관입니다. 주체의 혁명관에서 중요한것은 혁명의 주체에 대한 옳바른 관점과 립장입니다. 주체의 혁명관을 세우자면 혁명의 주체인 수령, 당, 대중에게 충실하여야 합니다. 다시말하여 수령관, 조직관, 군중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수령관, 조직관, 군중관은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도덕관에 의하여 안받침될 때 확고한 신념으로, 인생관화됩니다. 수령관과, 조직관, 군중관, 도덕관은 서로 뗄수 없이 밀접히 련관되여 하나의 전일적인 혁명관을 이루게 됩니다. 작가들이 주체의 혁명관을 세워 나가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진실하게 그리려면 그들이 혁명적 수령관과, 조직관, 군중관, 도덕관을 다같이 체현해 나가는 과정으로 잘 형상하여야 합니다.

작가는 간고하고 준엄한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형성된 항일혁명투사들의 혁명적수령관을 깊이 있게 그려야 합니다. 작가는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니였던 혁명적수령관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일제를 반대하여 간고한 투쟁을 벌리는 과정에 체득된 드팀 없는 신념이고 자신의 피와 살로 체질화된 의지라는것을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령, 당, 대중의 혈연적인 통일의 빛나는 전통을 순결하게 고수할수 있으며 그 력사적뿌리에서 자라난 우리 시대 인간의 혁명적수령관을 감명 깊게 그려 낼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 인간은 수령과 조직사상으로, 동지적으로 결합되여야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생명을 지닐수 있다는것을 신념으로 체득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충성심은 그 어떤 의무감에서 아니라 혁명적의리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가장 숭고한 사상감정으로 되고 있으며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요구로 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민족의 위대한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고 끝까지 충성 다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마땅한 도리인것입니다.

작가는 자기의 작품에서 우리 인민의 력사적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삶의 신조로,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활적인 요구로 받아 들인 혁명적수령관을 생활적으로 깊이 있게 그려 냄으로써 수령님의 품속에서 정치적생명을 빛내여 나가는 길에 진정한 삶의 보람과 기쁨이 있다는것을 힘 있게 강조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개인의 리익만을 생각하며 수령도 조국도 민족도 모르고 일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는것은 동물의 생활과 다름 없는것이며 수령을 모시고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여 나가는것이야말로 참된 삶이고 기쁨과 긍지에 넘치는 생활이며 자신은 물론, 후대들의 영원한 행복이 담보된 가장 빛나는 삶이라는것을 설득력 있게 인식시켜야 합니다.

주체형의 참다운 인간전형을 창조하기 위하여서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공산주의적원칙을 체현하고 있는 우리 시대 인간의 혁명적륜리와 도덕을 높은 예술적경지에서 감명 깊게 그려야 합니다.

작가는 작품에서 공동의 목적과 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손 잡고 나아가는 사회적집단에서만 제기되는 공산주의적도덕관계가 동지들사이의 관계와 가정생활, 사회공동생활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하는것을 깊이 있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실 사람들사이의 의리나 우정에 대한 문제는 지난 날의 작품에서도 취급되였으며 그러한 작품가운데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감명을 준것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의 경우에도 의리나 동지애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사람의 순수한 륜리도덕과 관련되는 문제로만 취급되였습니다.

작가는 작품에서 혁명적의리와 동지애를 개별적사람의 품성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주의적생명관에 기초하여 깊이 있게 그려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도덕관계를 동지들사이의 관계와 가정생활, 사회공동생활에서 단순히 동지를 아끼고 사랑하거나 인간다운 도리를 지키는것과 같은 개인적감정과 품성에 대한 문제로만 그럴것이 아니라 수령에 대한 충실성에 기초하여 혁명적의리와 동지애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것을 깊이 있게 그려야 합니다. 우리 시대 인간의 성격은 바로 이렇게 형상되여야 지난 시기의 작품에서 보여 준것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새형의 인간전형으로 될수 있습니다.

희곡에서는 생활과 투쟁에서 본보기로 되는 긍정적전형을 많이 내세워야 할뿐아니라 전진도상에 있을수 있는 부정도 대담하게 내놓아야 합니다. 사회주의건설하는 길에는 탄탄대로만 있는것이 아니라 진펄길과 가시덤불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일군들가운데서는 전진도상에 부닥치는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뚫고 나가지 못하고 패배주의에 빠져 동요하거나 요령주의를 부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맡겨 진 혁명임무를 수행하는데 어깨를 들이밀고 마력을 다 내여 일할대신 건달을 부리면서 자리지킴이나 하는 형상과 귀족화되여 인민생활에 관심을 돌리지 않는 현상, 당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데 대하여 가슴 아파 하지 않고 걸린 문제를 풀기 위하여 아글타글 애쓸 대신 앉아서 우는소리만 하는 현상은 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없는데서 나오는것입니다. 작가는 우리 당의 사상과 인연이 없는 부정적인 요소가 우리 혁명에 커다란 저해를 주며 그것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는것을 극적으로 예리하게 밝혀야 합니다.

우리 시대 인간의 전형창조에서 정책적대를 바로 세우는것이 중요합니다.

전형창조에서 정책적대를 바로 세우는것은 당적이며 혁명적인 문학의 본성적요구입니다. 전형창조에서 정책적대는 당의 로선과 방침에 기초한 확고한 주견과 원칙적립장입니다. 전형창조에서 정책적대를 바로 세워야 작품의 형상체계전반에서 당정책적선을 확고히 세우고 생활의 본질을 옳게 밝힐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이러저러한 비본질적인 현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창작에서는 생활에 대한 해부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본질과 현상을 옳게 가려 보고 당정책적선을 확고히 틀어 쥐고 여기에 다른 모든것을 철저히 복종시켜 나가야 합니다.

사상예술성이 높은 희곡을 창작하려면 종자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문학예술작품에서 인간형상이 생명으로 된다면 인간형상에 활력을 부어 주고 생기가 넘쳐 나게 하는 생명의 핵은 종자입니다. 작품의 종자는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고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입니다. 현실에서 어떤 종자를 골라 잡는가 하는것은 작품의 성격과 사상예술적질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의 하나로 됩니다.

종자를 바로 골라 잡아야 시대가 제기하는 절실한 인간문제에 옳은 해답을 줄수 있고 작품의 철학적깊이를 보장할수 있으며 창작에서 속도전을 힘 있게 벌릴수 있습니다.

작가가 현실의 어떤 대상에 눈을 돌리며 사회생활의 어떤 측면에서 종자를 골라 잡는가 하는것은 창작의 출발점으로 될뿐아니라 작품의 운명을 좌우하는 관건적인 문제로 됩니다. 유기체에 활력을 주는 생명의 인자가 없으면 그 유기체가 생존할수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사상적알맹이가 없는 작품은 죽은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핵이 없는 작품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똑똑하지 않기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해석할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수도 있습니다. 작품의 주제와 사상은 종자로부터 흘러 나오는것만큼 종자가 똑똑하지 못하면 결국 주제와 사상도 모호하게 됩니다.

종자는 당의 정책적요구에 맞고 극적요구에도 맞는것으로 잡아야 합니다. 당의 로선과 정책에 철저히 의거하여 현실을 대하는 작가만이 생활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똑바로 가려 볼수 있으며 인간학의 본성적요구에 맞는 종자를 바로 쥘수 있습니다.

좋은 종자를 잡자면 시대를 대하는 작가의 심장이 뜨거워야 합니다. 심장이 뜨겁지 않고서는 창작을 할수 없습니다. 창작을 한갖 의무감에서 할 때에는 결코 사람의 심금을 울릴수 있는 좋은 종자를 잡을수 없습니다.

당정책적요구에 맞으며 시대가 제기하는 인간문제에 해답을 줄수 있는 종자는 생활속에 있습니다. 생활은 당정책이 현실로 꽃 펴나고 열매를 맺는 터전입니다. 생활을 잘 알아야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의의 있는 종자를 골라 잡을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수령, 당, 대중이 통일단결되여 하나의 공고한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이루고 있으며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힘찬 진군운동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 인민의 생활입니다.

작가는 보람찬 진군운동이 벌어 지고 있는 생활속에 깊이 들어 가 인민대중과 고락을 같이 하여야 자연개조, 인간개조, 사회개조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둔것으로 하여 세상사람들로부터 《사회주의모범의 나라》로 불리우는 우리 나라가 얼마나 위대하고 우리 인민이 얼마나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혁명하는 인민인가 하는것을 심장깊이 체득할수 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일제와 미제를 타승한 영웅적인민이며 전후복구건설의 난관을 이겨 내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제도를 일떠세운 강의한 인민입니다. 우리 인민은 전쟁으로 하여 모든것이 파괴된 재더미우에서 남들이 세기를 두고 이룩한 나라의 공업화를 불과 1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해제꼈으며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설비, 자재로 20리 날바다를 막아 세계일등급의 서해갑문을 일떠 세웠습니다. 지금 우리 인민은 백두의 혁명정신, 불 타는 강을 건느고 진펄길을 걷던 그날의 투지와 용맹을 안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 있게 밀고 나가면서 사회주의대건설행군을 다그쳐 나가고 있습니다.

작가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일어 나고 있는 극적인 사변과 감동적인 사실에서 종자를 골라 잡고 작품을 써야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체의 한길을 따라 억세게 싸워 나가는 우리 인민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감명 깊게 그려 낼수 있으며 그들을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으로 교양하는데 적극 이바지할수 있습니다.

희곡은 연극예술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써야 합니다. 희곡은 생활을 극적방식으로 반영하는 문학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영화문학도 생활을 극적방식으로 반영하며 인물의 성격을 작가의 설명이 아니라 인물자신의 행동을 통하여 밝힌다는 점에서는 희곡과 같지만 희곡에서처럼 생활을 몇개의 국한된 장면에서 집약적으로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영화문학은 형상에서 시공간의 구속을 거의나 받지 않기때문에 현재로부터 과거에로,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로 자유롭게 비약시키면서 생활을 여러모로 다양하게 그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곡은 시공간적제약을 받기때문에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물론 《성황당》식 연극에서 시공간적제약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장면구성법을 새롭게 적용하였지만 시공간을 영화에서처럼 자유롭게 비약시키거나 함축하고 확대변형하여 보여 줄수는 없습니다. 희곡에서는 생활속에서 극을 체현하고 있는 종자를 극적으로 맺어 진 인간관계를 통하여 집약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희곡은 연극을 만들기 위한 문학인것만큼 인물을 설정하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관계를 맺어 주고 이야기줄거리를 전개시켜 나가는것을 비롯한 모든 형상조직이 다 극적으로 되여야 합니다. 희곡이 극적으로 되여야 인물의 행동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의 관계를 맺어 주며 갈등을 드러내는 정황과 계기를 다 연극의 특성에 맞게 잘 지어 줄수 있습니다.

묘사대상의 견지에서 볼 때 희곡에 담아야 할 생활이 따로 있는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활을 희곡에 담을수 있지만 그것은 극적방식으로 담아야 합니다. 희곡작가는 생활속에서 극성이 있는 소재를 탐구하는데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례를 들어 정전직후 간고한 조건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때의 생활도 극성이 강한 생활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것이 파괴되였기 때문에 먹을것과 입을것도 넉넉치 못하였고 쓰고 살 집도 변변한것이 없었으며 복구건설을 하자고 하여도 벽돌 한장 성한것이 없었습니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매일과 같이 《북진》소동을 일으키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기계에서 밥이 나오는가고 하면서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을 반대하여 나섰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당은 인민대중을 믿고 인민대중은 당과 수령을 믿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전후복구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제도를 세워 놓았습니다. 희곡은 이처럼 정치적의의가 있고 내용이 풍부한 생활을 담아야 극성이 강한 작품으로 될수 있습니다.

희곡이 극적인 인간생활을 위주로 반영한다고 하여 반드시 극적 기복과 굴곡이 심한 충격적인 사건이나 갈등이 첨예한 생활만을 취급하여야 한다는것은 아닙니다. 근로자들사이의 단결과 협조가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되고 있으며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이루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화목하게 사는 우리의 사회주의현실생활도 얼마든지 희곡에 담을수 있습니다.

희곡에는 날을 따라 새롭게 변화발전하는 우리 인민의 미감을 고려하여 극적인것에 정서적인것과 서사적인것을 잘 배합하여야 합니다. 문학예술의 묘사방식은 서로 작용하고 의존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극적인 방식이라고 하여 순전히 극적인것만 있는것이 아니며 거기에는 서정적인 요소와 서사적인 요소도 다양한 형태로 침투되여 있습니다.

《성황당》식극문학에서는 극적방식을 위주로 하여 생활을 그리면서도 연극창조에서 음악이 노는 역할을 고려하여 서정적인 묘사방식에 속하는 가사를 다양한 형식으로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연극에서 음악은 대사와 함께 중요한 형상수단의 하나로 되였습니다. 《성황당》식 극문학에서 가사는 인물의 성격과 생활을 서정심리적으로 보여 주기도 하고 서사적을 펼쳐 보이기도 하며 극적으로 파고 들면서 그의 내면세계를 다양하게 헤쳐 보여 주기도 합니다. 희곡에서는 방창으로 불리워 질 가사를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론리에 맞게 절가화하여 써야 합니다.

희곡에서는 극의 요구에 맞게 설화도 다양하게 써야 합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는 서사적묘사방식에 속하는 설화를 극의 요구에 맞게 다양하게 살려 씀으로써 생활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세계를 형상적으로 돋구어 주고 있습니다. 혁명연극《혈분만국회》의 서장에서 검은 구름이 무겁게 밀려 들고 뢰성벽력이 치는 가운데 준 설화는 망국의 비운이 드리운 당시 우리 나라의 시대상을 잘 부각시켜 주고 있으며 주인공이 국권을 찾기 위하여 밀사로 떠나는 장면에서 준 설화는 고난에 찬 수만리 로정을 시공간적으로 비약시키면서 사랑하는 처자와 고국산천을 두고 떠나는 그의 비분강개한 내면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결한 다음 종장으로 넘어 가는 장면에서 준 설화는 어제날의 력사의 교훈으로 현 시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있는것으로 하여 작품의 철학성을 더욱 심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희곡에서 설화는 이렇게 극적묘사방식의 요구에 맞게 충분한 감정축적을 거쳐 극적으로 앙양된 생활적계기에서 주어야 하며 인물의 내면세계와 밀착되면서 극성을 강하게 돋구어 줄수 있게 주어야 합니다. 종자의 요구와 사상주제적과제에도 맞으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극의 흐름과 장면의 요구에도 맞는 설화만이 연극의 사상예술성을 높이는데 참답게 이바지할수 있습니다.

 

2) 극조직은 극작술의 기본

 

희곡에서 극조직을 잘하는것은 연극의 골격을 튼튼히 세우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극조직이란 작품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짜나가는것을 말합니다. 다시말하여 종자를 밝히는데로 인물관계와 사건, 갈등, 이야기줄거리, 구성을 극적으로 엮어 나가는것을 극조직이라고 합니다. 인물관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생활내용을 극적으로 맺어 주고 풀어 나가는 극조직이 째이지 못하면 희곡의 사상적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작품이 따분하고 지루하여 볼 재미가 없게 됩니다. 같은 생활내용을 가지고도 극조직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관중이 극세계에 깊이 잠기게 할수도 있고 갈피를 잡을수 없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극조직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극작술문제로만 되는것이 아니라 작품의 사상예술성을 높이는 기본조건의 하나로 됩니다.

희곡에서 극조직을 잘하기 위하여서는 극구성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극구성은 형상의 기본골격을 이룹니다. 기둥을 튼튼히 세우고 대들보를 바로 얹어야 집이 기울어 지지 않는것처럼 극작품도 구성이 바로 서야 인물, 사건, 갈등과 같은 형상요소를 작품의 종자를 밝히는데로 맞물려 나갈수 있습니다. 극조직은 결국 극구성을 어떻게 세우는가 하는 문제라고 할수 있습니다. 연극의 발전과정은 극구성에서 무대적제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탐구과정이기도 합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극문학은 구성형식면에서 많은 진보와 변혁을 가져 왔지만 《성황당》식 연극이 나오기전까지는 평면적인 무대구성의 틀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평면적인 무대구성으로써는 투쟁으로 충만된 우리 시대 인간의 생활을 자기 모습대로 보여 줄수 없습니다. 지금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여 지구의 한끝에서 벌어 지는 사변도 지척에서와 같이 생동하게 볼수 있는것만큼 사람들이 극장에 와서 막과 장에 의하여 생활의 흐름이 자주 동강나는데 대하여 환멸을 느끼게 되는것은 응당한 일입니다. 우리 시대사람들은 극장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니라 실지 현실에서 숨 쉬고 사고하며 행동하는것과 같은 산 인간을 볼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령 관중이 강선의 로동계급을 형상한 연극을 본다면 그것이 무대에서 보는것이 아니라 실지 현실에서 보는것처럼 되여야 하며 1930년대의 생활을 반영한 연극을 본다면 그것이 실지 당대의 현실과 그 시대의 산 인간을 보는것처럼 되여야 합니다.

