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강도를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으로 튼튼히 꾸리자

량강도 책임일군 항일혁명투사들과 담화 1968 7 21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량강도에 왔다간지 벌써 5년이 되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내가 량강도에 다녀 오겠다고 보고를 드리니 자신께서도 량강도에 한번 가보아야 하겠는데 지금은 자리를 뜰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가면 혁명전적지건설정형을 알아 보라고 하시였습니다.

나는 이번에 량강도에 와서 주로 보천보와 삼지연지구 혁명전적지들과 혜산으로부터 후창에 이르는 압록강연안의 혁명사적지들을 돌아 보았습니다.

나는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돌아 보면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저지른 죄행과 후과가 얼마나 큰가 하는것을 다시금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난 기간 반당종파분자들은 혁명전적지를 꾸리는데 관심이라도 있는것처럼 하면서 량강도에 자주 내려 돌아 다녔으며 수령님께 혁명전적지를 꾸리고 있다고 보고를 올리군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와보니 혁명전적지와 사적지들을 꾸려 놓은것이 별로 없습니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것은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하신 위대한 혁명업적을 고수하고 길이 빛내이며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교양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당중앙위원회 4 15차전원회의에서 폭로비판된바와 같이 반당종파분자들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말살해 보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였습니다. 당사상사업을 맡아 보던 나쁜 놈들은 혁명전통교양이 공산주의교양의 범주에 들어 가기때문에 공산주의교양만 하면 혁명전통교양은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느니,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이 회상기는 오늘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 《낡은것》이라느니, 소설을 보듯이 한번 읽어 보면 된다느니 뭐니 하고 허튼소리를 하면서 혁명전통교양을 방해하였습니다.

우리 당의 혁명전통은 조선혁명의 시원을 열어 놓은 귀중한 력사적뿌리이며 혁명위업의 승리를 확고하게 담보해 주는 불패의 힘의 원천입니다.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여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혁명과 건설에서 부닥치는 온갖 애로와 난관을 용감히 뚫고 나갈수 있으며 혁명을 끝까지 계속할수 있습니다.

수령님의 령도밑에 항일혁명투사들은 손에 무장을 잡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용감히 떨쳐 나섰으며 령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모진 추위가 계속되고 극심한 식량난으로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끼니를 에워야 하는 엄혹한 조건에서도 굴함없이 싸워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였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력사에 류례 없는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내고 일제와 싸워 승리할수 있은것은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고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이룩하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혁명정신을 지니고 싸웠기때문입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높은 혁명정신과 그들이 쌓아 올린 혁명업적과 투쟁경험은 우리 인민이 영원히 따라 배우고 계승해 나가야 귀중한 재보입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된 혁명전통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에서 굴함없이 싸워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제를 타승하고 조국의 영예와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할수 있었으며 모든것이 재더미로 빈터우에서도 신심을 가지고 투쟁하여 사회주의건설에서 천리마의 대고조를 일으킬수 있었습니다.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것은 우리 혁명의 임무로 보나 우리 나라의 정세로 보나 매우 절실한 문제로 나서고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우리 혁명의 행군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과 직접 맞서 있는 어려운 조건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여야 하며 미제와 앞잡이들의 분렬영구화책동을 짓부시고 조국을 통일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정세는 매우 긴장합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푸에블로》호 사건을 계기로 하여 남조선에 방대한 무력을 끌어다 놓고 우리를 《보복》하겠다고 하면서 전쟁소동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제의 전쟁공갈책동에 겁을 먹은 수정주의자들은 비겁하게도 우리에게 미제와 타협할것을 설교해 나서고 있습니다. 적들이 아무리 위협공갈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는 절대로 혁명적원칙을 버릴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오만무례한 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적들이 언제 덤벼 들어도 맞받아 나가 싸워 이길수 있는 정치사상적준비를 튼튼히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혁명과업이 어렵고 정세가 준엄할수록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심도 있게 하여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백두의 혁명정신을 지니고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견결히 싸워 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무장시키는데서 량강도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량강도는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전적지와 사적지가 가장 많은 도입니다. 백두산과 압록강을 비롯한 량강도안의 산발들과 강줄기마다에는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20성상에 걸쳐 진행하신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의 피어린 자욱이 아로새겨 있으며 나무 한그루, 한포기에도 항일혁명선렬들의 숭고한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참으로 량강도는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이며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의 위대한 력사를 전면적으로 생동하게 보여 주는 대로천혁명박물관입니다.

량강도를 혁명전적지답게 꾸리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으로 교양하는것은 량강도당위원회의 첫째가는 임무입니다.