생활은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인간관계만 보아도 사회계급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져 있으며 다양한 시공간속에 놓여 있습니다.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기 위하여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속에 얽혀 있는 인간생활을 본래의 모습대로 립체적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날 연극예술부문에서 생활을 극적인 방법으로 반영할데 대하여서는 많이 론의되였지만 그것을 립체적으로 그릴데 대하여서는 별로 론의되지 않았습니다. 연극의 립체성문제를 론하는 경우에도 주로 무대장치나 무대구도에 국한시켰으며 그것을 형상전반과 관련시켜 보지 못하였습니다. 연극이 립체성문제는 창작과정의 어느 한 단계나 그 어떤 개별적인 형상수단과 수법에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형상의 모든 요소 관련되는 문제인것만큼 그것은 먼저 극구성에서부터 해결되여야 합니다.

극구성의 립체성은 인물관계의 립체성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습니다. 물론 갈등이나 사건도 구성이 립체성을 살리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지만 극은 어디까지나 인물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것만큼 갈등이나 사건도 다 인물관계에 의하여 빚어 지며 그로부터 흘러 나옵니다. 그러므로 인물관계를 립체적으로 설정하는것은 갈등과 사건의 립체성을 기초지으며 구성의 립체성을 담보하는 기본조건으로 됩니다.

혁명연극《성황당》에서는 인물관계를 립체적으로 설정하고 극적으로 심화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당대의 사회생활과 계급관계를 생동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연극에서는 주인공 돌쇠, 박씨와 그의 딸 복순, 만춘을 비롯한 인민들을 한편으로 하고 지주와 구장, 무당과 전도부인, 중을 다른편으로 하는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의 갈등관계만을 외곬으로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연극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타고 난 자로 여기며 미신의 나락에서 헤매는 복순의 어머니와 그의 눈을 틔워 주려는 돌쇠의 관계 그리고 만춘과 복순의 인정관계를 서정심리적으로 보여 주고 있을뿐아니라 여기에 지주와 구장사이의 반목과 알륵관계, 무당과 전도부인, 중 사이에 말싸움하는것을 비롯하여 인물관계를 여러 면에서 보여 주면서 립체적으로 엮어 나가고 있습니다. 극작품에서 인물관계는 이렇게 립체적으로 되여야 극이 단조롭지 않고 복잡한 생활의 리면까지 실감 있게 보여 줄수 있습니다.

인물관계를 립체적으로 보여 주지 않고 그저 긍정인물과 부정인물로 갈라 놓고 그들의 관계를 외곬으로 단순하게 보여 주면 극은 복잡한 인간생활과 사회관계를 진실하게 보여 줄수 없게 되며 따라서 상식적이고 빤드름한것으로 되여 볼멋이 없게 됩니다.

극구성을 립체적으로 하자면 인물관계를 극적인 관계로 심화시켜야 합니다.

극작품에서 인물관계는 단순한 륜리도덕적관계나 경제실무적인 관계가 아니라 복잡한 사회정치생활과정에서 맺어 지는 사회계급적관계로 됩니다. 그러므로 인물관계를 극적인 관계로 심화시키자면 정치사상적 및 계급적리해관계에 따라 일치되기도 하고 상반되기도 하는 그들의 호상관계를 깊이 있게 그려야 합니다.

극작품에서 인물관계는 작품에 반영되는 사회관계의 성격에 따라 동지적단결과 협조의 관계로 될수도 있고 계급적대립과 투쟁의 관계로 될수도 있습니다. 동지적 단결과 협조가 사회단계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사회주의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에서 인물관계는 비록 그들사이에 의견차이와 충돌이 있다 하여도 리해관계의 근본적인 대립으로부터 오는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과 리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 생기는것입니다. 그런것만큼 사회주의현실을 반영하는 극작품에서 인물관계는 극단적으로 조성되거나 결렬되는것으로 그려서는 안되며 부정이 극복되고 동지적단결이 더욱 강화되여 나가는것으로 설정되여야 합니다. 그러나 적대적인 사회관계를 반영하는 작품에서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의 관계는 그들의 목적과 리상이 근본적으로 상반되는것만큼 처음부터 대립과 투쟁의 관계로, 적대적성격을 띠고 극단적으로 첨예하게 조성되고 결렬되는것으로 설정되여야 합니다.

희곡에서 인물관계를 극적으로 심화시킨다고 하여 모든 경우에 그들의 관계를 직접적인 성격충돌로 그리려 하여서는 안됩니다. 지난 날에는 극적인 것, 극성을 서로 모순되는 인간성격의 직접적인 충돌에서만 생겨 나는것으로 보았기때문에 작품에서 갈등을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의 직접적인 대립과 투쟁으로만 설정하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극적인것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벌어 지는 평범한 현상을 념두에 두는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의 흐름을 깨뜨린 사건, 사회적으로 일정한 관심이나 주목을 끌만한 충격적인 사건 같은것을 념두에 둡니다. 그렇지만 극적인것을 서로 상반되는 성격들의 직접적인 대립과 충돌의 표현으로만 리해하는것은 일면적인것이며 낡은 극작법의 개념에서 벗어 나지 못한것입니다. 희곡에서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의 직접적인 대립과 투쟁에 의한 갈등만을 절대화하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희곡에서 극성을 살린다고 하여 반드시 부정인물을 설정하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사회주의현실을 취급하는 작품, 특히 당과 수령의 현명한 령도와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는 갈등이 없이도 작가가 현실을 긍정하는 높은 열정을 가지고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펼쳐 보여 주면 극성을 얼마든지 살릴수 있습니다. 극성은 같은 목적과 지향을 가진 사람들의 동지적관계인 경우에도 서로 일본새가 다르고 생각이 같지 않는데서도 생길수 있고 긍정적주인공의 주관적인 욕망과 실천사이의 불일치에서도 생길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주인공은 당과 수령에게 충성 다하는것을 삶의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고 살며 싸우지만 지식과 능력, 열정이 부족한 탓으로 하여 맡겨 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우여곡절을 겪을 때도 있는것입니다. 맡겨 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아글타글 애 쓰는 그 아름다운 소행속에도 강한 극성이 있을수 있고 자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여 안타까와 하는 모대김과 자책, 번민속에도 극성이 있을수 있습니다. 극문학에 이런 긍정적주인공의 생활을 잘 반영하면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의 직접적인 대립이 없이도 극성이 조성되며 극적견인력이 생기게 됩니다.

수령, 당, 대중 하나로 결합되여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이루고 있고 긍정적인것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사회주의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에서는 긍정을 내세우고 찬양하는것 자체가 벌써 부정에 대한 비판으로 됩니다. 사회주의현실을 그리는 작품에서 갈등을 설정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하여 이것을 한때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던 《무갈등론》과 같은것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사회주의현실주제작품에서의 갈등문제를 해결하는데서는 두가지 경향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하나는 희곡에서 부정선을 강하게 살려야 대립과 충돌을 날카롭게 보여 줄수 있다고 하면서 종자의 요구와 소재의 특성에 관계없이 무턱대고 갈등을 강하게 설정하려는 경향이며 다른 하나는 부정선이 없어도 희곡을 만들수 있다고 일면적으로 해석하고 부정을 잘 내놓으려 하지 않거나 내놓는 경우에도 그것을 인위적으로 약화시키려는 경향입니다. 첫번째 경우에는 긍정적인것이 기본을 이루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현실을 외곡하게 되며 두번째 경우에는 사회주의사회에서 진행되는 계급투쟁의 본질을 외곡하게 됩니다. 작가는 사회주의사회에서의 갈등의 특성을 잘 알고 그것을 창작실천에 구현해 나갈 때에만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사상예술성이 높은 극작품을 창작할수 있습니다.

희곡에서 극구성을 립체적으로 잘하자면 이야기줄거리가 째이게 하여야 합니다.

이야기줄거리는 장면구성과 밀접하게 련관되여 있습니다. 이야기줄거리는 장면구성을 통하여 실현되며 장면은 이야기줄거리를 타고 전개됩니다. 이야기줄거리가 째이지 못하면 구성이 째일수 없습니다. 이야기줄거리가 째이게 하려면 그것이 기승전결의 과정으로 명백하게 엮어 지도록 장면의 극조직을 잘하여야 합니다. 다시말하여 이야기줄거리를 따라 사건이 발생하고 발전하며 절정에 이르렀다가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해결하여야 할 매 장면의 과제가 뚜렷하게 주어 지고 그것이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론리에 맞게 되여야 합니다.

이야기줄거리는 극구성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극구성의 중점을 살리고 이야기줄거리를 째이게 하려면 줄거리를 이루는 인물선과 사건선가운데서 주도적인 위치에 놓여 있고 종자를 밝히는데서 결정적역할을 수행하는 기본인물선과 기본사건선을 옳게 포착하고 그것을 튼튼히 틀어 쥐고 나가야 합니다. 생활을 여러모로 보여 준다고 하여 이것저것 널어 놓아서는 안되며 어떠한 세부가 그 자체로서는 매력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작품의 기본선을 가리우거나 약화시킬 때에는 대담하게 버려야 합니다. 잘못 골라잡은 하나의 세부가 작품전체를 흐리게 할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 조직에서 흥미 있고 매력 있는 생활이라고 하여 부차적인 문제를 파다가 중심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부차적인 선은 줄거리의 대를 바로 세우고 극조직이 째이도록 주선에 철저히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야기줄거리는 장이 바뀔 때마다 끊임 없이 새롭게 펼쳐 지면서 극적긴장감을 주어야 하며 사건발전에 대한 기대를 크게 안겨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중으로 하여금 극적흥미를 가지고 작품의 세계에 깊이 끌려 들게 할수 있습니다. 장면마다 전개되는 이야기가 새롭고 극의 흐름에 정서적인 굴곡을 지어 주면서 관중의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하게 되여야 극조직이 잘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희곡에서 극구성을 립체적으로 하자면 다장면구성법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지난 날 고전극에서는 시간, 장소, 사건의 일치성을 절대화하면서 하나의 사건이 펼쳐 지는 시간안에서는 장소를 변화시켜서는 안된다는것을 법칙처럼 여겨 왔기때문에 극속에서 생활이 발전하고 시간이 흘러 가도 장소와 무대를 끊임없이 변화시킬수 없었습니다. 현대연극에서도 삼일치법의 낡은 틀에서 벗어 나지 못한채 복잡하고 다양한 생활을 몇 개의 막안에 무리하게 몰아 넣고 인물의 뒤생활과 막전생활을 대사를 통하여 장황하게 설명하다보니 현실을 립체적으로 실감 있게 반영하지 못하고 극성을 인위적으로 집중시켜 생활을 진실하게 보여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날에는 이러한 무대적제약성을 연극의 특성으로부터 불가피하게 제기되는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는 종래의 연극의 무대적제한성을 극복하고 이야기줄거리를 생활의 론리에 맞게 엮어 나갈수 있도록 극을 다장면으로 구성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 지게 하여 관중을 정서적으로 공감시키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막을 닫던 종래의 낡은 틀을 마스고 장이 바뀔 때에도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를 주는 생활을 련속적인 흐름으로 펼쳐 줌으로써 무대적제한을 거의 받지 않고 인간과 생활을 생동하게 보여 줄수 있게 극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구성법은 우리 시대 인민의 미감에 전적으로 맞는것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처럼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킨것도 바로 새로운 극작법의 우월성을 잘 보여 주는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새로운 극구성법을 장면수를 무턱대고 늘여서 다장면으로 구성하기만 하면 되는것으로 생각하여서는 안됩니다. 생활을 서사시적화폭으로 보여 준다고 하면서 덮어 놓고 장면수를 늘여 잡다한 사건을 이것저것 벌려 놓거나 하나의 인간관계라도 극적으로 깊이 있게 보여 주지 못하고 많은 인물을 끌어 들여 이야기를 산만하게 널어 놓으면 극이 무맥해 져서 관중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게 됩니다. 희곡에서 장면수만 늘여 이것저것 잡다한 생활을 평면적으로 벌려 놓는것은 극구성을 산문화하는 하나의 편향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이 개척한 다장면구성법이 좋은것은 장면수가 많아 무대 변화를 다양하게 준다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라 장면구성이 립체적이며 장면과 장면사이의 련관이 빈틈없이 째여 있어 이야기가 토막이 나지 않고 생활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 가게 극조직을 할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다장면구성법에서 장면이 바뀔 때마다 암전을 하고 막을 내리면 장면수를 늘인 의의가 없을뿐아니라 종래의 막구성형식과 별다른 차이가 없게 됩니다. 장면이 많을수록 극구성을 잘하여 어느한 장면도 튀거나 극적감흥이 동강남이 없이 지속되게 하여야 합니다. 극의 지속성이 견지되여야 생활의 흐름을 진실하게 펼쳐 보일수 있으며 감정흐름이 멎음이 없이 관중을 극세계에로 끌어 들일수 있습니다.

희곡의 매 장면은 상대적으로 완결된 생활의 한부분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경우에나 절대적인 독자성을 가지는것은 아닙니다. 희곡의 장면은 서로 제약하고 보충하는 관계에서 극을 이어 받고 떠밀어 주면서 내적으로 긴밀히 련관된 구성의 한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장면과 장면은 인간관계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조건 지어 진 생활의 련속으로서 그것은 립체적으로 맞물려 상승발전하는 하나의 극적흐름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것만큼 다장면구성법에서는 장면사이의 련관을 보장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다장면구성법에서는 장과 장사이의 생활을 묘사하거나 앞장면에 다음 장면의 생활을 이어 줄수 있는 요소를 심어 주고 다음 장면에서 그것을 받아 무는 식으로 극조직을 하여야 합니다.

다장면구성법을 받아 들인다고 하여 생활을 지내 널어 놓으려고 하여서는 안됩니다. 극구성을 다장면으로 하는 경우에도 생활을 될수록 집중화하고 집약화하여 그려야 합니다. 연극에서는 그 어떤 복잡하고 다양한 생활이나 오랜 세월에 걸쳐 각이한 장소에서 벌어 지는 이야기도 국한된 장면을 가지고 2시간 안팎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다장면구성에서는 이야기를 간결하게 전개하여야 하는것만큼 생활을 고도로 집약화, 집중화하여야 합니다.

생활을 집중화하고 집약화하여 그린다는것은 전형화의 원칙에 의거하여 생략할것은 생략하고 비약시킬것은 비약시키면서 종자의 요구에 맞는 가장 기본적인 알맹이만을 골라 담는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매 장면에 본질적인 의의를 가지는 알맹이만을 담아야 장면 내용에 전형적인것으로 될수 있으며 형상을 철학적깊이가 있게 할수 있습니다.

장면의 구성은 종자에 기초하여 조직하여야 합니다.

종자는 모든 형상요소를 내용에 맞게 통일시키며 구성을 세우는 기초입니다. 장구성은 종자의 요구를 떠나서 작가의 주관에 의하여 세워 질수 없으며 오직 종자에 기초하여서만 세울수 있습니다. 희곡의 매개 장들은 상대적인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구성의 한 단위로 되므로 종자를 원만하게 살리 장면조직만이 옳은 구성조직으로 될수 있습니다. 이것은 희곡의 장면이 종자의 요구에 맞게 서로 밀착되고 통일되여야 유기적인 구성이 이루어 질수 있다는것을 말하여 줍니다.

혁명연극《성황당》에서는 모든 장면이 종교와 미신은 비과학적이며 사람의 자주성을 마비시킨다는것을 사리정연하게 보여 주는 각도에서 설정되고 있습니다. 이 연극에서는 사람은 《하느님》이나 《귀신》을 믿을것이 아니라 자기 힘을 믿어야 한다는 종자를 살리는데로 이야기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희곡에서 극조직을 잘하기 위하여서는 또한 감정조직을 잘하여야 합니다.

극조직에서 기본은 감정조직입니다. 감정조직이 극조직에서 기본으로 되는것은 그것이 극적인 인물관계와 사건, 이야기줄거리의 발전과정을 하나의 흐름속에 정서적으로 통일시키는 형상기능을 놀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기에는 사건조직을 극조직의 기본으로 보면서 인간의 사상감정을 깊이 있게 그리려는것보다 사건을 가지고 극을 흥미본위로 꾸미려는 경향이 더 강하였습니다. 사건조직은 인물관계를 맺어 주고 그들의 행동을 조건 짓는 생활정황을 마련해 주는데 지나지 않으므로 인물의 행동선을 세우고 그의 행동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흐름을 잘 짜나가기 위하여서는 사건조직과 감정조직을 밀착시켜야 합니다.