지난 기간 량강도당위원회는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 사업을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량강도당위원회의 일부 일군들은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히 서지 못한데로부터 혁명전적지건설을 이모저모로 방해하는 반당종파분자들의 교활한 책동을 가려 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맹종맹동하였습니다. 량강도당위원회는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는 사업을 잘하지 못한데서 심각한 교훈을 찾고 혁명전적지건설에 힘을 넣어야 합니다.

혁명 전적지와 사적지를 꾸리는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혁명전통의 순결성을 보장하는것입니다.

혁명전적지를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 사적을 기본으로 하여 꾸리는것은 혁명전적지건설의 근본원칙입니다.

우리 당이 계승하여야 혁명전통은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항일혁명투쟁의 전통입니다. 우리 나라 혁명운동력사에서 간고한 시련을 끝까지 이겨 내고 승리한 혁명투쟁은 수령님께서 조직진행하신 항일혁명투쟁밖에 없습니다.

지난 기간 나쁜놈들은 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 오가잡탕의것을 걷어 넣으려고 하였습니다.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적인 자리에 있던 어떤자는 직권을 악용하여 자기의 생가를 꾸리게 하고는 그것을 견학대상에 넣어 혁명전적지답사자들에게 보여 주는 놀음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모독하고 흐리게 하는 반당적행위입니다.

량강도일군들은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 사업이 다름아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여 놓으신 불멸의 혁명업적을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사업이라는것을 명심하고 혁명전적지건설에서 당이 내세운 원칙을 철저히 관철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에 어떤 불순한 요소도 섞여 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보천보혁명전적지를 꾸려야 하겠습니다;

보천보전투는 항일혁명투쟁에서 특별한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인 전투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일제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적들의 중요한 거점의 하나였던 보천보에 진출하여 적들을 소탕함으로써 일제침략자들에게 정치군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주고 절망에 허덕이던 우리 민족에게 재생의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보천보전투는 당시 중국과 일본은 물론, 쏘련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신문, 통신, 방송을 통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 졌습니다. 그때 어느 나라의 출판물은 보천보전투를 동방식민지민족해방운동에서 특기할 력사적사변이라고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보천보전투가 있은 때로부터 벌써 3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보천보전투승리 30돐에 즈음하여 지난해에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을 세운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은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열렬한 흠모의 정과 한결 같은 념원을 담아 훌륭하게 건립되였습니다. 기념탑은 내용이 아주 풍부하고 심오합니다. 항일유격대원들과 애국적인민들이 강철의 령장이신 수령님을 진두에 모시고 조국광복의 붉은 기발을 펄럭이며 전진하는 모습을 생동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보천보전투가 가지는 커다란 의의에 비추어 보면 보천보전적지가 아직 제대로 꾸려 지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보천보에 갔을 보천보전투에 직접 참가하였던 항일혁명투사들에게 보천보전적지를 돌아 감상이 어떠한가고 물어 보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실지 보천보전투가 진행된 규모에 비해 보면 전적지가 너무 협소하게 꾸려 감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보천보혁명전적지를 규모와 내용에서 력사적사실과 의의에 맞게 꾸려야 합니다. 보천보에는 구시물동으로부터 곤장덕을 거쳐 가림천에 이르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군 로정과 수령님께서 전투를 지휘하신곳, 보천보시가전이 벌어 격전터를 비롯하여 당시의 력사적사실과 수령님의 탁월한 령군술을 생동하게 보여 주는 유적유물이 많습니다.

혁명전적지를 꾸리는데서 유적유물을 원상대로 보존하는데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보천보전적지를 원상대로 보존할데 대하여 여러차례 교시하시였습니다. 일제의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 소방회관, 산림보호구 건물과 우편국자리 같은것은 보천보전투정황을 사실대로 보여 주는 력사적증거물들입니다. 경찰관주재소의 벽에 총알자리와 나무포대, 류치장안에 있는 고문도구 같은것을 후대들에게 보여 줄수 있도록 원상대로 보존하여야 합니다. 보천보시가도 그때의 맛이 나게 옛날 모습을 살려야 하며 보천읍을 꾸린다고 하면서 전적지구역안에 고층건물을 망탕 짓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보천보혁명전적지에 대한 해설을 잘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보천보혁명전적지에 대하여 해설하는것을 들어 보면 주로 사적물들을 소개하고 전투진행과정을 알려 주는것으로 그치는데 수령님의 탁월한 지략과 군사전법에 대해서도 설명하여야 합니다. 보천보전투는      수령님께서 지니신 령활한 유격전법과 령군술을 남김없이 보여 대표적인 전투의 하나입니다.