사건조직과 감정조직은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본질을 드러내게 하는 형상방법으로서 그것은 서로 모순되고 배제하는 관계에 있는것이 아니라 의존하고 제약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사건조직에 기초하지 않는 감정조직은 공허한것이며 감정조직이 되여 있지 않는 사건조직은 메마르고 딱딱한것입니다. 감정조직이 되여 있지 않는 사건조직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인물의 사상감정은 사건속에서 드러나는것만큼 감정조직은 사건조직에 기초하여야 합니다. 감정조직이 사건조직에 기초하여야 사건발전의 론리에 맞게 인물의 사상감정과 심리를 긴장과 완화, 축적과 폭발의 흐름속에서 자연스럽게 짜나갈수 있으며 그 과정에 그의 사상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낼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혁명연극이 관중의 사랑을 받는것은 종자가 의의 있고 심오하여 보고 나면 깊은 철학적사색을 불러 일으키는데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극조직이 극적긴장과 흥미를 가지고 끊임없이 새롭게 펼쳐 지는 이야기를 볼수 있게 립체적으로 째여 있는것과 주요하게 관련되여 있습니다.

《성황당》식 극작법은 연극혁명과정에 완성된 우리 식의 극작법입니다. 새로운 극작법이 비록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것이라고 하여도 작가가 그에 정통하지 못하면 창작에서 성과를 거둘수 없습니다. 우리 식의 극작법에 정통한 작가만이 우리 시대 인민의 미감에 맞는 사상예술성이 높은 좋은 희곡을 써낼수 있습니다.

 

3) 대사는 희곡의 기본형상수단

 

희곡은 대사의 문학입니다. 희곡에서 인물의 성격은 작가의 묘사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주로 인물들사이에 서로 주고 받는 대사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희곡에서 작품의 사회력사적환경과 인물의 극적관계는 물론, 사건발전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것도 대사입니다. 희곡에는 인물의 대사밖에 배우의 행동을 제시하여 주는 바탕글이 있지만 그 행동을 끌고 나가는것은 역시 대사입니다. 희곡에서는 대사를 잘 쓰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대사를 잘 쓴다는것은 인물성격의 론리와 극의 정황에 맞게, 뜻이 깊고 알기 쉽게 쓴다는것을 말합니다.

이미 《영화예술론》에서도 강조하였지만 주어 진 정황과 계기에서 그 인물이 할수 있는 말은 오직 한가지라고 보아야 합니다. 주어 진 정황과 계기에서 그 인물이 바로 그렇게 밖에는 달리 표현할수 없는 그 한가지 말을 면바로 찾아 내여 뜻이 깊게 쓴 대사라야 잘된 대사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만일 정황에 어울리지 않고 인물성격의 론리에 맞지 않으며 이렇게 해석해도 되고 저렇게 해석해도 되는 대사라면 비록 문학적으로 다듬어 진것이라 하여도 인물의 성격을 살려 내지 못할뿐아니라 도리여 작품의 생활내용을 모호하게 만들게 됩니다.

희곡에서는 대사를 잘 써야 극성을 살릴수 있으며 극적감흥을 줄수 있습니다.

극성은 극적인것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정서입니다. 극성은 무엇보다도 인물사이에 맺어 지는 극적관계에서 생겨 납니다. 그런데 희곡에서는 인물사이에 맺어 지는 극적관계가 대사를 통하여 얽혀 지는것만큼 극성을 살리는가 못살리는가 하는것은 결국 대사조직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데 달려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대사조직을 잘하여야 관중을 극세계에 끌어 들여 그들에게 깊은 감흥을 줄수 있습니다. 관중이 연극을 보면서 극세계에로 끌려 들어 가다가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대사 조직을 잘하지 못하였기때문입니다. 대사조직은 극적관계에 놓여 있는 인물들이 자기의 사상감정과 심리를 드러내는 말을 극의 정황과 생활의 론리에 맞게 진실하게 짜나가야 잘된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희곡에서 대사조직은 극성을 살리는것으로 되여야 하며 구체적으로는 감정조직의 흐름에 맞게 되여야 합니다. 대사조직이 감정조직의 흐름에 맞게 잘되지 못하면 아무리 그럴듯한 대사를 많이 주어도 관중에게 극적감흥을 줄수 없습니다.

희곡에서는 대사를 잘 써야 주제와 사상을 깊이 있게 밝힐수 있습니다.

희곡의 주제와 사상을 작가의 설명이나 직선적인 대사로 밝히려 하여서는 안됩니다. 작가의 설명이나 직선적인 대사는 창작가의 사상적의도를 생경하게 드러낼뿐입니다. 희곡의 주제와 사상은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의 성격형상을 통하여 밝혀야 하는것만큼 그들의 사상감정과 심리를 형상적으로 드러낼수 있도록 대사를 잘 써야 합니다. 대사는 시대와 생활, 성격의 본질적특을 생동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대사가 간결하고 명백하며 뜻이 깊게 되면 희곡의 주제와 사상을 깊이 있게 밝힐수 있습니다.

희곡에서 대사를 잘 써야 하는것은 연극의 특성과도 관련됩니다. 영화가 행동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대사의 예술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영화문학에서는 인물의 행동과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바탕글이 기본형상수단으로 되지만 희곡에서는 바탕글이 인물의 등장과 퇴장, 시간, 장소를 제시해 주는 보조적인 형상수단으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희곡에서는 중요한 극적과제가 대사를 통하여 해결됩니다.

연극에서는 대사형상을 잘하는것이 중요하며 대사를 듣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대사는 얼마 없고 행동이 많으면 연극이 유치해 질수 있습니다. 몇해전에 혁명연극《성황당》을 창조할 때 무당과 전도부인, 중 사이의 싸움을 주먹싸움으로 형상하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장면에서는 동작보다 대사를 많이 주며 무당과 전도부인, 중이 주먹싸움을 하는것보다 말싸움을 하게 하여 종교와 미신이 거짓이라는것을 그들스스로 발가놓게 하였습니다.

연극을 행동의 예술이라고 하면서 배우가 과장된 동작으로 멋을 부리며 외적인 행동에 치우치는것은 다 신파극의 잔재입니다. 물론 인물의 성격을 극의 정황에 따라 대사를 주어 형상하는것보다 말 없는 행동으로 형상하는것이 더 나은 때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깊은 사색에 잠기거나 불의에 맞다든 뜻밖의 정황에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을 때에는 말 없는 행동이 몇백마디의 대사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말 없는 행동이 더 뜻깊은것으로 되자면 그것이 다 앞뒤장면의 대사와 내적으로 밀접하게 련관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행동이 순수 외적인 동작으로만 표현될 때에는 아무런 형상적의미도 나타내지 못합니다.

희곡의 대사는 명대사로 되여야 합니다. 뜻이 깊고 알기 쉬우며 들을 맛이 나는 대사가 명대사입니다. 비록 한두마디의 간단한 대사라 하여도 새겨 볼수록 깊은 뜻이 있고 철학적사색을 불러 일으키는 대사, 생활의 진리를 깨우쳐 주고 교훈을 주는 대사가 바로 명대사입니다.

명대사는 뜻이 깊으면서도 내용이 뚜렷하고 알기 쉽기때문에 한번 들어도 잘 잊혀지지 않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에서 딸의 잔치에 쓰려던 돼지까지 잡아 성황당에 제를 지내려는 복순 어머니의 기막힌 정상을 보고 돌쇠와 만춘이 가슴을 치면서 말하는 대사라든지, 성황당에 불을 지르자는 만춘의 말에 빈집에 불을 지를것이 아니라 미신에 빠진 사람들의 머리속에 불을 질러야 한다는 돌쇠의 대사는 누구에게나 선뜻 리해되면서도 깊은 뜻을 담고 있는 명대사입니다. 이런 대사가 사람들에게 그처럼 큰 공감을 주는것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죽지 못해 살아 오면서도 그것을 타고 난 팔자탓으로 여기며 유복녀인 자기 딸에게만은 그 사나운 사주팔자를 물려 주지 않으려고 무당의 꼬임에 빠져 액풀이를 하려는 복순 어머니의 쓰라린 생활체험과 깊이 잇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혁명연극 《혈분만국회》에서 일제와 미제의 책동으로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할수 없게 된 주인공이 우리에게는 살아서 돌아 갈 조국이 없고 죽어서 묻힐 조국이 없다고 하면서 망국노의 설음을 두고 통탄하는 대사나 배를 가르고 자결하는 마지막순간에 내 할수만 있다면 저 하늘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볼수 있도록 붉은 피로 남의 힘을 믿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글을 새겨 놓고 싶다고 절절하게 부르짖는 대사에는 주인공 리준의 한생의 총화와 피의 교훈이 집약되여 있을뿐아니라 작품의 종자가 철학적으로 심오하게 밝혀 져 있습니다. 희곡의 대사는 이렇게 사상적내용이 명백하고 철학적깊이가 있게 되여야 하며 인물의 생활체험에서 우러나 오는것으로 되여야 합니다.

희곡의 대사를 명대사로 만들려면 이야기하려는 사상의 요점을 통속적인 말로 간명하게 표현하여야 합니다. 씨가 먹지 않은 빈말을 길게 늘어 놓거나 같은 말을 곱씹으며 격에 어울리지 않게 성구와 속담을 쓰면서 말재간을 부리려 하여서는 안됩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대사에 성구와 속담을 쓸수 있지만 그것도 격에 맞게 써야 빛이 날수 있습니다. 멋없이 말재간을 부리면 대사가 까다롭게 되거나 저속하게 되여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게 되며 결국 작품의 품위를 떨어 뜨리게 됩니다. 백마디의 설명적인 대사보다 씨가 박힌 통속적이며 간명한 한마디의 명대사가 더 힘 있는 작용을 합니다.

희곡의 대사를 명대사로 만들려면 인물의 성격과 극의 정황에 맞게 써야 합니다. 성격과 정황에 어울리는 생활적인 대사가 명대사입니다. 대사가 성격과 정황에 맞게 되여야 인물의 성격적특징과 생활의 본질을 명백하게 밝혀 낼수 있습니다.

혁명연극 《3인 1당》에서 세 정승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는 말싸움장면은 대사를 인물의 성격과 극의 정황에 맞게 쓴 좋은 실례입니다. 왕이 죽고 외래침략군의 침입이 눈앞에 박두한 위급한 정황속에서 세 정승이 빨리 시국을 수습하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출할 대책을 세울 대신 서로 왕자리를 노려 제가끔 자기가 충신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을 모함하고 물어 뜯는 대사는 탐위욕에 눈이 어두워 진 파쟁군의 진면모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으며 파쟁은 망국이라는 력사의 진리를 철학적으로 심오하게 밝혀 내고 있습니다. 세 당파에 속해 있는 군대를 통합하는것이 백마국의 침입을 막고 나라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박정승의 대사나 강약이 부동한 정황에서는 큰 나라에 원병을 청하는것이 현명한 방책이라고 주장하는 문정승의 대사나 이런 위급한 때에는 한걸음 물러 서서 사태를 수습하고 힘을 키워야 한다고 우기는 최정승의 대사는 다 인물의 성격적특징을 표현하는 개성적인 말로 되여 있기때문에 서로 룡상에 올라 앉으려고 회유와 권모술수, 사기와 협잡, 배신과 매국의 무서운 각축전을 벌리는 세 정승의 표리부동한 몰골을 생동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들을 재미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무대에서 직접 보지 않고 대사만 읽어 보아도 큰 몸집에 여차하면 칼부터 빼드는 무관형의 무지막지한 박정승과 말끝마다 왕족출신이라고 점잔을 빼지만 속에는 흉심을 품은 문정승과 교활하고 표독스럽기 그지없는 최정승의 성격적특징을 생동하게 그려 볼수 있을것입니다.

대사는 인물의 사상감정과 심리상태의 변화를 예리하게 드러내며 그가 처한 생활정황을 가장 적중하게 반영하는것으로 될 때 명대사로 될수 있습니다. 명대사를 그 어떤 묘한 말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작가들은 명대사 몇마디만 있으면 작품이 다 되는것처럼 생각하고 멋진 말마디를 만들어 내느라고 신경을 쓰고 있는데 한두군데 나오는 멋진 말로 작품의 주제와 사상이 밝혀 지는것은 아닙니다. 명대사는 멋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물의 사상감정과 생활을 진실하게 살려 내여 작품의 주제와 사상을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밝혀 내기 위해 필요합니다. 작가는 어느 한두대목에서가 아니라 작품전반을 인물의 성격과 극의 정황에 맞는 생활적인 대사로 엮어야 합니다.

희곡에서 대사는 작가의 말이 아니라 극인물의 말로 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극작품을 보면 작가가 자기의 사상과 의도를 직선적으로 로출시키는 대사가 적지 않습니다. 작가의 주관에 의하여 미화된 대사는 관중으로 하여금 인물자체의 성격을 믿지 못하게 할뿐아니라 작품의 진실성에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작가가 주관적으로 꾸며 낸 설명적이고 미화된 대사는 인물의 성격형상을 높이지 못합니다.

희곡의 대사를 명대사로 만들자면 대사를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써야 합니다.

희곡에서 대사는 서술적인 말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로 되여야 합니다. 인물의 대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친숙한 말로 되여야 관중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수 있고 예술적가치와 설득력을 가질수 있습니다. 대사를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쓰기 위하여서는 인민이 늘 쓰는 생활적인 말을 골라 써야 합니다. 지난 날의 연극에서와 같이 서술적인 대사나 무대적인 대사를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생활적인 대사를 쓰지 않고 서술적인 대사나 무대적인 대사를 쓰면 그 대사를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도 자연히 무대적인 틀에 매이게 되며 나중에는 연기를 형식적으로 할수 있습니다. 종래의 연극이 사람들이 버림을 받게 된 주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생활과 인연이 없는 형식주의적인 무대적대사를 쓴것과 관련되여 있습니다.

희곡에서 생활적인 대사를 쓰는것은 생활적인 대사가 노는 중요한 형상적기능과도 관련됩니다.

작품의 사상적내용이 아무리 새롭고 좋다고 하여도 대사가 생활적인것으로 되지 못하고 딱딱하며 개성이 없는것으로 되면 형상이 참신하지 못하고 작품의 주제사상적내용도 감명 깊게 밝히기 곤난합니다. 생활에서 인민이 늘 쓰는 말처럼 생활적인 정서가 있고 풍부한 생활체험과 감정축적에 기초하고 있으며 조성된 정황과 계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생활적인 대사를 써야 작품의 형상성을 높일수 있습니다.

대사를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쓰는것은 희극적인 양상을 띤 작품에서 더욱 절실하게 나섭니다. 희극이라고 하여 대사와 행동을 과장하고 화화하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희극의 웃음은 인위적인것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생활로부터 스스로 흘러 나오는것으로 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날에는 희극이라고 하면 덮어 놓고 우습게 되여야 한다는 전제밑에 우스운 말과 행동으로 인물의 성격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더우기 풍자극에서는 처음부터 웃기려는 욕망만 앞세우던 나머지 생활의 론리를 무시하고 허황하고 우스운 말로 엮어 나가려는 현상이 많이 나타났으며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겼습니다. 그전에 영화예술인들이 소품을 가지고 무대공연을 할 때에도 풍자희극이라고 하여 덮어 놓고 과장된 연기와 우스운 대사로 관중을 웃기려는 경향이 심하였기때문에 희극일수록 생활을 진실하게 그려야 하며 인물성격의 론리와 극의 정황에 맞는 생활적인 대사를 써야 한다고 지적해 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혁명연극《성황당》을 창조하던 초기에도 역시 같은 결함이 반복되였습니다. 그래서 조건적인 정황이요 뭐요 하면서 대조와 강조, 과장의 수법은 인위적으로 쓰는 종래 희극의 낡은 틀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우리 식의 새로운 연극을 창조할수 없겠다고 보고 그것을 없애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리도록 하였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이 지난 날의 풍자극에서처럼 인물의 성격과 생활을 일면적으로 화화하지 않고 해학적인 웃음도 있고 풍자적인 웃음도 있으며 기쁨과 슬픔도 있고 인정미도 있는 새형의 연극으로 될수 있은것은 인물의 성격과 생활자체에서 웃음이 스스로 흘러 나오도록 대사를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쓴데 있습니다.

작가는 생활적인 대사를 진실하게 쓰는것이 연극의 사상예술성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된다는것을 명심하고 생활적인 대사를 진지하게 탐구해 나가야 합니다.