보천보혁명전적지를 참관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가림천기슭에 있는 사령부지휘처가 일제경찰관주재소로부터 100여메터밖에 안되는 곳에 자리 잡은것을 보고는 전쟁력사에 사령관이 적진으로부터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전투를 지휘한 실례는 없다고 하면서 매우 감탄한다고 합니다. 한가지 사실에서도 우리는 수령님께서 지니신 담력과 령군술이 얼마나 비범한가 하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보천보전투에 대하여 설명할 반드시 구시산전투와 간삼봉전투에 대해서도 설명하여야 합니다. 구시산전투와 간삼봉전투는 보천보전투의 련속입니다. 전투들을 련관시켜 설명하여야 참관자들이 보천보전투의 정치군사적의의와 수령님의 유격전법의 독창성을 알수 있습니다.

삼지연을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으로 크게 꾸려야 하겠습니다.

삼지연은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무산지구로 진출하실 들리시여 대원들을 승리에로 고무하여 주신 의의깊은 곳입니다.

수령님께서는 1963년에 삼지연을 찾으시여 항일무장투쟁시기 무산지구로 진군하시다가 유격대원들과 함께 삼지연의 맑은 물을 마시며 휴식하시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습니다. 삼지연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일행천리전술로 100여리길을 대낮에 보무당당히 행군해 간《갑무경비도로》를 비롯하여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자욱이 아로새겨 있는 유적들이 많습니다.

수령님께서 국내진공작전에서 이룩하신 혁명업적을 길이 전할수 있도록 삼지연에 대기념비도 세워야 하겠습니다.

삼지연은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일뿐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제일가는 명승지의 하나입니다. 수령님께서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의 그날에 벌써 혁명이 승리하면 경치 좋은 삼지연에 근로자들을 위한 휴양지를 꾸리자고 가슴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행복을 누릴 인민들의 모습을 그려 보며 새로운 희망을 안고 더욱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삼지연을 하루빨리 근로자들의 휴양지로 아름답게 꾸려 항일무장투쟁의 그날에 수령님께서 구상하시고 항일혁명투사들이 리상으로 그리던 념원을 현실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후창군과 신파군에 있는 혁명사적지들도 꾸려야 하겠습니다.

포평은 조국광복회의 서광이 비낀 영광의 땅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열네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광복의 원대한 뜻을 품으시고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 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맹세를 다지시며 포평나루로 압록강을 건너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습니다.

포평사적지에 수령님의 동상을 크게 모셔야 합니다. 수령님과 같이 어리신 나이에 애국의 뜻을 품으시고 투쟁의 길에 나선 혁명의 지도자는 력사에찾아 볼수 없습니다. 포평혁명사적지에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는것은 수령님께서 짓밟힌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서광을 비쳐 주신 력사의 그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적지에 모신 수령님의 동상은 지내 작습니다.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 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맹세를 다지시는 수령님의 위대성이 한가슴 가득 안겨 오도록 동상을 크게 모셔야 하겠습니다.

후창군은 수령님의 어린 시절의 혁명활동 사적과 함께 김형직선생님께서 혁명활동무대를 팔도구로 옮기시고 압록강을 넘나드시며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지도하신 불멸의 사적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후창군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일제놈들이 어리석게도 수령님을 《귀순》시켜 보려고 리보익할머님을 압록강연안의 국경일대로 데리고 다닐 할머님께서 류숙하신 사연 깊은 집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돌아 보니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사적이 깃든 집들을 아직 꾸리지 않은것도 있고 후주려관은 울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비밀활동을 하실 쓰신 집들과 리보익할머님께서 묵으시였던 압강려관과 후주려관을 사적지로 꾸리고 대중교양에 널리 리용하여야 하겠습니다.

량강도에서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전반적으로 꾸리자면 애로되는 문제들이 많을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주저하여서는 안됩니다.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끼친 해독적후과를 청산하는 의미에서도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 사업을 있게 내밀어야 합니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 사업은 내가 직접 지도하겠습니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건설에 국가적으로 힘을 넣어야 하겠지만 사업에서 주인은 어디까지나 량강도입니다. 량강도당위원회는 당조직들을 발동하고 대중속에서 정치사업을 있게 벌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 사업에 도가 떨쳐 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혁명 유적과 유물을 조사발굴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여야 합니다.

지난 기간 당력사연구소가 수령님의 혁명력사자료에 대한 발굴사업을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령님의 혁명활동사적이 깃들어 있는 귀중한 유적유물들을 아직 찾아 내지 못하였습니다.