생활적인 대사를 쓰는데서 중요한것은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하는것입니다. 인민의 언어생활은 시대의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새롭게 변하고 풍부화됩니다. 시대감이 나는 생활적인 대사를 쓰자면 그 시대의 언어생활을 정확히 반영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시대속에서 살며 그 영향을 받기때문에 인물의 대사에는 당대의 사회적풍조가 반영되지 않을수 없습니다. 력사물에서 당대에 쓰던 말을 쓰지 않고 오늘 우리가 쓰는 말을 그대로 써도 안됩니다. 대사를 력사물에서는 력사물맛이 나고 현실물에서는 현실물맛이 나게 써야 합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연극들의 대사에는 당대의 시대상과 각계층인민의 생활이 진실하게 반영되여 있기때문에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관중으로 하여금 당대사회의 생활을 그대로 생동하게 보게 합니다. 작품마다 문풍은 고유하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아야 하며 력사주의적원칙에 어긋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생활환경이나 사건, 풍물 같은것을 시대에 맞게 잘 그린다고 하여도 인물의 대사가 한마디라도 시대에 맞지 않게 되면 형상전반이 진실성을 잃게 됩니다.

생활적인 대사를 쓰는데서 또한 중요한것은 경제와 문화, 사상과 도덕의 모든 분야에서 쓰고 있는 생활적인 말을 잘 골라 쓰는것입니다. 경제와 문화 사상과 도덕의 모든 분야에서 쓰이는 말이 그 시대 언어생활의 기본내용을 이루는것만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가 한마디라도 있게 되면 관중은 작품에 그려 진 시대와 생활을 믿지 않습니다. 비록 생활적인 말이라고 하여도 시대에 맞지 않거나 저속한 표현은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합니다. 언어생활에서 친근감을 아 내게 한다고 하여 우리 민족의 고유한 례법을 무시하여서는 안됩니다. 일가친적과 가까운 이웃사이의 언어생활에서 친근감은 도덕적으로 고상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말을 쓸 때에만 생겨 날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례법 어긋나고 문화적으로도 고상하지 못한 표현은 작품의 풍격을 떨어 뜨릴뿐아니라 인민의 언어생활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수 있습니다. 작가는 온갖 낡은것을 쓸어 버리고 끊임없이 고상하고 아름다운것을 창조하여 나가는 실생활에 깊이 파고 들어 거기에서 문화적이며 시대감이 나는 새로운 말을 적극 찾아 내여 써야 합니다.

희곡에서 대사는 행동과 밀착되여야 합니다.

대사가 행동과 밀착되여야만 진실하고 생활적인 대사로 될수 있으며 뜻이 깊고 알기 쉬운 명대사로 될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대사가 행동으로 안받침되지 않으면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될수 없습니다. 극적인 대사는 극적인 행동을 낳고 극적인 행동은 극적인 대사를 낳는것만큼 행동과 밀착되지 않은 대사는 진실한 대사로 될수 없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의 절정장면에서 복순의 어머니가 내가 못산건 사주팔자때문이 아니라 이 도깨비당을 믿었기때문이라고 하는 대사는 제손으로 성황당을 까부시는 행동과 생활적으로 밀착되여 있기때문에 그처럼 커다란 극적감흥과 통쾌감을 안겨 주며 관중에게 지울수 없는 깊은 인상을 줍니다.

 

4) 양상은 극형상의 정서적색갈

 

문학예술작품창작에서는 생활의 다양한 정서적색갈을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드러내는 양상을 똑바로 잡는것이 중요합니다.

문학예술작품의 양상은 생활의 본색을 정서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내는 형상의 독특한 색갈입니다.

생활의 정서적색갈이 다양한것만큼 문학예술작품의 양상도 여러가지입니다. 같은 극적인 생활을 반영하는 희곡이라고 하여도 거기에는 아름답고 고상한 감정으로 차 넘치는 정극이 있고 다양한 웃음으로 일관된 희극이 있으며 슬픔과 비장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비극이 있습니다. 정극과 희극, 비극은 어디까지나 희곡의 기본종류이며 그 매 종류마다에는 다양한 형태와 그에 따르는 여러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생활이 다양하고 예술에 대한 사람의 요구도 같지 않으며 작가의 창작적개성도 각이한것만큼 작품마다 서로 다른 양상을 가지게 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희곡을 창작할 때에는 양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양상을 바로 잡아야 생활의 본질적특을 정서적으로 선명하게 나타낼수 있고 말하려는 내용을 인상 깊게 돋굴수 있으며 작품의 형태상 특성을 더 잘 살릴수 있습니다. 지금은 작품의 양상에 대하여 홀시하는 사람이 없지만 연극혁명을 하던 초기에만 하여도 양상을 바로 잡고 그것을 형상창조의 전 과정에서 일관하게 살려 나가기 위하여 머리를 쓰는 사람이 그리 많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는 극작품에서 정극이라고 하면 이야기를 그저 심각하게 꾸미고 희극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웃기려고만 하면서 작품의 양상을 살릴데 대하여서는 론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기 문학예술부문에서는 작품을 평가할 때에도 인물의 성격과 구성, 갈등과 같은 문제에 대하여서는 많이 론의하였지만 작품의 정서적색갈을 규정하는 양상에 대하여서는 거의나 도외시하였습니다.

작품의 정서적색갈을 규정하는 양상을 바로 잡는것은 희곡창작에서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입니다.

작품의 양상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것은 그 어떤 형상수법이나 기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생활을 어떻게 보고 그리는가 하는 창작가의 립장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전에 영화예술인들이 풍자소품을 가지고 무대공연을 할 때에도 말하였고 국립연극단에 나가서도 말하였지만 희곡에서 양상을 바로 잡지 못하면 정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닌 범벅극이 될수 있습니다. 풍자극인 경우에도 풍자의 농도와 웃음의 색갈이 한결 같지 않습니다. 작품전반이 신랄한 풍자로 일관된것도 있고 풍자적인것과 정극적인것이 자연스럽게 조화되여 독특한 양상을 띤것도 있습니다. 경희극인 경우에도 인물성격과 생활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면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다양한 색갈을 띤 웃음이 있을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양상은 하나의 정서적색갈로 일관되여야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작품의 특성에 따르는 정서적색갈을 똑바로 잡지 않고 정극이나 희극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정서적색갈로 형상을 통일시키는 경우에는 작품이 그에 고유한 개성적인 특색을 살리지 못하여 볼 맛이 없게 될수 있습니다. 연극과 같은 종합예술에서 양상을 바로 잡고 일관하게 살려 내지 못하면 배우연기와 무대미술, 음악이 내용과 맞지 않게 되고 장면마다 색갈이 다르게 되여 관중에게 혼란을 줄수 있습니다.

작품의 양상은 종자에 기초하여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론리에 맞게 잡아야 합니다.

종자에 의하여 작품의 양상이 규정됩니다. 작가가 종자를 잡았다고 할 때에는 벌써 작품의 주제와 사상은 물론, 그것을 예술적으로 꽃 피울수 있는 형상요소와 양상까지 포착하였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종자를 잡았는데도 형상요소와 양상을 예상할수 없다면 그것은 종자를 바로 잡았다고 볼수 없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을 창조할 때 창작가들이 양상을 똑바로 잡지 못하여 좌왕우왕하게 된 원인은 작품의 종자에 대한 깊은 파악이 없이 창작에 달라붙은데 있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의 바탕에는 《하느님》이나 《귀신》을 믿을것이 아니라 제힘을 믿어야 한다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가 심어 져 있습니다. 바로 이 사상적알맹이로부터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으며 사색도 있는 풍자극으로서의 독특한 정서적색갈이 흘러 나옵니다. 사람은 《하느님》이나 《귀신》을 믿을것이 아니라 제힘을 믿고 자기 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종자를 밝히자면 종래의 풍자극에서와 같이 단순히 풍자의 대상으로 되는 부정인물만 내놓고 풍자하여서는 안됩니다. 종교와 미신을 반대하는 긍정인물도 등장시켜 그들의 성격과 생활을 통하여 종교와 미신이 비과학적이라는것을 발가 놓아야 하며 종교와 미신을 믿던 사람들이 거기에서 벗어나 자기 힘을 자각하는 과정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로부터 작품에는 지주와 구장, 무당, 전도부인, 과 같은 부정인물들사이의 관계로부터 흘러 나오는 풍자적인 양상과 함께 돌쇠를 비롯한 긍정인물들사이의 관계로부터 흘러 나오는 정극적인 양상도 있게 되는것입니다.

풍자극이라고 하여 정극적인 요소를 허용하여서는 안되며 긍정인물을 내놓지 말아야 한다고 보는것은 풍자극에 대한 낡은 관념입니다. 풍자극도 생활의 론리를 따라야 합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이 부정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던 종래의 풍자극과는 달리 긍정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된것은 종자의 요구에 맞게 생활을 그려야 하였기때문입니다. 극작품에서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가 하는 문제는 정극이냐 희극이냐 하는 형태상 특성에 따라 규정되는것이 아니라 작가의 사상미학적견해와 작품에 반영되는 생활에 의하여 규정됩니다. 이것은 혁명연극《3인 1당》과 《경축대회》를 보아도 잘 알수 있습니다.

혁명연극《3인 1당》은 비록 환상적인 나라이기는 하지만 송도국의 멸망이라는 심각한 비극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정극적인 요소가 없으며 긍정인물이 없습니다. 그것은 파쟁과 분렬은 망국의 길이라는 작품의 종자를 체현하고 그것 형상으로 실현하는 인물이 다름아닌 권세욕에 환장이 된 세 정승이고 그들이 왕위를 둘러 싸고 각축전을 벌리는 활무대가 궁중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극에 정극적인 요소가 있을수 없고 긍정인물이 등장할수 없다는것은 명백합니다.

혁명연극《3인 1당》의 양상에서 특징적인것은 제가끔 룡상에 올라 앉으려는 망상에 사로잡혀 서로 상대방을 모함하고 물어 뜯으며 제딴에는 대담하게 행동하는데서 오는 희극적주인공들의 주관적욕망과 현실사이의 모순, 본질과 현상사이의 모순, 의도와 결과사이의 모순이 불러 일으키는 신랄한 풍자적웃음으로 일관되여 있는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같은 풍자극이면서도 양상에서 혁명연극《3인 1당》이 《성황당》과  다른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혁명연극《경축대회》는 풍자적인것과 정극적인것, 정서적인것이 잘 조화되여 있는 혁명연극《성황당》과도 다르며 풍자적형상으로만 일관되여 있는 혁명연극《3인 1당》과도 구별됩니다. 혁명연극《경축대회》는 적들의 《경축대회》를 항일유격대의 경축대회로 전환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것만큼 풍자적인것과 정극적인것이 배합되여 있으며 부정인물만 나오는것이 아니라 긍정인물도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작품에 항일유격대와 지하공작원을 비롯한 긍정인물을 등장시켰다는 사실자체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희극적양상을 깨뜨리지 않고 허장성세하는 적들의 추악한 몰골을 신랄한 풍자와 통쾌한 웃음으로 불 살라 버렸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혁명연극《경축대회》는 적들의 내부모순을 보여 주는 풍자적인 생활과 유격대와 지하공작원들의 활동을 보여 주는 정극적인 생활을 하나의 줄거리속에 무리없이 잘 배합해 나감으로써 풍자극에서 풍자적인것과 정극적인것을 조화시키는 문제를 잘 해결하였습니다.

혁명연극《경축대회》에서 풍자적인것과 정극적인것을 잘 조화시킬수 있은것은 적들의 내부모순을 보여 주는 풍자적인 생활을 정극에서와 같이 과장이 없이 그렸기 때문입니다. 혁명연극《경축대회》에서는 일제의 《토벌대》가 유격대의 유인전술에 걸려 제편끼리 싸움을 하여 경찰대를 몽땅 죽이고도 유격대를 《섬멸》하였다고 《경축대회》를 벌리려는 내용을 취급하였기때문에 연기를 과장하지 않아도 풍자적인 양상을 띠게 되여 있습니다. 제놈의 잘못을 감추고 상부에 허위보고를 하여 《경축대회》를 벌리려는 《토벌대》대장과 그 진상을 밝혀 내여 《토벌대》대장을 제끼고 그자리를 타고 앉으려는 《토벌대》참모장사이에 벌어 지는 개싸움바람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경찰서장이 죽은 사람으로 되기도 하고 정신병자로 되기도 합니다. 관동군사령부 부참모장은 이 모든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척 하면서《대일본제국》의 《명예》를 위해 성대한 《경축대회》를 벌릴것을 명령합니다. 관중은 연극을 보면서 적들의 내부모순을 스스로 알게 되여 그들의 허황한 망상과 추악상에 조소를 보내게 됩니다.

혁명연극《경축대회》가 양상면에 있어서 풍자적인것과 정극적인것의 조화를 실현하는데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수 있은것은 앞부분의 풍자적인 장면과 뒤부분의 정극적인 장면을 극적으로 무리없이 련결시키면서 감정조직을 잘해 나간데도 있습니다. 이것은 항일유격대의 공격에 얼이 나간 《토벌대》대장이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 보겠다고 조선두루마기에 벙거지를 뒤집어 쓰고 도망치다가 잡혀 온 그 가한 몰골을 보고 퍼붓는 관중의 조소와 규탄의 웃음이 승리한 유격대의 경축대회장에 울려 퍼지는 통쾌한 웃음으로 전환되는 연극의 종장만 보아도 잘 알수 있습니다.

작품의 양상은 이렇게 종자에 기초하여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론리에 맞게 잡아야 뚜렷하게 살아 날수 있고 형상을 진실하게 돋구는데 작용할수 있습니다.

양상은 작품의 인식교양적목적에 맞게 잡아야 합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은 원래 종교와 미신을 믿는 일부 사람을 풍자적으로 조소할 목적으로 창작된 작품이 아니라 종교와 미신의 비과학성을 폭로하고 자기 힘을 믿도록 인민을 깨우칠 목적으로 창작된 작품입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이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고 사색도 있는 독특한 양상을 가진 작품으로 된것은 종교와 미신의 비과학성을 발가 놓고 인민들에게 자주정신을 심어 주려는 교양적목적을 세운것과 관련되여 있습니다. 지난 날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갖은 굴욕과 무지몽매한 생활을 강요 당하면서도 그것을 타고 난 팔자로 여기고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그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 날수 없으며 오직 《하느님》이나 《신령》만이 자기를 구원해 줄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인민들을 깨우쳐 혁명투쟁에 떨쳐 나서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그들이 종교와 미신의 비과학성을 인식하고 거기에서 벗어나 자기 힘에 대한 자각을 가지도록 각성시키는것이 중요하였습니다. 작품은 바로 이러한 교양적목적으로부터 종교와 미신의 비과학성을 폭로하는 풍자적웃음만이 아니라 복순 어머니 같은 인물의 어리석은 행동을 나무라면서도 동정하는 서글픈 웃음도 있으며 고민도 있고 눈물도 있는 독특한 양상을 띠게 되였습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인간생활에서 벌어 지는 모든 일이 다 희극의 대상으로 되는것은 아닙니다. 우스운 이야기도 생활의 본질을 반영한것으로서 사회적비판의 성격을 띠고 교양적목적이 뚜렷하여야 희극의 대상으로 됩니다. 희극은 우스워야 하며 우습지 않으면 희극으로서의 특성을 잃게 된다고 하면서 시종일관 웃기려고만 한다면 생활을 외곡하게 될뿐아니라 관중을 무시하게 됩니다. 희극이라고 하여 시종일관 웃음으로만 관통되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인위적으로 웃기려고만 한다면 그런 웃음은 조작적이며 가식적인것으로 되여 작품의 품위를 떨어 뜨리게 됩니다. 희극은 웃음을 통하여 사람들을 교양하는 사색적인 예술입니다. 작품마다 내세우는 교양적목적이 다르고 양상이 달라서 웃음의 색갈이 서로 다르지만 희극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한바탕 웃고 나서 그 웃음속에 깔린 사회적문제성을 두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여야 합니다. 단순히 웃음으로만 그치는 희극은 본래의 의미에서의 예술이 아닙니다. 희극에서 웃음은 단순히 웃음을 위한 웃음이 아니라 사회적의의를 가지는 웃음으로 되여야 합니다.

작품의 양상은 종자의 요구와 작품의 인식교양적목적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습니다. 작품의 양상을 미리 정하여 놓고 거기에 생활내용을 맞추려는것은 옷을 미리 재단하여 놓고 거기에 사람의 을 맞추려는것과 같이 어리석은것입니다.

양상은 작품의 구성상 특성에도 맞게 잡아야 합니다. 생활에서는 다양한 정서가 서로 작용하고 침투하면서 하나의 일관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것만큼 작품의 양상은 구성상특성에 맞게 잡아야 형상의 정서적특징을 더욱 생동하게 돋구어 줄수 있습니다.

혁명연극《성황당》만 보아도 거기에는 돌쇠를 비롯하여 긍정인물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의 생활에는 고통과 눈물만 있는것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도 있습니다. 풍자극이라고 하여 이러한 생활을 무시하고 풍자적인 웃음 하나로만 관통시키려고 한다면 생활을 외곡하게 됩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을 창조할 때 풍자극이라는 전제밑에 정인물도 풍자적으로 형상하던 현상을 극복하고 생활의 본색에 맞게 풍자적인 웃음을 위주로 하면서도 거기에 정극적인 요소를 잘 배합하여 형상하였기때문에 그 작품 독특한 양상을 가진 작품으로 완성될수 있었습니다.

혁명연극《딸에게서 온 편지》에서도 정서적색갈이 서로 다른 생활을 유기적으로 잘 조화시켰습니다. 혁명연극《딸에게서 온 편지》는 지식은 광명이고 무식은 암흑이라는 생활의 진리를 해학적인 웃음속에서 깊이 있게 밝히고 있습니다. 작품은 배우기 싫어 하고 모르면서도 아는체하다가는 남의 웃음거리로 될수 있다는것과 사람은 알아야 자주적인간으로 존엄 있게 살수 있다는 생활의 참된 진리를 밝힌것으로 하여 큰 의의를 가집니다. 이 작품에는 복잡한 사건이 없습니다. 글을 배우기 싫어 하는 주인공이 남의 웃음거리로 되는 사건을 중심에 놓고 생활세부를 집중시킴으로써 구성을 간결하게 세우면서도 말하려는 사상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허달수는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며 일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면서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는 근면하고 성실한 농군입니다. 그러나 그는 글이란 옛날부터 과거급제를 하여 벼슬을 하자고 하는 량반이나 배울 필요가 있는것이지 한평생 호미자루나 잡고 일을 해야 할 농사군에게는 아무런 리득도 가져다 주는것이 없으며 오히려 화만 가져 오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세상리치는 알지 못하면서 마치도 자기가 제일 잘 아는것처럼 자처합니다. 작품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뒤엉켜 있는 주인공의 모순된 성격에서 희극적인것이 어떻게 극복되는가 하는것을 딸에게서 온 편지사건을 둘러 싸고 벌어 지는 웃지 못할 희비극을 통하여 생동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혁명연극《딸에게서 온 편지》는 배우기 싫어 하고 모르면서도 아는체하다가 남의 웃음거리로 되는 희극적성격을 생활적으로 깊이 있게 보여 주는 한편 사람에게 계급의식을 넣어 주고 혁명의 리치를 깨우쳐 주는 야학선생의 형상도 해학적인 색갈과 정극적인 색갈이 조화된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희극적인 생활선과 함께 주인공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생활선과 야학선생을 비롯한 긍정인물의 생활에서 흘러 나오는 정극적인 정서가 형상전반에 진하게 깔리도록 하였습니다. 총체적으로는 이야기를 정극적으로 끌고 가면서도 거기에서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정극적인 생활과 희극적인 생활을 유기적으로 조화시켜 극조직을 한 여기에 바로 웃음과 정서도 있고 사색도 있는 이 작품의 독특한 색갈이 있습니다.

혁명연극《딸에게서 온 편지》와 같은 경희극은 오늘 연극예술과 영화예술분야에서 적지 않게 창조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초에 연극《산울림》이 나온후부터 다양한 양상의 경희극이 많이 창작되였습니다. 그가운데는 정극적인것과 결합된것도 있고 해학적인것과 결합된것도 있으며 서정적인것과 결합된것도 있습니다.

희곡작품의 양상은 예술형태의 특성에 따르는 요구를 옳게 살리면서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비위에도 맞게 잡아야 합니다.

생활을 반영하는데서 희곡은 연극적특성을 띠여야 하는것만큼 양상은 그에 맞는 독특한 정서적색갈을 가져야 그 특성을 바로 살릴수 있습니다. 작품의 정서적색갈을 독특하게 살린다고 하면서 양상을 희곡의 특성에 맞지 않게 잡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양상은 희곡의 특성을 살려 내는데 작용하여야 작품의 정서적색갈을 돋구는데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될수 있습니다.

희곡의 양상은 시대와 함께 변화발전하는 인민의 미감에 맞아야 합니다. 양상은 결코 고정불변한것이 아닙니다. 사회주의현실생활을 반영하는 정극에서는 근로자들 호상간의 문제를 취급하는 작품에서 극적갈등을 설정하는 경우 그것을 우리 인민의 미감에 맞게 외적으로 격렬하게 그리지 않고 내적으로 심각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력사적사실을 반영하는 정극에서도 시대의 요구와 우리 인민의 미감에 맞게 새로운 양상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같은 정극이라 하여도 그 양상 다양합니다. 정극에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공연된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연극《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아버지는 이겼다》, 《유언을 받들고》와 같이 사람들을 혁명투쟁에로 불러 일으키는것도 있고 연극《붉은 선동원》과 같이 사람의 사상개조과정을 극적으로 깊이 있게 그린 심각한것도 있으며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겨 나는 극을 파헤치는 심리적인것도 있고 밝고 명랑한 정서로 넘치는 서정적인것도 있습니다.

비극의 경우에도 양상이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비극의 중요한 형상적특징은 주인공이 투쟁에서 희생되거나 그의 리상과 지향이 좌절되는데서 오는 슬픔과 비분강개한 정서에 있습니다. 착취사회에서 사실주의적비극 주인공은 진보적인 리상과 지향을 가지고 있으나 세계관 제한성과 사회력사적조건의 불가피성으로 하여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희생되는 인간입니다. 이런 주인공은 력사적필연성과 그것을 실현할수 없게 하는 사회력사적조건사이의 모순을 반영하면서 자신의 희생과 죽음으로써 진보적인 리상과 지향의 정당성을 확증하게 됩니다. 이런 주인공의 죽음과 사회제도의 모순이나 인물성격의 자체모순에 의하여 야기되는 비극적체험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동정을 불러 일으키며 그들을 정의를 위한 투쟁에로 고무하는 작용을 합니다. 전통적인 비극과는 달리 사회주의사회에서 혁명적비극의 주인공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고상한 지향과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다가 원쑤들의 책동이나 자연재해로 그 뜻을 실현하지 못한채 희생되거나 자기희생으로써 그 뜻을 실현하는 인간입니다. 이런 주인공의 죽음은 혁명위업에 대한 끝 없는 충실성과 자기희생정신, 사회정치적집단과 동지들에 대한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의 산모범을 보여 주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과 동정을 불러 일으키며 대중을 영웅적위훈에로 고무하는 커다란 작용을 합니다. 혁명적비극에서 주인공의 영웅적희생은 영원히 살며 빛나는 인간의 참된 삶에 대한 주체적인 리해에 기초하여 이루어 지는 혁명적이며 랑만적인것으로 됩니다. 혁명적비극에서 주인공은 어떤 정황속에서 희생된다 하여도 비록 육체적생명은 끝이 있지만 정치적생명은 영원하듯이 조국과 인민과 더불어 영생하는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혁명적비극에서 주인공의 영웅적죽음이 전통적인 비극에서 주인공의 비극적운명과 다른 양상적차이가 있게 되는것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연극《혈분만국회》,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전통적인 비극형태이기는 하지만 종래의 력사물비극과는 달리 지난 날의 력사적사실에서 교훈을 찾고 력사적인물의 지위와 그의 시대적제한성을 밝히는 과정을 통하여 의의 있는 사회적문제를 천명함으로써 력사극창조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되였습니다. 작품에서 리준이나 안중근이 력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인물이라고 하여 그들을 결코 오늘의 혁명투사나 민족적영웅처럼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연극《혈분만국회》에서는 《헤그밀사사건》을 절정으로 하는 주인공 리준의 국권회복을 위한 활동과정을 실지 있은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당대사회의 시대상과 각계층 인물들의 생활을 진실하게 보여 주면서 남의 힘을 믿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상을 깊이 있게 밝혀 내고 있습니다. 이 사상은 주인공 리준의 한생의 총화이고 피의 교훈이며 력사의 진리입니다. 남의 힘을 믿고 그에 의거할 때에는 애국심마저 무참히 롱락당하고 짓밟히게 되며 민족자주의식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생활의 진리를 주인공 리준의 운명선을 통하여 극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혁명연극《혈분만국회》는 주인공 리준을 지난 날의 비극작품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인물로, 자기의 진보적인 리상과 지향을 좌절당한 력사의 단순한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자결하는 마지막순간에 남의 힘을 믿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력사의 교훈을 절절하게 호소하는 인물로 그렸습니다. 력사물비극창작에서 양상을 새롭게 개척할수 있은 이 작품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문학예술작품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매개 형태에 따르는 양상을 다양하게 잘 살려야 합니다. 같은 종류, 같은 형태의 작품이라 하여도 양상이 뚜렷하여야 특색 있는 작품으로 될수 있습니다.

 

3. 연극무대형상

 

1) 연출은 창조와 령도의 예술

 

연출은 창조의 예술이며 령도의 예술입니다. 연출에서 령도는 예술창조를 위한것입니다. 연출가의 실천활동에서 창조와 지도는 서로 뗄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연출가는 언제나 창조하면서 지도하고 지도하면서 창조합니다. 연출가가 창조와 지도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연극의 질적수준이 결정됩니다.

연출가는 창조자로서의 임무를 옳게 수행하여야 합니다.

연출가는 참다운 창조자로서 언제나 도식과 교조를 배격하고 새롭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연극창조에서 도식과 교조에 빠지면 창발성을 발휘할수 없습니다. 창조적사색 메마른 연출가는 아무리 훌륭한 희곡 차례진다 하여도 좋은 연극을 만들어 낼수 없습니다. 연출가는 모든것을 창조적으로 대하는 립장을 가져야 희곡을 무대에 옮기는 복잡한 사업을 성과적으로 밀고 나갈수 있으며 사상예술성이 높은 연극을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연출가는 희곡을 창작적주견을 가지고 대하고 형상하여야 합니다. 연출가는 희곡에 대한 자기의 창작적주견을 확고히 세우고 그것을 자기 식으로 형상하여야 합니다.

연출가에게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완전무결한 희곡은 흔치 않을것입니다. 희곡에는 연출가의 사상미학적견해와 창작적개성에 맞는것도 있고 맞지 않는것도 있을수 있습니다. 연출가는 희곡을 존중하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대로 무대에 옮겨 놓으려고 하여서는 안됩니다. 연출가는 독자적인 창작가입니다. 연출가는 독자성을 발휘하여 희곡을 자기 식으로 무대에 형상하여야 합니다. 연출가는 작가가 설친 것은 더욱 무르익히고 놓친것은 찾아 내여 형상을 보다 완벽하게 완성하는 립장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연출가는 창조성을 발휘하는데서 작가처럼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작가는 현실에서 종자와 성격, 사건을 마음대로 골라 잡을수 있지만 연출가는 오직 희곡에 설정된 종자와 성격, 사건만을 다루게 됩니다. 연출가의 창조적사색은 언제나 희곡으로부터 시작되며 희곡을 살리는데로 지향되여야 합니다. 연극에 대한 연출적구상은 희곡의 종자에 기초하여야 합니다. 종자는 연출가에게 있어서 연출작업의 방향을 주는 기초입니다. 연출가는 희곡에 담겨 진 종자를 깊이 분석한데 기초하여 그에 열렬히 공감하여야 하며 그것을 해명하는데 모든 형상수단을 집중시키는 방향에서 연출적구상을 심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창조과정에 연출가의 생활체험과 예술적환상을 불러 일으키는것도 희곡입니다. 창조사업에서 작가가 현실에 튼튼히 의거하여야 하듯이 연출가는 희곡에 철저히 의거하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연출가가 희곡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 놓으려 하여서는 안되며 무대의 특성에 맞게 다시 창조하여야 합니다.

희곡과 연극은 뗄수 없는 관계에 있지만 서로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학의 형상수단인 언어는 현실에 있는 모든 사물현상을 방불하게 그려 낼수는 있어도 그것을 연극처럼 직접 보여 줄수는 없습니다. 문학형상은 언어로 고착되여 있기때문에 사람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생활의 모습을 그려 볼수는 있어도 직접 보거나 들을 수는 없습니다. 무대의 특성을 아무리 잘 구현한 희곡이라고 하여도 이러한 제약성은 면할수 없습니다.

연출가는 연출구상단계부터 희곡을 무대를 통하여 보아야 합니다. 희곡은 무대에서만 자기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낼수 있으며 생동하게 살아 날수 있습니다. 무대는 희곡이 생동한 화폭으로 펼쳐 지는 마당입니다. 연출가는 자기의 창조적인 눈으로 희곡을 보아야 그것을 무대에 옮겨 놓을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하는것을 정확하게 가늠할수 있으며 그것에 대한 형상방향을 옳게 세울수 있습니다.

연출가는 대사를 통하여서도 인물의 성격과 생활을 그려 보아야 합니다. 연출가는 하나하나의 대사를 깊이 분석하면서 인물들의 성격을 리해하고 그속에 깔려 있는 생활을 찾아 내여 무대우에 산 인간형상, 생동한 생활을 펼쳐 놓아야 합니다. 연출가는 장과 장사이에서 생략된 생활과 무대에서 직접 보여 주지 못하는 뒤생활도 다 볼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연출가는 모든 생활을 하나의 전일적인 화폭으로 그려 보면서 무대우에 조화로운 생활장면을 펼쳐 놓을수 있습니다.

연출가는 희곡에 그려 진 형상이 문학적으로는 나무랄데 없는것이라고 하여도 무대에 어울리지 않을 때에는 아까와도 대담하게 고치든지 버리든지 하여야 합니다. 연극에서는 무대적조건에서 대사를 통하여 보여 줄수 있는것만 다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무대를 혁신하고 개조한다 하여도 무대적인 조건에서 벗어 날수는 없습니다.

연출가는 연극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며 그 운명이 결정되는 창작의 마지막공정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창조정신을 높이 발휘하여야 합니다.

연출가는 희곡의 종자를 살리는데 모든 요소를 집중시키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예술적기교를 쓰는데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형상작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형상단계에서 연출가는 자신의 예술적의도가 직선적으로 로출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특색 있는 기교라 하여도 재간을 부렸다는것이 느껴 지게 되면 형상에 손상을 주게 됩니다. 모든 형상요소를 종자를 살리는데 빈틈없이 맞물려 놓으면서도 그렇게 한것을 감촉할수 없게 하며 하나하나의 형상에 높은 예술적기교를 안받침하면서도 그것이 튀여 나지 않게 하는것이 재간이며 참다운 창조입니다.

연출가가 희곡의 문학형상을 무대의 특성에 맞게 다시 창조한다고 하여 그것을 한갖 소재로 여기면서 종자와 주제, 주인공의 성격과 기본사건 같은것을 제멋대로 뜯어 고쳐서는 안됩니다. 희곡에 철저히 의거하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 놓지 앟고 독창적으로 형상하는데 바로 연출의 창조적성격이 있습니다.

연출가는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와 구체적실정에 맞게 끊임없이 새것을 탐구하여야 합니다. 연극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 연출분야에서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였지만 그에 만족할수 없습니다. 연극부문에서 창조사업이 심화되고 많은 실천적문제가 제기되며 인민의 문화정서적요구가 날을 따라 높아 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새로운 형상방법을 적극 탐구할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새것을 탐구하며 창조하는 과정은 언제나 낡은것을 극복하기 위한 심각한 투쟁을 동반합니다. 낡은것은 스스로 없어 지지 않으며 한두번의 투쟁을 벌린다고 하여 완전히 극복되는것이 아닙니다. 낡은것은 매우 보수적이며 집요합니다. 그런것만큼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자면 낡은것을 없애기 위한 끊임 없는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창조과정은 곧 투쟁과정입니다. 투쟁이 없는 창조란 있을수 없습니다. 무대우에 펼쳐 지는 모든 새로운 형상은 창조적투쟁의 열매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낡은것을 극복하고 새것을 탐구하는 과정은 곧 도식과 모방, 교조를 반대하는 투쟁과정입니다. 창작사업은 언제나 다양하고 구체적인 대상을 놓고 진행되는것만큼 연출가는 도식과 모방, 교조를 철저히 없애고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여야 합니다. 창작사업은 그자체가 낡은 틀을 답습하는 도식과 남의것을 기계적으로 본따는 교조를 반대합니다.

연출가의 창조적활동은 현실에 철저히 의거하여야 합니다. 창작의 출발점은 현실생활입니다. 현실생활은 창작의 원천이며 대상입니다. 연출가는 현실에 발을 튼튼히 붙이고 모든것을 생활의 요구에 비추어 창조적으로 대하는 립장을 가져야 산 인간과 생활을 옳게 파악할수 있고 그에 맞는 새로운 형상방법을 찾아 낼수 있습니다.