1959년에 항일혁명투쟁전적지답사단이 중국 동북지방과 백두산일대를 답사하면서 항일혁명투쟁의 주요 전적지들과 혁명근거지, 밀영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유적들을 새로 찾아 냈으며 귀중한 유물들과 력사자료들을 수집하였습니다. 그후에도 혁명유적유물들과 여러가지 자료들이 적지 않게 발굴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유물과 자료들은 장기간에 걸친 수령님의 영웅서사시적혁명투쟁력사와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혁명업적에 비해 극히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대부대로 조국진군작전을 진행하시였을뿐아니라 소부대와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시여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해 나가도록 하시였습니다. 량강도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소부대와 정치공작원들이 수많이 들어 활동하였으며 여러가지 형태의 조국광복회조직들이 각계각층 군중속에 깊이 뿌리 박고 있었습니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자면 이러한 혁명활동내용을 립증하는 유적유물과 자료들이 많아야 합니다. 항일혁명투쟁이 진행된 때로부터 벌써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갔습니다. 수령님을 모시고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하였던 혁명투사들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늙기전에 아직 발굴하지 못한 유적유물들을 찾아 내야 합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유적과 유물들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유적유물은 수령님의 영광스러운 혁명력사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실물로 생동하게 보여 줍니다. 그것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교양하는데서 몇백마디의 말보다 감화력을 가집니다. 동무들도 보고 느꼈겠지만 청봉숙영지와 건창숙영지, 베개봉숙영지에 있는 천막자리와 우등불자리, 밥지은 자리를 보느라면 간고한 전투와 행군이 계속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항일유격대원들이 얼마나 규률 있고 질서 있게 생활하였는가 하는것이 눈앞에 선히 안겨 옵니다. 특히 청봉숙영지의 아름드리나무에 써놓은 구호들에서는 항일유격대원들의 높은 혁명정신과 불굴의 투지가 력력히 느껴 집니다. 《조선청년들 속히 달려 나와서 항일전에 있게 참가하자》, 《일어 나라 단결하라 전세계 로력대중들아 자유와 해방 위하여 싸우자》를 비롯한 수많은 구호들은 오늘도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 주며 그들을 혁명투쟁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고 있습니다.

항일혁명투쟁의 력사가 아로새겨 있는 유적유물들은 우리 인민이 대를 두고 길이 전하며 영구히 보존하여야 더없이 귀중한 재보입니다. 혁명 유적과 유물에 대한 보관관리를 잘하여 귀중한 사적물들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적물들을 보관관리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유적유물이 퇴색하거나 변질되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는것입니다. 사적물들을 본래의 모습대로 보존하려면 사적물에 대한 관리를 과학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혁명사적물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본격적으로 할수 있도록 연구기관을 따로 조직하는것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사적물보존을 위한 연구사업에서는 무엇보다도 구호목들이 썩지 않게 하고 거기에 있는 글씨가 지워 지지 않게 하는 문제부터 해결하여야 합니다. 구호목은 천금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혁명적재보입니다.

백두산을 알뜰하게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넋이 깃들어 있고 우리 혁명의 뿌리가 내린 조종의 , 혁명의 성산입니다. 백두산에는 전국각지에서 답사자들이 끊임없이 찾아 오며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옵니다.

지금 백두산에 대한 관리를 잘하지 않고 있습니다. 백두산에 올라 가면서 보니 길도 닦지 않았고 여기저기에 휴지 같은것도 널려 있었으며 길옆에 있는 흙구뎅이를 메우지 않고 그냥 둔것도 있었습니다.

삼지연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을 닦고 답사자들이 휴식할수 있는 장소와 시설도 꾸려 놓아야 합니다. 답사자들에 대한 교양을 잘하여 그들이 백두산에 있는 한포기, 나무 한그루, 조약돌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백두산에 오를 주변을 어지럽히고 천지의 물을 오염시키거나 자연풍치에 손상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특히 백두산일대는 수림이 울창한것만큼 산불이 일어 나지 않도록 산불막이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합니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에 대한 답사를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것은 그것을 통하여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교양하자는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낫다고 백두산을 비롯하여 수령님께서 걸으신 불멸의 자욱을 따라 행군하면서 혁명전적지와 사적지들을 답사하면 책이나 영화를 보고 배우는것보다 비할바없이 귀중한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는 백두산에 올라 만주광야와 주변의 산발들을 때마다 혁명의 붉은 기발을 높이 추켜 들고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며 원쑤를 치던 항일유격대원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려 오고 혈전의 그날에 울리던 총소리가 귀전에 들리는것만 같았습니다.