새 인간, 새 생활은 언제나 새로운 형상방법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내용이 그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요구하는것은 하나의 법칙입니다. 연출가는 새로운 현실을 낡은 그릇에 담으려 할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릇에 담을수 있게 대담하게 개조하고 혁신하여야 합니다. 연출가는 형상수법을 하나 써도 그것이 어느 시대의 어떠한 생활적요구를 반영하여 나왔으며 이때까지 어떻게 리용되여 왔는가 하는것을 따져 보아야 하며 그것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리용할 방도를 모색하여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제도가 달라 지는데 따라 사람들의 사회적관계도 변화되는것만큼 그에 맞는 새로운 형상방법을 탐구하지 않고 옛날부터 써오던 낡은 방법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연출가는 창작가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연출가는 언제나 새 인간, 새 생활이 요구하는 새로운 형상방법을 탐구하고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기때문에 창작가라고 하는것입니다. 세상에 이름을 남긴 창작가는 다 새로운 형상세계를 탐구하고 창조한 개척자였습니다.

연출가는 창조사업에서 연극의 형태적특성을 잘 살려야 합니다. 가극은 가극맛이 나고 연극은 연극맛이 나야 합니다. 연극과 가극은 다 같은 무대종합예술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극이 노래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대사의 예술입니다. 가극이 가극맛이 나자면 노래가 좋아야 하듯이 연극이 연극맛이 나자면 대사가 들을 맛이 있어야 합니다.

연출가는 창작과정에 형상수단과 형상수법을 어디까지나 연극의 형태적특성에 맞게 써야 합니다.

연극은 무대를 전제로 하고 배우와 관중의 산 교제를 실현하는 예술입니다. 연극은 무대와 함께 태여났고 무대와 더불어 발전하여 왔습니다. 무대를 떠난 연극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연극은 무대우에서만 빛을 보게 되는것만큼 연극의 모든 형상수단을 무대조건에 맞게 써야 효과를 나타낼수 있습니다. 연극의 무대는 어디까지나 극적생활을 통하여 인물과 관중의 교제를 실현하기 위한 무대입니다. 연극은 무대를 통하여서만 극적생활을 그려 낼수 있고 인물과 관중의 교제를 실현할수 있습니다.

인물과 관중의 교제는 대사형상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그런데 연극에서 대사형상을 살리는 기본열쇠는 인물의 성격을 직접 창조하는 배우에게 있습니다. 대사는 작가가 만들어 내지만 그것을 형상하는것은 배우입니다. 연출가는 배우에게 대사를 인물의 성격과 정황에 맞게 진실하게 형상하도록 요구하여야 합니다.

연출가는 배우가 인물의 대사를 심장에서 울려 나오는 말로 형상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연출가가 배우로 하여금 인물의 성격과 생활을 깊이 파악하고 체험하도록 하여야 하며 언제나 인물의 사상감정으로 숨 쉬고 생활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인물의 사상감정과 생활이 몸에 푹 배게 된 배우라야 인물의 대사를 진실하게 형상할수 있습니다.

연극의 좋은 점은 인물과 관중의 직접적인 감정교제를 실현하는것입니다. 인물과 관중의 직접적인 감정교제는 연극의 정서적침투력과 감화력을 높이는 기본고리입니다. 관중이 인물의 생활세계에 깊이 잠겨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눌 때라야 연극이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인물과 관중의 산 교제를 실현하는 기본방도는 연출가가 감정조직을 잘하고 배우로 하여금 연기를 잘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연출가는 배우가 대사를 잘 살려 인물의 다양한 사상감정을 구체적으로 생동하게 형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연출가는 예술창조사업에 대한 지도를 잘하여야 합니다.

연극과 같은 종합예술에서 창작의 성과여부는 집단의 힘과 지혜를 어떻게 조직동원하는가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연출가가 배우, 미술가, 작곡가를 비롯한 창조사업을 하는 기본성원들을 옳게 이끌어 나가야만 어떤 어려운 문제도 성과적으로 풀고 창조사업을 힘 있게 다그칠수 있으며 무대우에 조화로운 화폭을 펼쳐 놓을수 있습니다.

남을 가르치고 이끌어 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연출가는 책임성이 높고 아는것이 많아야 하며 세련된 령도예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연출가의 책임성은 집단에 대한 책임성이며 작품의 운명에 대한 책임성입니다. 연출가는 당이 맡겨 준 임무를 최상의 수준에서 기어이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높은 사상적각오를 가져야만 자기의 책임을 다할수 있습니다. 연출가는 여러 분야의 예술에 정통하고 다방면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다른 예술가들의 창조사업을 하나의 목적을 실현하는데로 통일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세련된 지휘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연출가는 예술지도에서 집단의 창조정신, 창조능력을 끊임없이 높이 발양시켜야 합니다.

연출가는 창조집단의 모든 성원들이 자기의 힘과 재능을 다 바쳐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려는 강한 지향을 가지도록 하며 그들의 창작적개성과 구상, 창조적발기를 존중하고 적극 지지하며 창조적환상을 끊임없이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연출가는 배우와 미술가, 작곡가의 창조적구상과 발기를 존중하고 작품의 창작방향에 기초하여 그것을 옳게 종합할 때 창조성원들을 새로운 형상창조에로 힘 있게 추동할수 있습니다.

연출가는 옳바른 창작방향을 세울뿐아니라 그것을 창조성원들자신의것으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연출가의 창작적구상은 창조성원들에 의하여 비로소 무대우에 실현됩니다. 창조성원들은 창작방향이 옳다는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자신의것으로 받아 들일 때 그 실현을 위하여 높은 열정과 창발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창조성원들에게 파악되지 못한 연출구상은 실지 창작과정에 구현될수 없습니다.

연출가는 예술지도에서 즉흥과 주먹치기, 경험주의를 없애고 과학성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오늘의 현실은 과학적인 리론에 기초한 과학적인 방법, 과학적인 실천을 요구합니다. 병사가 사격의 묘리를 잘 알아야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될수 있듯이 연출가는 예술의 법칙을 깊이 체득하여야 창작에서 언제나 성과를 거둘수 있습니다. 연출가는 예술발전과 창작에 작용하는 법칙을 깊이 연구체득하여야 합니다. 연출가는 생활을 미학적으로 파악하는 일반적인 원리와 방법으로부터 시작하여 문학형상을 분석하는 원리와 그것을 무대의 특성에 맞게 다시 구성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며 다양한 형상수단과 형상수법을 쓰는 묘리를 체득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연출가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연극을 높은 수준에서 창조하는 재능 있는 예술가로 자신을 준비할수 있으며 창작단의 사령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할수 있습니다.

 

2) 연기는 성격창조의 예술

 

연극은 산인간형상을 창조하는 예술입니다.

연극에서 산인간성격을 창조하는 직접적담당자는 배우입니다. 작가는 배우에게 인간형상을 글로 그려 주며 연출가는 배우의 창조사업을 이끌어 줍니다. 누구도 배우를 대신하여 무대에서 산인간형상을 직접 창조할수는 없습니다. 희곡에 그려 진 인간형상은 배우에 의하여 무대에서 생동하게 살아 나게 됩니다. 배우는 희곡에 그려 진 인물에게 산 넋을 주어 실지로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연극에서 인간형상을 살리는가 못살리는가 하는것은 배우에게 달려 있습니다.

배우의 기본임무는 진실한 인간형상을 창조하는것입니다.

인간을 진실하게 그리는것은 사실주의문학예술의 근본요구입니다. 물론 사실주의는 자연과 사회도 진실하게 그릴것을 요구합니다. 인간과 함께 자연과 사회를 진실하게 그려야 형상전반이 진실하게 될수 있습니다. 인간을 진실하게 그리려고 하여도 자연과 사회를 진실하게 그려야 합니다. 자연이 인간의 로동대상으로서 사회생활의 물질적원천이라면 사회는 인간이 살며 일하는 투쟁하는 삶의 터전입니다. 자연과 사회는 인간의 생존과 성격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자연과 사회를 진실하게 그려야 인간도 진실하게 그릴수 있다는것을 말하여 줍니다. 그러나 자연과 사회를 진실하게 그리는것은 인간을 진실하게 그리기 위한 전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모든것의 주인인것만큼 문학예술에서는 마땅히 자연과 사회를 그리는것이 인간을 진실하게 그리는데 복종되여야 합니다.

인간을 진실하게 그려야 그에 의하여 빚어 지는 사건과 정황 갈등과 이야기줄거리도 진실하게 됩니다. 진실한 인간형상만이 사람들에게 생활의 진리를 가르쳐 줄수 있고 그들의 심금을 울릴수 있습니다. 인간을 진실하게 형상하는것은 사실주의문학예술의 생명이며 바로 여기에 사실주의문학예술의 힘이 있습니다.

배우는 인물의 성격에서 핵을 똑바로 잡고 그것을 구체적이고 비반복적인 개성으로 잘 살려 내야 합니다.

성격의 핵을 바로 잡는것은 인물을 진실하게 형상하기 위한 선결조건의 하나입니다.

인물의 성격에는 이러저러한 특성이 있지만 거기에는 핵이 있습니다. 인물의 다양한 성격적특성가운데서 주되는 점은 사상과 감정, 의지이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본질적인 의의를 가지는것은 사상입니다. 사상은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기초이며 그것을 규제합니다. 사상에 의하여 사고와 행동이 조절통제되고 그 질과 방향이 규정됩니다. 사람의 인격도 사상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사상은 성격의 핵이며 기본표징입니다.

배우는 인물의 성격에서 핵을 찾고 언제나 그에 비추어 말하고 행동하여야 전일적인 산 인간을 형상할수 있습니다. 배우가 인물성격의 핵을 놓치거나 똑바로 파악하지 못한채 연기를 할 때에는 인물형상이 장면마다 다르게 되여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성격의 핵을 일관하게 틀어 잡고 그것을 돋구는데 모든것을 집중시켜 나가야 합니다.

인물의 성격에서 핵을 옳게 잡으려면 그의 요구와 리해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상은 사람의 요구와 리해관계를 반영합니다. 사람의 요구와 리해관계는 이러저러한 사회적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과정에 생겨 납니다. 그 요구와 리해관계는 사람이 자기의 사회적처지를 개선하고 생활환경을 개변하려는 지향을 반영한것입니다. 사람은 모든것을 자기의 요구와 리해관계에 따라 대하고 평가합니다. 사람의 요구와 리해관계에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반영한 사상이 그의 성격에서 핵을 이루게 됩니다. 희곡에 나오는 인물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는 희곡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인물의 성격이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사업과 생활에 대한 그의 태도와 사고방식, 활동방식, 그와 다른 인물과의 사회적관계를 깊이 파고 들어 그의 성격의 핵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배우는 인물성격에 대한 진지한 탐구과정을 거쳐 그의 사상을 받아 들여 자기의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그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배우는 인물성격의 핵을 그의 구체적이고 비반복적인 개성을 통하여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얼굴을 가지고 있듯이 자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격이라고 하면 매 사람에게 고유한 사상정신적 특징과 그의 개성적표현을 말합니다. 그 성격적특징이 매 사람을 다름아닌 바로 그 사람으로 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공고한 질적규정성으로 됩니다. 사업과정에 부닥치는 난관을 뚫고 나가는 사람의 성격을 비교해 보면 어떤 사람은 패기와 정열에 넘쳐 노래도 부르고 선동도 하면서 씩씩하고 명랑하게 뚫고 나가지만 어떤 사람은 누가 보건말건 묵묵히 꾸준하게 뚫고 나갑니다. 난관을 뚫고 나간다는 의미에서는 같지만 그들의 활동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활동방식의 차이는 성격상차이를 보여 주는것입니다.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대에서도 인물은 남 다른 얼굴, 뚜렷한 개성을 가진 산인간으로 형상되여야 합니다.

배우가 무대에 나오는 인물의 성격을 구체적이며 비반복적인것으로 그리자면 그에 고유한 개성적인 특징을 똑바로 찾아 내여 그것을 자기의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인물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체험하고 그에 맞게 연기를 하여야 합니다. 배우는 연기과정에 인물이 생각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그가 말하려는 식으로 말하며 그가 행동하는 식으로 행동하면서 그의 개성적인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려 내야 합니다.

연기에서 인물의 개성적인 측면을 살리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여 그에만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인물의 성격에서 개성적인 측면만 일면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그는 시대와 사회적관계를 떠난 순전히 개인적인 존재로 될수 있습니다.

성격은 매 사람에게 고유한것이지만 날 때부터 타고난것이 아닙니다. 성격은 사람의 사회적실천활동과 그 과정에 맺어 지는 사회적관계를 통하여 이루어 지고 사회력사적조건에 의하여 제약되는것만큼 개성적인 특징을 띠면서도 시대와 사회제도, 계급과 민족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매 사람의 성격속에는 그에게 고유한 개성적인 특징만 있는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제도의 특징도 담겨 져 있고 그가 속한 계급과 민족의 일반적인 특징도 체현되여 있습니다.

여기로부터 인물의 성격을 전형화할데 대한 요구가 나서게 됩니다. 인물의 성격에서 일반적인 특징 개성적인 특징을 통하여 드러나야 합니다. 인물 생활하는 과정에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 그가 속한 계급과 민족의 본질적인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면 그는 전형화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인물은 전형화되여야 진실하고 생동하게 살아 나게 되며 시대와 계급의 대표자로 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인물의 성격에서 개성적인 특징을 무시하고 일반적인 특징만 내세우면 그의 형상은 개념화되고 추상화되여 진실성을 잃게 됩니다.

배우는 인물의 성격을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람의 성격은 고정불변한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변화발전합니다. 사람의 성격은 시대가 변하고 사회제도가 달라지며 생활이 새로와 지는데 따라 변화발전하게 됩니다.

평범한 사람이 혁명가로 자라나는 과정을 놓고 보아도 처음에는 착취사회와 착취계급의 본질을 인식하게 되고 그에 기초하여 점차 착취사회와 착취계급을 미워 하는 사상을 가지게 되며 그 계급적증오심이 자라나 혁명을 하여야 하겠다는 사상적각오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마침내 계급적원쑤를 반대하는 투쟁에 참가하게 되고 그 과정에 혁명의 전략과 전술을 배우고 풍부한 경험을 쌓게 되며 혁명가가 지녀야 할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를 갖추게 됩니다.

혁명연극《성황당》에서 박씨와 그의 딸 복순 그리고 만춘의 성장과정은 생활과 함께 그들의 성격이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배우는 극이 전개되는데 따라 인물이 어떤 생활의 길을 거쳐 어떻게 성장하며 그 과정에 그의 정신도덕적풍모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 나는가 하는것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그에 맞게 연기를 하여야 합니다. 인물의 성격은 남 다른 생활의 길에서 이루어 지고 변화발전하기때문에 배우는 그의 성장과정을 구체적으로 특색 있게 형상하여야 합니다. 특히 인물의 정신도덕적풍모에서 일어 난 새로운 변화를 선명하게 드러내야 그의 성격발전을 인상 깊게 보여 줄수 있습니다. 배우는 인물의 정신적인 성장에 맞게 세월의 흐름을 따라 그의 외모에서 생기 변화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우는 안팎으로 조화된 진실하고 생동한 인물형상을 창조할수 있습니다.

인물을 진실하게 형상하자면 생활의 요구도 옳게 해결하여야 합니다.

무대예술가운데서 연극은 가장 생활적인 예술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무대에서는 실지 현실에서 보는것과 같은 생활화폭이 펼쳐 지게 됩니다. 그런것만큼 배우는 무대에서 《연기》를 할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처럼 진실하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배우는 무대를 현실처럼 대하여야 인물을 진실하게 형상할수 있습니다.

생활의 요구를 실현하는데서 성격과 정황, 환경의 통일을 보장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떠나서 살수 없습니다. 자연환경이나 사회적조건은 사람의 생활과 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무대에 나오는 인물도 순간마다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인물과 환경은 뗄수 없이 통일되여 있습니다. 성격과 정황, 환경의 통일을 보장할 때에만 인물을 생활의 요구에 맞게 진실하게 형상할수 있습니다. 문제는 인물의 성격과 정황, 환경의 통일을 어떤 원칙에서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무대에서 펼쳐 지는 정황과 환경은 어디까지나 인물의 성격을 살리는데 복종되여야 의의 있는것으로 됩니다.