혁명전적지답사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으로 교양하는데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것은 특히 혁명의 시련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 청년학생들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앞으로 혁명전적지와 사적지에 대한 답사사업을 계획적으로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혁명전적지답사를 단순한 견학으로 여기거나 유람식으로 하는 현상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답사자들이 항일유격대식으로 배낭을 메고 혁명가요를 부르면서 혁명선렬들의 발자취를 따라 행군하는 과정을 통하여 항일의 혁명정신을 따라 배우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량강도 책임일군들은 인민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량강도가 다른 도들보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지고 인민들의 생활수준도 높지 못한데 대하여 걱정하고 계십니다.

량강도가 경제를 발전시키는데서 다른 도들보다 조건이 불리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량강도가 나온지도 이제는 15년이 가까와 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량강도에서는 15년이 되도록 눈에 띄게 해놓은것이 없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량강도를 현지지도하여 주시였으며 풍산군, 갑산군의 두메산골에까지 찾아 가시여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높이기 위한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였습니다.

이번에 와보니 수령님께서 1963년에 현지지도하실 때주신 과업은 물론, 1958년에 량강도에 오시여 주신 과업들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혜산시만 보더라도 건설을 새로 한것이 별로 없고 단층집들이 올망졸망하게 들어 앉아 도소재지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후창과 신파, 삼수도 군소재지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농촌들에는 아직 초가집이 적지 않습니다. 량강도에는 나무가 많은것만큼 일군들이 인민생활에 관심을 돌리고 노력한다면 농촌문화주택 같은것을 얼마든지 건설할수 있을것입니다.

혜산시를 꾸려야 합니다. 혜산시는 도소재지일뿐아니라 국경도시이며 량강도 혁명전적지로 들어 오는 관문입니다. 혁명전적지를 답사하기 위하여 우리 사람들뿐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아 오는 조건에서 혜산시를 꾸리지 않으면 나라망신을 시킬수 있습니다. 구획정리도 잘하고 고층살림집도 짓고 압록강기슭에 공원도 꾸려 혜산시를 현대적인 문화도시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량강도에서 건설을 많이 하려면 건재생산기지를 꾸려야 합니다. 자체의 건재생산기지가 없이 다른 도에서 생산하는 세멘트에 의존해 가지고는 건설을 제대로 할수 없습니다. 부석을 리용하여 건재를 만드는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석회석을 찾아 내여 세멘트공장을 꾸리는것입니다. 석회석은 우리 나라 어디에나 있는데 량강도라고 하여 없을수 없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세멘트를 자체로 생산하여야 합니다.

농업에 대한 지도를 잘하여야 합니다.

량강도는 고산지대이고 날씨가 차기때문에 알곡농사가 잘되지 않습니다. 량강도 농업에서는 감자농사를 기본으로 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량강도에서 밭곡식의 왕은 감자라고 하시였습니다. 물론 지대에 따라 벼가 잘되는 곳에는 벼를 심고 , 보리가 잘되는 곳에는 , 보리를 심어야 할것입니다.

선진영농방법을 적극 받아 들여 농사를 과학적으로 지어야 합니다. 량강도에도 농업과학연구기관이 있는것만큼 기후풍토에 맞게 종자개량도 하고 작물배치와 재배방법도 개선하여야 합니다. 농사를 지난 개인농때 부대기농사를 하듯이 되는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남새시험재배를 계속하여 남새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합니다. 량강도가 아직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도내인민들과 혁명전적지답사자들에게 쌀은 다른 도에서 가져다 공급하더라도 남새는 도자체로 생산하여 공급하여야 합니다.

인민생활을 높이기 위하여서는 지방공업을 발전시키는데 힘을 넣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 창성련석회의에서 내놓으신 방침대로 산간지대의 특성에 맞게 산을 리용하여야 하며 지방원료원천에 의거하는 지방공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인민들에게 생활필수품을 넉넉히 대줄수 있으며 인민들을 살게 할수 있습니다.

량강도의 자연지리적조건이 어느 군을 보아도 창성군보다는 못하지 않습니다. 량강도일군들은 창성군의 모범을 받아 인민생활을 높이기 위한 투쟁을 있게 벌려야 하겠습니다.

량강도가 중요한 위치에 있는것만큼 도당책임비서와 도인민위원장을 비롯한 도의 책임일군들이 합심하여 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량강도 일군들은 량강도를 혁명적전적지도답게 꾸리고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부문 사업을 빨리 추켜 세워 수령님의 높은 정치적신임과 기대에 보답하여야 하겠습니다.