배우는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그것을 인물의 성격을 살리는데 목적의식적으로 리용하여야 합니다. 배우는 환경을 인물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보여 주며 그의 심리적움직임을 섬세하게 드러내는데 능동적으로 활용하여야 합니다. 배우는 주어 진 정황에서 그 인물만이 할수 있는 하나의 대사, 하나의 행동, 하나의 표정을 찾아 내야 합니다. 성격과 정황, 환경에 맞는 대사와 행동, 표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인물을 진실하게 형상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요구를 원만히 해결하려면 배우가 연극의 특성에 맞게 연기를 잘 하여야 합니다. 영화와는 달리 연극에서는 배우가 무대에 출연하여 연기를 하면 그자리에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극장에서 관중은 배우의 연기와 그 결과를 앉은 자리에서 동시에 보게 되기때문에 연극에서는 영화에서처럼 요술을 피울수 없습니다. 연극배우는 공연을 하는 전 과정에 실지 자기가 맡은 인물로 되여야 합니다. 연극배우는 높은 연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영화배우는 거의 모든 경우에 현실적인 생활조건에서 연기를 하지만 연극배우는 가상적인 장치물이 있는 제한된 무대조건에서 연기를 하게 됩니다. 배우가 인물을 훌륭하게 형상할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무대적조건에 맞게 연기를 하지 못하면 그 형상을 살려 낼수 없습니다. 무대를 떠난 연극이란 있을수 없듯이 무대조건에서 벗어 난 배우의 연기란 있을수 없습니다. 그런것만큼 연극배우는 무대장치나 비치도구를 모조품이 아니라 실물처럼 대하고 다루어야 합니다.

연극에서는 무대와 관중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고 영화에서처럼 그것을 마음대로 조절할수 없는것만큼 배우가 연기에서 주되는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표정이나 동작을 선이 굵고 크게 하여야 합니다. 여기로부터 연극배우는 연기에서 예술적인 강조의 수법에 의거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배우가 연기를 과장하여서는 안됩니다. 배우연기에서 예술적인 강조는 어디까지나 인물형상을 진실하게 살리기 위한것으로 되여야 합니다.

연극배우는 인물의 대사를 잘 형상하여야 합니다.

연극에서 대사는 배우에게 있어서 기본형상수단입니다. 배우가 대사를 어떻게 형상하는가에 따라 인물형상의 진실성과 생동성, 연극의 예술성이 좌우됩니다. 연극이 잘되는가 못되는가 하는것은 사실 배우가 대사를 어떻게 형상하는가 하는데 달려 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배우가 대사를 잘 형상한다는것은 인물의 대사를 그의 성격과 정황에 맞게 진실하게 형상한다는것을 말합니다.

인물의 대사를 진실하게 형상하자면 그것을 예술적으로 다시 창조하여야 합니다. 작가가 아무리 명대사를 써놓았다고 하여도 배우의 대사형상이 진실하지 못하면 빛을 낼수 없습니다. 원래 화술은 말의 참뜻을 정확하고 감동 깊게 전달하는 예술입니다. 배우는 화술에 대한 립장을 바로 가지고 대사 한마디한마디를 진실하게 형상하여야 합니다.

배우는 인물의 대사를 성격과 정황에 맞게 형상하여야 합니다. 같은 말도 성격과 정황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로 다양하게 쓰이는것만큼 대사를 성격과 정황에 맞게 형상하는것은 연극의 진실성을 보장하는데서 매우 중요합니다.

배우가 대사를 성격과 정황에 맞게 형상하려면 인물의 내면세계와 생활을 깊이 파악하고 진실하게 체험하여야 하며 인물의 독특한 말투를 살려 내야 합니다. 배우는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가, 그의 삶의 목적과 지향은 무엇인가, 그가 지금 어떤 정황에 놓여 있으며 그 정황을 조성한 사건이 무엇인가, 그에 대한 인물의 태도가 어떤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따져 보고 그것을 충분히 체험하여야 합니다. 그 체험이 깊어 지면 깊어 질수록 배우는 그 정황에서 인물이 말하지 않을수 없는 심정을 받아 안게 되며 그에 기초하여 정황에 어울리는 대사형상을 하게 됩니다.

배우는 우리 말의 우수한 특성을 잘 알고 그것을 잘 살려 쓰는 방향에서 대사형상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인물형상의 진실성과 함께 연극의 인민성과 민족적특성을 살리는 중요한 조건의 하나로 됩니다. 배우가 우리 말의 우수한 특성을 잘 살려 써야 인민들에게 문화어의 본보기를 알려 줄수 있고 사회주의적애국주의교양과 공산주의도덕교양에도 적극 이바지할수 있습니다. 배우는 대사형상을 잘하여 인민의 언어생활과 문화생활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사회에 건전한 생활기풍을 세우는데도 기여하여야 합니다.

대사형상을 통하여 인간성격을 창조하고 인민들을 교양하는데 이바지하는 배우는 진실로 언어의 능수가 되여야 합니다.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진실한 인간형상은 배우의 노력에 의하여 창조됩니다. 배우가 인간성격의 진정한 창조자로 되는가 못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노력하는가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이악하게 노력하고 탐구하는 배우만이 진실한 인간성격의 창조자로 될수 있습니다.

 

3) 연극미술은 흐름식립체무대미술

 

연극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 《피바다》식 가극에서 이룩한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의 성과를 연극의 특성에 맞게 창조적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다양한 생활전경을 담은 립체적인 화폭이 무대우에서 극의 흐름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 가는 광경은 지난 날의 연극에서는 찾아 볼수 없었던 독특한것입니다.

《성황당》식 연극의 무대미술은 생활의 요구와 인민의 미감에 맞을뿐아니라 연극의 특성에 맞는 진실로 사실주의적인 흐름식립체무대미술입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은 환경묘사에만 머물러 있던 종래의 낡은 무대미술의 제한성을 극복하고 인물의 모습도 생활도 현실에서 보는것처럼 그대로 재현할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의 창작원칙을 철저히 구현하여 연극의 사상예술적수준을 더욱 높여 나가야 합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은 모든 화폭이 인물의 생활환경을 보여 주면서도 성격을 살리는데 적극 이바지할것을 요구합니다.

문학예술작품에서 환경묘사는 자연과 사회의 면모를 보여 주는데 이바지할뿐아니라 인물의 성격을 형상하는데도 작용합니다.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는데서 환경묘사를 잘하면 내면세계를 더욱 깊이 있고 폭 넓게 드러낼수 있으며 형상을 보다 감동적으로 돋구어 줄수 있습니다. 소설은 인물성격을 창조하기 위한 환경묘사에서 다른 예술형태에 비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영화도 소설에서와 같이 인물의 성격을 보여 주는데 환경묘사를 많이 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시기 연극은 인물성격을 창조하기 위한 환경묘사에서 많은 가능성을 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날의 무대미술은 고정적이고 평면적이였기때문에 하나의 사건을 단위로 구성되는 막과 장안에서 그 사건이 벌어 지는 환경과 정황, 분위기를 보여 주는데 머무르고 인물의 내면세계를 밝혀 내는데는 크게 작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종래의 연극에서는 인물이 기뻐하거나 슬퍼해도 그에 관계없이 장치와 배경은 고착되고 정지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인물의 감정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무대미술로는 새 연극의 요구를 해결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극혁명을 할 때 인물의 생활환경을 보여 주는데 머물러 있던 무대미술을 새 연극의 인간학적요구에 맞게 혁신하도록 하였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 무대미술은 인물이 행동하는 환경을 조성해 줄뿐아니라 그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보여 줍니다.

혁명연극《성황당》의 절정장면에서 보여 준 무대미술은 그에 대한 좋은 실례의 하나로 됩니다. 절정장면에서 복순의 어머니가 돌쇠를 비롯한 마을청년들의 도움으로 이때까지 지주와 구장, 무당에게 속아 살아 왔다는것을 깨닫고 자기가 고생하는것은 팔자탓이 아니라 성황신을 믿은탓이라고 하면서 몽둥이로 성황당을 까부시는 순간 성황당은 물론, 주변의 나무와 바위도 사라지고 그자리에 전혀 새로운 정경이 펼쳐 집니다. 현실에서 볼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 지지만 관중은 그 기적 같은 무대변화를 감명 깊게 받아 들입니다. 그것은 무대미술이 한생을 미신에 사로잡혀 팔자탓만하면서 지주나 구장 같은 착취자에게 속아 살아 온 복순의 어머니가 미신의 구속에서 벗어나 새 인간으로 재생하는 그의 성격발전의 론리에 맞게 형상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무대미술은 인간이 사상적으로, 계급적으로 각성하여 자신의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 쥐고 자기 힘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자주적인 지향을 가질 때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할수 있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창조에서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의 풍부한 형상적가능성을 얼마나 효과 있게 리용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미술가에게 달려 있습니다. 연극에서 무대미술은 주인공의 행동선을 일관하게 따라 가면서 그의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내면세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만일 미술가가 무대화폭을 인물의 성격창조에 복종시키지 않고 생활환경을 보여 주는데만 리용하게 되면 순수 객관주의에 빠지게 되며 반대로 그것을 인물의 성격형상에만 리용하게 되면 생활의 객관적론리를 무시하고 성격과 환경의 통일을 파괴하며 자기의 의도만 앞세우는 주관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무대미술은 환경묘사와 성격형상에 다같이 작용하여야 합니다. 미술가는 무대화폭을 통하여 시대상과 사회의 면모, 자연의 정경을 뚜렷이 보여 주는 동시에 인물의 성격을 밝혀야 합니다. 미술가는 몇개의 고정된 막과 장안에만 생활환경을 국한시키던 기성관례에서 벗어나 주인공의 행동선을 따라 가면서 그의 생활환경을 조성하고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다양한 화폭을 펼쳐 놓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화폭들을 밀접히 련결시켜 생활의 발전과정과 그에 따르는 주인공이 성장과정을 일관하게 보여 줄수 있도록 하나의 조형적인 흐름으로 이어 놓아야 합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은 장면을 쉬임없이 전환시키며 화폭을 흐름식으로 형상할것을 요구합니다. 장면전환을 흐름식으로 하여야 극흐름을 중단함이 없이 지속시킬수 있으며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보여 줄수 있습니다.

혁명연극《혈분만국회》에서는 화폭이 쉬임없이 흘러 가기때문에 불과 2시간 밖에 안되는 공연시간에 서울장면과 북간도장면, 헤그장면을 비롯하여 복잡하고 방대한 내용을 손색없이 보여 줄수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종래의 연극에서 다 보여 주자면 공연시간이 아마 서너시간 걸려야 할것입니다.

장면을 흐름식으로 전환시킬 때에는 관중이 무대에서 화폭이 언제 바뀌였는가 하는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전환시켜 관중의 정서적감흥을 유지하게 하여야 합니다. 장면전환을 흐름식으로 하는 목적자체가 생활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면서 관중의 정서를 깨뜨리지 않고 일관시켜 나가자는데 있습니다. 관중의 감흥을 일관시켜 나가야 연극의 정서적침투력을 더욱 높일수 있습니다.

장면전환에서는 장치와 배경을 끊임없이 바꾸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조화로운 화폭으로 펼쳐 놓아야 합니다. 장면을 순식간에 전환시키면서도 전반적화폭의 시각적인 완결성을 보장하는것은 무대형상의 진실성을 살리고 예술적품위를 높이는 기본방도의 하나입니다. 미술가는 장면형상을 구상할 때부터 그것을 흐름식으로 전환시키면서 화폭의 조화를 실현할 방도를 찾아 내야 합니다. 미술가는 영화연출가처럼 생활을 끊임 없는 움직임속에서 파악하고 형상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을 구상할 때 장치와 배경을 쉽게 조화시킬수 있는 기술적조건도 충분히 타산하여야 합니다.

《성황당》식 연극의 무대미술은 최신과학기술의 성과에 의거하여 창작실천에서 나서는 어렵고 복잡한 과제를 원만히 풀어 나가야 합니다.

미술가는 인물의 성격을 변화발전속에서 보여 줄뿐아니라 다양한 시점에서 폭 넓게 보여 줄수 있도록 무대화폭을 립체적으로 형상하여야 합니다. 무대화폭을 립체적으로 형상하여야 무대우에 펼쳐 지는 생활정형을 현실에서와 같이 자연스럽게 보여 줄수 있고 인물의 성격을 여러모로 돋구어 줄수 있으며 관중을 극세계에로 깊이 끌어 들일수 있습니다.

미술가는 종래의 평면적인 무대구성에서 대담하게 벗어 나 대상을 다양한 시점에서 자유롭게 재현하는 한편 무대우에서 재현하는 모든 대상의 형태와 색채, 그 세부를 현실에 있는것과 꼭같이 보이게 하여야 하며 그것의 조화를 실현하여야 합니다. 미술형상의 조형성이나 립체성 같은것은 언제나 대상의 실재성을 전제로 하며 그것의 조화에 기초하여 비로소 생겨 납니다.

무대미술을 흐름식으로 립체감이 나게 하는데는 여러가지 형상수단과 방법이 리용됩니다. 미술가는 인물의 성격과 생활을 진실하고 생동하게, 깊이 있고 폭 넓게 그려 내는 원칙에서 여러가지 형상수단과 방법 통일적으로 조화롭게 리용하여야 합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은 연극의 특성에 맞게 창조되여야 합니다.

오늘 무대예술부문에서 무대미술을 흐름식으로 창조하는것은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되고 있습니다. 《피바다》식 가극에 시원을 두고 있는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은 연극에 일반화되였을뿐아니라 무대예술의 다양한 형태에 널리 보급되였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매개 예술형태의 특성에 맞게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을 창조하는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매개 예술형태에서 무대미술이 자기의 고유한 맛을 가지는가 못 가지는가 하는것이 결정되게 됩니다.

연극과 미술은 다같이 직관예술이지만 서로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극은 생활을 시공간의 변화속에서 종합적으로 반영하지만 미술은 생활의 한개 단면을 정지상태에서 반영합니다. 지난 날의 연극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생활은 변화발전하는데 장치와 배경만은 거의 고정되여 있었습니다. 장치와 배경이 변화발전하는 인물의 생활을 안받침하지 못한데로부터 결국 지난 날의 연극에서는 생활을 현실에서와 같이 자연스럽게 펼쳐 보이지 못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연극혁명을 하여 연극무대에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을 받아 들임으로써 연극에서 빛나게 해결되였습니다.

연극에서 무대미술은 형상창조를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무대미술은 연극의 요구에 복종되여야 하며 그 형상적특성에 맞게 창조되여야 합니다. 무대미술형상은 인물의 행동선을 따라 변화발전하는 다른 형상요소와 마찬가지로 변화발전하여야 합니다. 바로 그 요구를 실현하는것이 흐름식립체무대미술입니다.

흐름식립체무대미술이 좋다고 하여 가극의것을 연극에 그대로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연극과 가극은 같은 무대종합예술이지만 서로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것만큼 무대미술에 대한 요구도 서로 다릅니다.

연극은 무대예술가운데서 가장 생활적인 예술인것만큼 연극에서 인물의 말과 행동은 현실생활 그대로의 형식을 취합니다. 무대우에서 벌어 지는 사건도 생활에서처럼 전개됩니다. 여기로부터 연극에서는 다른 모든 형상요소와 마찬가지로 무대미술형상도 생활적인것으로 되여야 연극의 특성과 요구에 맞는 진실한것으로 될수 있습니다.

무대미술은 무대공간조직부터 현실감이 나게 생활적으로 되여야 합니다.

가극이나 음악무용이야기 같은데서는 대체로 무대앞부분에 장치물을 많이 설치하지 않고 넓은 공간을 내놓습니다. 그것은 무용수가 나와서 춤을 추고 합창성원이 무대로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하는 사정과 관련되여 있습니다. 앞무대가 비는 조건에서 그 공간을 시각적으로 감싸주기 위하여 자연히 장식적효과를 나타내는 장치물을 무대량옆으로 겹겹이 드리워 주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가극이나 음악무용이야기에서처럼 무용수가 춤을 출수 있게 앞무대를 넓게 내놓을 필요도 없으며 화려한 꽃가지를 비롯한 여러가지 장식물을 가지고 옆무대를 감싸 줄 필요도 없습니다. 연극에서는 무대공간을 구성하는데서 추상화와 양식화를 피하고 생활적인 사실성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연극무대에서는 평면이나 공간이 모두 생활적인 실감이 나게 구성되여야 합니다. 무대의 공을 조직하는데서뿐아니라 그우에 세워 지는 장치와 배경, 인물의 분장과 의상, 소도구를 형상하는데서도 생활적인 맛을 돋구어야 합니다.

무대미술형상에서는 생활을 미화분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주의현실을 반영한 극작품과 력사적인 소재를 취급한 극작품에서 생활을 미화분식하는 경향이 가끔 나타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예술에서 생활을 왜소하게 그리는것도 나쁘지만 생활을 미화분식하는것도 나쁩니다. 생활을 미화분식하는것은 본질을 밝히지 않고 겉만 미끈하게 꾸려 놓으려는것으로서 생활의 진실을 외곡하며 예술의 인식교양적기능을 약화시키는 매우 유해로운 경향입니다. 예술의 참다운 힘은 생활의 진실을 밝히는데 있습니다. 진실은 누구에게나 명백히 납득되고 공감되기 마련입니다. 예술에서 진실성을 생명이라고 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창작가는 예술창조사업에서 생활을 미화분식하는 경향을 단호히 배격하여야 합니다.

장치와 배경, 의상과 소도구뿐아니라 인물의 분장도 다 현실에서 보는것과 같이 생활적인것으로 되여야 합니다. 그래야 인물이 현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보일수 있고 장치와 배경, 의상과 소도구도 진실감을 줄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미술형상을 실감이 나게 하란다고 하여 대상을 사진을 찍어 놓은듯이 기계적으로 복사하여 자연상태로 보여 주어서는 안됩니다. 대상을 사진을 찍어 놓은듯이 복사하여 자연상태로 보여 주게 되면 기록주의와 자연주의에 떨어 질수 있습니다. 문학예술작품창작에서 기록주의와 자연주의 경향을 철저히 없애야 합니다.

무대미술은 시대감이 나고 생활의 채취가 느껴 지게 되여야 합니다. 하나의 무대화폭에서도 관중이 시대를 느끼고 당대의 생활을 보며 그속에서 사는 인간을 보게 되여야 합니다. 연극의 주제와 사상을 깊이 있게 느끼게 하는 무대화폭은 미술가의 심오한 탐구, 세련된 창조적능력의 산물입니다.

그림은 감상하는 멋에 보는것입니다. 사람을 사색하게 만드는데 그림의 힘이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심오한 뜻이 느껴 지고 생각을 깊이 하게 하는 그림이 명화입니다. 미술자체가 하나를 통하여 열백을 헤아리게 하는 예술인것만큼 미술가는 누구보다도 사색과 탐구를 깊이 하여야 하며 재능을 키워야 합니다. 미술가의 사색과 탐구속에서 연극의 사상예술적품위를 높이며 사람들의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훌륭한 무대미술형상이 창조됩니다.

 

4) 연극음악은 극형상의 중요한 수단

 

연극에 음악을 받아 들인것은 연극혁명에서 이룩한 중요한 성과의 하나입니다.

연극에 음악을 배합할데 대한 문제는 오래동안 론의되여 왔지만 좀처럼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극에 음악을 배합할데 대한 문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적문예사상을 연극예술부문에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 비로소 해결되였습니다. 주체적문예사상은 연극창조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보고 대하며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게 하는 원칙에서 풀어 나갈것을 요구합니다. 시대와 인민대중이 연극에 음악을 배합할것을 요구하면 그 어떤 기존공식이나 기성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음악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것이 우리 식의 연극을 대하는 주체적견해이며 근본립장입니다. 연극이 시대적미감에 맞으면서 다양하고 풍부한 형상세계를 보여 주자면 연극에 반드시 음악을 배합하여야 합니다. 음악은 다른 예술로써는 표현할수 없는 인간의 미묘한 사상감정과 심리상태의 변화를 드러내는 힘 있는 수단입니다. 경험은 음악을 연극의 특성에 맞게 잘 살려 쓰기만 하면 큰 은을 낼수 있다는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연극이 종합예술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갖추며 그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자면 음악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경우에도 그의 감정세계를 노래로 펼쳐 보여 주는가 하면 대사와 행동을 하는 장면에도 음악을 깔아 주어 그 내용을 정서적으로 더욱 인상 깊게 살려 내며 사람들을 극세계에 깊이 잠기게 합니다. 그런데 같은 종합예술인 연극에 음악을 배합하여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체적문예사상에 기초하여 연극에 음악을 받아 들임으로써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의 면모를 더 잘 갖추게 하고 그 기능을 비할바없이 높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성황당》식 연극에서 음악은 필수적형상요소로 되였으며 높은 사상예술성과 정서적감흥을 보장하는 극형상의 힘 있는 수단으로 되였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 음악은 주인공의 성격과 주제사상을 정서적으로 더욱 돋구어 줍니다.

연극에서 주인공의 성격은 주로 대사와 행동으로 형상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세계, 내면세계는 대사와 행동을 통하여 표현되는것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하며 섬세합니다. 대사와 행동만으로는 인간의 풍부한 내면세계를 충분히 펼쳐 보여 주기 어렵습니다. 인물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데서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습니다. 음악은 대사와 행동으로 다 표현할수 없는 인물의 풍부한 내면세계를 정서적으로 감동 깊 그려 냅니다.

연극에서 음악이 인물의 성격을 얼마나 정서적으로 깊이 있고 섬세하게 부각시켜 주는가 하는것은 혁명연극《성황당》의 제1장 앞부분에서 불리워 지는 《돌쇠의 노래》와 제1장의 마지막장면에서 관현악과 방창으로 울려 나오는 노래《불쌍한 어미딸은 눈물로 비네》만 들어 보아도 잘 알수 있습니다. 이 연극에서는 천대 받던 머슴살이총각이지만 야학에서 배워 눈이 텄다는 내용으로 된 노래의 가사밖에는 돌쇠의 생활경위에 대하여 말하여 주는 대사가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나 관중은 이 노래만 듣고도 주인공 돌쇠가 어떻게 되여 지주와 구장, 무당과 전도부인, 중을 골탕 먹이고 망하게 할수 있었는가에 대하여 직감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돌쇠의 노래》는 그후 극의 주요한 대목에서 가사를 리하여 불리워 지면서 지혜롭고 용감하며 인정 깊고 사리에 밝은 주인공의 성격과 다정다감한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드러 냅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 음악은 작품의 양상을 정서적으로 특징 짓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연극에 음악을 받아 들이면 양상을 더 잘 살려 낼수 있습니다. 음악은 인상 깊은 선률과 다양한 화성으로 생활의 본색을 정서적으로 생동하게 드러내므로 작품의 양상을 특징 짓는데 큰 도움을 줄수 있습니다. 사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연극《성황당》을 무대에 옮기는 과정에 음악을 받아 들여 양상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돌쇠의 노래》만 놓고 보더라도 그것은 제1장에서 비양조가 섞인 조소적인 선률로 울리면서 처음부터 혁명연극《성황당》이 풍자극이라는것을 느낄수 있게 하며 제1장 마지막장면에서 울리는 관현악과 방창은 이 연극이 단순한 풍자극이 아니라 박씨와 그의 딸 복순과 같이 착취 받고 천대 받는 인민들의 불행한 생활과 래일에 대한 지향을 정극적으로, 정서적으로 보여 주는 연극이라는것을 느낄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연극의 앞부분에 조소적인 색갈의 노래와 서정적인 색갈의 노래를 깔아 줌으로써 《성황당》이 풍자적인것과 정극적인것이 결합된 독특한 양상의 연극이라는것을 특징지어 주고 있습니다. 그와는 달리 혁명연극《혈분만국회》에서는 연극의 앞부분에서 노래《조선아 말해다오》를 숭엄하고 애절한 선률로 울려 줌으로써 이 연극이 빼앗긴 국권을 찾기 위하여 한몸 바쳐 나선 주인공 리준의 운명을 보여 주는 비극적양상을 띠고 있다는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 음악은 다양한 선률로 극의 정서적 분위기를 돋구어 주며 배우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여 줍니다.

극작품에서 정서적분위기를 잘 조성하는것은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고 주제사상을 심화시키며 관중으로 하여금 예술적감흥을 가지고 극세계에 잠기게 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극작품에서 정서와 감흥을 조성하려면 대사와 행동을 잘 형상하는것과 함께 극의 중요한 계기에 음악을 깔아 주는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극적대목에 인물의 개성을 뚜렷이 살리고 극의 정황에도 맞는 특색 있는 음악을 깔아 주면 대사와 행동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그의 풍부한 사상감정과 미묘한 심리상태의 변화를 펼쳐 보여 줄수 있으며 정서와 감흥을 더 크게 자아낼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음악은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려면 자감상태에 잠겨야 하는데 그러자면 인물의 사상감정을 진심으로 받아 들이고 그것을 자기의것으로 소화하여야 합니다. 음악은 배우가 인물의 사상감정을 체험하는데 도움을 주어 그로 하여금 쉽게 자감상태에 끌려 들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음악의 흐름을 타고 연기를 자연스럽 진실하게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성격발전의 론리에 맞게 잘 배합하지 않고 행동의 공간이나 극흐름의 공간에 주어야 한다고 하여 아무런 생활적인 전제와 축적이 없이 주면 극의 분위기가 깨여 지고 배우가 자감상태에 들어 가기 힘들게 될수 있습니다. 연극에서는 관현악으로 극의 정황을 충분히 돋구어 주어 배우가 자연스럽게 자감상태에 잠기게 한 다음 극적계기에 맞게 방창을 울려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음악이 배우의 연기와 하나로 융합되여 연기의 진실성을 보장할수 있고 음악과 연기가 정서적으로 조화된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 관중을 극세계에 잠기게 할수 있습니다.

《성황당》식 연극에서 음악은 극흐름을 정서적으로 지속시키고 극발전을 추동하며 관중으로 하여금 시종일관 감흥에 잠겨 극세계에로 들어 가게 합니다.

관중의 정서와 감흥을 지속시키면서 극세계에 들어 가게 하는것은 연극형상창조의 기본요구의 하나입니다. 연극에서 관중이 극세계에 깊이 들어 가게 하자면 극적정서와 감흥을 중단함이 없이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날에는 연극을 공연하면서 장이 끝날 때마다 암전을 하고 장치를 바꾸느라고 뚝딱거렸기때문에 관중의 정서와 감흥이 끊어 지군 하였습니다.

극적감흥을 중단함이 없이 지속적으로 끌고 가자면 무대전환을 빨리 하는것과 함께 장과 장이 바뀔 때 생기는 공간을 극적정서로 이어 지게 하여야 합니다. 현대과학기술을 받아 들이면 장면과 장면사이에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무대전환을 빨리 할수는 있지만 정서와 감흥을 지속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장면사이의 공간을 정서와 감흥으로 지속시키려면 장면의 내용과 무대전환의 특성에 맞게 관현악이나 방창으로 된 련결음악을 잘 깔아 주어야 합니다. 련결음악은 관중으로 하여금 다음장면에서 벌어 질 사건과 인물의 운명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며 새로운 극적계기를 조성하는데 작용하면서 극발전을 힘 있게 추동합니다.

연극에 음악을 받아 들이는것은 인간과 그의 생활을 극적방식으로만 아니라 서정적, 서사적방식으로 묘사할수 있게 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연극에서 인간과 그의 생활을 그리는 기본방식은 극적방식입니다. 연극에서는 작가가 말하려는 사상과 주장도 인물의 대사를 거쳐야만 밝혀 지게 되며 인물이 말 못하는 깊은 사연도 주로 그의 독백이나 다른 인물의 방백을 통하여 관중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연극에 음악을 받아 들이면 인물이 말 못하는 깊은 사연도 작가가 하고 싶은 주장도 창형식을 통하여 자유롭게 표현할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음악은 인간과 그의 생활을 서정적, 서사적방식으로 반영할수 있게 하는 넓은 길을 열어 줍니다.

연극에서 음악이 아무리 좋은 형상수단이라고 하여도 연극의 특성에 맞게 잘 써야 은을 낼수 있습니다. 연극에서는 음악을 가극이나 영화에서처럼 써서는 안됩니다. 가극이나 영화에는 그에 고유한 특성과 형상법칙이 있으며 연극에는 연극에 고유한 특성과 형상법칙이 있습니다. 연극에서 음악은 그에 고유한 특성과 형상법칙에 맞게 씌여 질 때 비로소 은을 낼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음악을 쓸 때에는 연극의 우점을 살리고 제한성을 극복하는 방향에서 써야 합니다. 연극혁명을 하던 첫 시기에 어떤 사람은 연극에 합창단과 관현악단까지 끌어 들이여 하였고 어떤 사람은 그전에 다른 나라에서 하던 식을 본 따서 기성곡을 몇토막 록음하여 연극에 넣어 분위기나 돋구려고 하였습니다. 연극에 합창단과 관현악단을 끌어 들여 음악으로 한몫하려고 할바에야 차라리 연극이라고 하지 말고 가극이라고 하는것이 좋을것입니다. 기성곡을 몇토막 록음하여 넣으면 연극의 몇대목에서 분위기를 어느 정도 돋굴수는 있어도 주제사상을 심화시키고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며 극을 힘 있게 밀고 나가는데 별로 도움을 줄수 없습니다.

연극에서 음악을 연극의 우점을 살리고 제한성을 극복하는 방향에서 쓰자면 연극의 형태상 특성에 맞는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하여야 하며 연극의 형상법칙에 어울리는 새로운 극음악구성법을 창조하여야 합니다.

연극에서는 방창을 연극의 특성에 맞게 잘 살려 쓰는것이 중요합니다.

방창은 연극의 특성에 잘 어울리는 성악형식입니다. 연극음악의 기본형식은 방창으로 되여야 합니다.

방창을 연극에 받아 들이란다고 하여 가극에서처럼 쓰려고 하여서는 안됩니다. 가극은 노래속에 극이 있고 극속에 노래가 있는 예술입니다. 그런것만큼 가극에서는 방창을 독창과 소방창, 중방창, 대방창 같은 여러가지 형식을 잘 살려 쓸수록 음악이 살고 극이 삽니다. 그러나 연극은 가극과 달리 대사와 행동속에 극이 있고 극속에 대사와 행동이 있는 예술입니다. 그런것만큼 연극의 특성을 무시하고 아무 방창형식이나 마구 끌어 들이면 대사와 행동이 저애를 받고 극이 살지 못하게 됩니다. 대사와 행동으로 극이 지속되게 하자면 방창을 주로 독방창으로 짧게 울려 주는것이 좋습니다. 대사가 없이 행동만 진행되는 중요한 극적계기에서 극의 양상과 장면의 내용에 맞는 독방창을 1절 정도로 짧게 주면 인물의 행동도 더 돋보이고 극의 흐름도 정서적으로 이어 질수 있습니다.

연극에서는 독방창뿐아니라 때에 따라 소방창이나 대방창 같은 음악형식도 쓸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음악형식을 연극의 특성이 무시되지 않게 잘 따져 보고 써야 합니다.

방창이 좋은 형상방법이라고 하여 그것만 반복하여 쓰려고 하지 말고 관현악도 잘 배합하여 써야 합니다. 관현악은 연극의 정서적분위기를 돋구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훌륭한 형상수단입니다. 극의 흐름에 생기는 공간이나 장면전환에서 관현악을 울려 주면 정서와 감흥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시킬수 있으며 관중으로 하여금 깊은 감흥에 잠겨 극세계에로 끌려 들게 할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인물들의 대립과 투쟁이 첨예화되고 주인공의 사상감정이 고조되였을 때 관현악을 깔아 주면 그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드러낼수 있고 극을 힘 있게 밀고 나갈수 있습니다.

작곡가는 연극의 노래를 잘 지어야 합니다. 연극에서 대사가 기본이라고 하여 노래를 소흘히 하면 연극에 음악을 받아 들인 보람이 없게 됩니다. 연극의 노래는 극을 살리는데 이바지하는것으로 될뿐아니라 누구나 즐겨 부를수 있는 좋은 노래로 되여야 합니다. 앞으로 사회주의현실을 반영한 연극을 많이 만들자고 하여도 노래를 민족적선률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적미감에 맞게 잘 지어야 합니다. 음악적으로도 세련되고 연극의 특성에도 맞는 노래가 좋은 연극음악입니다.

오늘 연극예술부문앞에는 연극혁명에서 거둔 성과와 경험을 공고히 하고 그에 토대하여 사상예술성이 높은 《성황당》식 연극을 더 많이 창작함으로써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수행에 이바지하여야 할 무겁고도 영예로운 과업이 나서고 있습니다.

연극예술부문에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공연된 불후의 고전적명작 5대혁명연극을 무대에 재현하는 사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한것만큼 당과 수령의 혁명업적을 담은 작품, 우리 민족제일주의와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주제로 한 작품, 로동계급을 형상한 작품창작에 힘을 넣어야 합니다.

연극예술부문에서는 지난 날 창작되여 근로자들을 교양하는데 이바지한 좋은 작품들을 《성황당》식 연극으로 다시 만들어도 좋을것입니다.

연극예술부문에서는 훌륭한 연극을 많이 창작하여 국내공연은 물론, 대외공연도 적극 벌려 로동당시대에 창조된 《성황당》식 연극의 우월성을 내외에 널리 소개선전하여야 합니다.

문학예술부문일군들은 앞으로도 계속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 식의 혁명적연극창작에서 끊임 없는 앙양을 일으켜 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